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바로 보기] 퀴어축제는 동성애자들의 성문화를 시민들에게 강요하는 시위

퀴어행사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 모습.

[그리스도인의 세상 바로 보기]

1960년대는 서구에서 각종 ‘권리 운동’과 베트남 반전 시위 등이 활발했다. 1969년 뉴욕의 게이바에 경찰의 단속반이 들이닥치자 그런 분위기의 영향하에 있던 게이(동성애자)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일으켰고, 이것은 2주간 심야 시위의 유행이 됐다.

1970년 뉴욕 스톤월 바에서 시작된 경찰의 단속에 대항한 1969년의 사건을 기념하고자 6월에 게이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1970년의 사진(클릭)을 보면 단순히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정도였다. 요즘처럼 나체로 낯뜨거운 모습으로 행진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동성애자들의 행태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좌익 사상으로 무장된 집단이 개입하면서부터 본격화됐다. 당시 각종 ‘권리 운동’을 마르크스주의 단체들이 주도했듯이, 동성애자 권리 운동도 역시 마르크스주의 단체들이 주도했다. 그래서 단체 이름들이 ‘게이해방전선(Gay Liberation Front) 같은 명칭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동성애 운동이 미국의 기독교보다 분명 정치적으로는 더 강력하다.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동성애자 운동이 마르크스-레닌주의 교리에 따라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 의해 과학적이고 혁명적인 변혁운동으로 점차 새옷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과 기독교인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동성애자 인권 운동이 사실상 마르크스주의 운동이자 공산주의 운동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관계를 알면 알수록 더욱 충격적이다.

국제볼세비키그룹 한국지부 사이트는 1996년에 “자본주의와 동성애 탄압”이란 내용의 글을 발표했다. 이 내용은 1996년 노동자연대의 글에도 발췌되어 교육될 정도로 동성애 운동의 배경 사상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청년 대학생들 사이에서 동성애가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은 이전 민주화 운동권이 사라지면서부터다. 우리 사회에 주된 이슈로 여겨져온 반민주적 요소가 제거된 이후, 1996년부터 국내의 대학교에서 동성애자 동아리들이 등장하기 시작됐다. 현실을 인정하기 싫은 이들에게 동성애 이슈는 이들의 호기심과 열정을 쏟아부을만한 미개척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98년에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련)를 만들고, 1999년 동인련은 교과서에서 동성애의 문제점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인련 대표는 2004년에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에 합류한다.

동성애자들에게 가장 껄끄러운 조직이 있다. 동성애를 죄로 인식하고 있는 기독교다. 때문에 이들은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성경 해석을 뒤집기로 한다. 남미에서 해방신학(성경을 마르크스주의로 해석하는 신학)을 연구했던 마르셀라 알트하우스 리드(Marcella Althaus-Reid) 같은 신학자가 대표적이다. 이들에 의해 집대성된 이론이 바로 퀴어 신학이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본질상 퀴어 신학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동성애 단체들은 미국정신의학협회를 대상으로 1970년 학술대회에서부터 동성애자의 입장 인정을 요구했다. 내셔널 게이 타스크포스 소속 게이인권 운동가들은 이후 3년간 시위, 세미나장 난입, 마이크 뺏기, 전시장 난동 등을 전개했다. 그리고 마침내 1973년 정신질환진단통계매뉴얼의 성도착증 범주에서 동성애를 삭제하기로 했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은 미국 민주당을 동맹으로 얻게 된다. 프랑스의 FHAR이란 레즈비언 단체는 1971년에 동성애 이슈에 대한 방송을 하던 방송국에 난입해서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인다.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혁명 달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미국의 동성애자들은 1960년대에 공무원 임용에서 금지하는 것 등에 대하여 피켓팅 시위를 했다. 당시 흑인 권리 운동에서 “블랙은 아름답다”는 구호를 사용했다. 1968년에 “게이는 좋다”는 구호를 만든다. 이것이 게이인 것에 자긍심을 갖자는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명칭의 뿌리가 됐다.

1980년대 에이즈가 동성애자들 사이에 확산되면서 초기 동성애 운동의 지도자들이 에이즈로 사망하는 사례가 등장했다. 그러자 1983년 게이 퍼레이드는 “에이즈: 우리는 연구가 필요하다. 히스테리아가 아니라”란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다.

이처럼 서구에서 동성애자들의 요구로 동성애자들의 보건상의 문제에 대한 연구를 투명하게 개방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반면, 한국은 동성애 단체들의 요구로 질병관리본부가 그것을 은폐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 결과 동성애의 결과로 나타나는 HIV 감염인이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80년대에 동성애자들을 변태로 취급하는 단어인 ‘퀴어’를 동성애자들이 긍정적 의미로 사용하자는 퀴어 운동이 시작된다. 이는 이성애에 기반한 가족제도를 해체해야 한다는 식의 급진 좌파 정치운동이다. 동성애 사회에서도 거부되던 이들은 퀴어 네이션을 결성했다.

1990년 뉴욕 게이 프라이드에서 퀴어 네이션은 “퀴어는 이것을 읽으라(Queers Read This)”는 선언문을 배포한다.

“이성애자들은 그것에 두려워해야 한다. 공포에 떨어야 한다. 두려움은 가장 큰 동기부여이다(Straights must be frightened into it. Terrorized into it. Fear is the most powerful motivation.)

“내년에는 나체로 행진하자!(Next year, we march naked.)”

서구에서 전통적으로 ‘게이 자긍심 행진(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란 명칭과 달리 한국의 동성애 단체들은 2001년에 명칭을 아예 ‘퀴어 축제’(퀴어 페스티발)‘로 명명했다. https://bit.ly/3RrxbLa 그리고 이들은 2004년 정치적 급진파인 민주노동당원들이 되었다. 이 무렵 동성애단체 활동가들이 등장하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한다는 정당이 등장하고, 연예인들이 이에 가담하기도 한다.

한국의 동성애단체들이 서구에서 반사회적이어서 온건한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도 배척받던 ‘퀴어’를 그들의 정체성으로 결정하고, 퀴어 축제로 시작했다는 점이 주목해서 생각할 부분이다. 이들이 한국 사회에 의도하는 바를 알 수 있기 때문이고, 그런 행태를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게이 퍼레이드도 70-80년대의 평범한 거리 행진에서 지금은 음란성이 잔뜩 가미된 행사로 변했다. 한국의 퀴어 축제 역시 당연히 그것을 따라하고 있다. 즉, 퀴어 축제의 노출과 음란성은 사회의 전통적 가치를 뒤집자는 취지에 비추어서 불가피하다.

헌법 제21조는 집회의 자유가 국민에게 있으며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되어 있고, 헌법 제37조는 질서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하여 법률로서 제한한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퀴어 축제는 이렇나 법적 근거로 볼 때, 공연음란이란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퀴어축제가 이렇게 음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 서울시는 금지는커녕 음란성 배제 조건부로 허용했다. 그러나 퀴어 축제의 본질상 음란성 배제는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시민들은 보수적 가치를 존중하는 서울 시장이 좌파 세력과 어느 정도 타협하며 편하게 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여기고 있다.

게이 퍼레이드는 ‘시위’ 성격으로 시작했고, 퀴어 축제 역시 명칭만 축제이지 ‘시위’와 다를 바가 없다. 다시 말해 동성애자들의 성문화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시위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서구처럼 동성애자를 형사처벌하거나 공무원 임용을 금지하는 차별을 한 적도 없다. 그래서 차별을 개선하는 목적이란 퀴어 축제의 당위성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며 사회에 불건전한 풍속의 전파 의미만 남는다.

2014년부터 퀴어 축제의 음란한 현장들의 사진들이 인터넷에 공개가 되어 있다. 그러자 국민들은 경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퀴어 축제하면 으레 이러한 장면들을 연상하고 젊은이들은 비난하게 됐다.

국민들이 이러한 현실에 대해 눈을 뜨게 하려면, 퀴어 축제를 주장하는 성소수자들의 모습을 보는 수밖에 없다. 퀴어 축제가 무엇을 목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사진과 영상으로 교회와 거리에서 시민들이 알게 하는 것이다. 그 실상이 드러나면, 퀴어 축제를 아무리 성대하게 한들 시민들은 부정적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복음기도신문]

한누가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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