1969년 멜 보흐너는 뮌헨의 한 갤러리에서 지금껏 보지 못한 ‘작품’을 전시했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매우 당혹스러웠다. 하얀 벽에 있어야 할 그림이나 조각 대신, 검은 선과 숫자만 무심하게 쓰여 있었다. 선은 벽과 문틀과 창틀을 따라 그어졌고, 이 검은 선 위에 적힌 숫자들은 벽, 문, 창의 가로, 세로, 높이를 잰 것이었다. 보흐너는 갤러리 벽의 사이즈를 표기함으로써, 그 벽의 실체를 드러냈다. 드러난 것은 단지 그 크기의 벽일 뿐이었다.
이렇게 급진적인 작품은 사실 인간의 지각 경험을 다룬 것이다. 사람은 심리 상태에 따라 대상을 지각한다. 어떤 대상은 실제보다 커 보이고, 반대로 작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때 실제 사이즈를 알려주면 대상의 실체가 드러나는 동시에, 나의 지각 능력이 얼마나 부정확한지 깨닫게 된다.
정말 그렇다. 어떤 이는 커 보인다. 그래서 실제 키를 알면, 그렇게 작았냐며 놀라곤 한다. 실제보다 크게 느끼는 지각 오류는 존경하거나 두려운 대상에게 일어난다. 보흐너의 작품이 설치된 갤러리 또한 미술가에게는 만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선망의 대상이자, 막막한 장벽이며, 압력을 가하는 권력적 공간이기도 했다. 예술가들은 보흐너의 작품을 보고, 그리 숨 막힌 흰 벽이 고작 이 정도였나를 느꼈다. 살면서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들도 그렇다. 두려울 때 문제는 크게 느껴진다. 그럼 어김없이 절망과 좌절, 불안과 낙심이 엄습해 온다. 문제 앞에 주저앉지 않으려면, 두 가지 중 하나는 반드시 갖춰야 한다. 하나는 문제의 실체를 파악하는 ‘이성’, 다른 하나는 문제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아는 ‘믿음’이다. 그렇다면 둘 중 무엇이 내게 평안을 줄까? 문제의 크기를 아는 이성일까, 아니면 이 문제를 문제 되지 않게 하실 하나님을 향한 내 믿음일까. [복음기도신문]
이상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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