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과 기독교
기독교세계관 잡지 월드뷰 6월호는 6.25전쟁 72주년을 맞아 다양한 관점으로 전쟁과 한국사회, 교회를 조명했다. 그중 최상도 호남신학대학교 교수가 기고한 ‘6.25전쟁과 기독교’를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6.25전쟁 발발 72년이 지났다. 그러나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 상황이므로 항상 전쟁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1945년 8월 15일, 2차 세계대전 종식으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을 맞았으나 한반도는 38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이 각각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됐다. 이후 1948년 8월 15일 남한에서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승만이, 9월 9일 북한에서는 소련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이 각각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해 한반도의 38선은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냉전의 제1경계선이 됐다.
해방 후 지리적 분단은 정치적 분단인 동시에 교회의 분단이기도 했다. 어떤 형태로든 해방 후 남과 북의 교회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따라 소극적 동조 내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남북교회, 양측의 이데올로기 지지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일어나자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분단된 남북 교회는 모두 각각의 위치에서 전쟁을 적극 지원했다. 남한의 교회지도자들은 1950년 7월 대전제일교회에서 ‘대한기독교구국회’를 결성, 국방부 및 사회부와 연결하여 선무, 구호 방송 등으로 전쟁을 지원했다. 나아가 기독교 청년들로 구성된 의용대 조직과 이들의 전선배치까지 시도했다. 또 1950년 10월에는 평양 탈환을 축하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약 3000여 명의 신도들이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국군과 유엔군, 그리고 남쪽에서 파견된 윤하영, 한경직, 김양선, 이인식 등의 장로교 대표들을 환영했다. 이들은 해방공간에서 월남했던 목사들이었다. 1.4후퇴 후, 부산으로 피난하던 시절 남한의 교회는 한경직과 류형기를 미국에 파견하여 한국의 정황을 알리고 지원을 요청하는 등 전쟁 승리를 위한 적극적 행동에 나섰다. ‘전쟁 승리를 통한 통일’이라는 남한교회의 태도는 1951년 여름 휴전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하자 극명하게 드러났다.
휴전 반대 입장을 고수한 이승만 정부의 입장에 동조해 남한교회는 정전 반대, 휴전 반대 집회를 전국각지에서 개최했다. 특히 휴전이 임박했던 1953년 6월 13~15일 사이 서울에서는 약 7000여 명이, 부산에서는 1만여 명이 참여한 휴전 반대, 북진통일을 외치는 구국기독신도대회가 열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쟁 중 북조선기독교도연맹을 중심으로한 북한교회는 1950년 6월 인민군의 서울탈환 환영예배를 드렸다. 7월에는 김창준 목사를 포함한 기독교도연맹 대표들이 서울에 내려와 1947년에 활동이 중지된 좌파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기독교민주동맹을 재건하기도 했다. 8월 5일 평양 및 북한 전 지역에서 개최된 궐기대회를 통해 전국의 교인들에게 인민군의 승리를 위한 기도회를 가졌다. 나아가 8월 기독교 교역자 궐기대회를 열어 인민군대에 더 많은 무기를 헌납하도록 모금운동을 전개하자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남북한 교회의 ‘전쟁의 승리를 통한 조국 통일’의 입장과 그에 따른 전쟁 동조 행위는 서로 다르지 않았다.
세상을 향한 교회의 사명
6.25전쟁은 내적으로 볼 때,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무모한 희생과 파괴의 상처만 남긴 전쟁이었다. 이 파괴적 전쟁, 참혹한 살상과 폭력이 난무하는 전쟁을 교회가 적극적으로 지지, 동조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의 십자가 죽음(고후 5:18~20, 엡 2:13~16)을 통한 복음으로의 통로라는 사명을 저버리고 정부에 예속되어 지배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시녀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실로 6.25 전쟁을 통해 남북한 교회의 십자가는 전쟁의 상징이 됐다.
여전히 남북한 교회는 6.25전쟁으로 강화된 각각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따라 6.25전쟁 발발 72주년을 맞이하는 이날까지 여전히 ‘휴전’의 냉전 체제 속에서 상호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전쟁 중에 교회를 지키기 위해 피난을 가지 않고 남아 있는 교인을 끝까지 지킨 목회자도 있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 사랑을 본받아 전쟁 폭력을 폭력으로 대항하기보다 평화적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순교자들의 죽음을, 남한교회의 ‘반공주의 재생산을 위해, 6.25전쟁의 산물인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지속적으로 유포’시키는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때, 분단 체제 휴전으로 전쟁의 위협에 고통당하고 있는 국민들을 위한 교회의 역할은 분명하다. 그것은 세속적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인한 전쟁 폭력에 같은 폭력으로 대항, 동조, 지지하는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보여 준 자기희생적 사랑과 용서를 통한 ‘화해’의 성취라는 하늘의 방식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칼과 창을 쳐서 보습과 낫을 만드는(미 4:3) 평화의 사도로 부름 받았음을 명심해야 한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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