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성서조선의 김교신- 일본은 왜 한국교회보다 김교신을 더 두려워했는가?

사진: 한국순교자의 소리 제공.

김교신 선생의 생애와 사상(3)

김교신(1901-1945) 선생은 오늘날 한국과 전 세계가 귀 기울여야 할 한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교자 중 한 사람이다. 그가 남긴 잡지 <성서조선>을 통해 성경의 진리를 전하고자 했던 김교신 선생은 아쉽게도 무교회주의자로 불리며, 그의 신학과 사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에 그 시대 속에서 김교신 선생이 가졌던 생애와 사상을 재조명해본다. 이 글은 현숙폴리 박사(한국 순교자의 소리 대표)가 그에 관해 쓴 특집 소론(小論)이다. <편집자>

우리 한국인들은 인구 중 25%가 기독교인으로 아시아에서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나라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말은 나머지 75%는 기독교인이 아니며, 가장 독실한 한국 기독교인들(매일 새벽기도에 가고 십일조를 하며 교회에서 봉사를 하는 교인들)이 한국 사회에 깊이 있는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의미이다. 한국 교회는 이대로 괜찮은가?

그렇지 않다고 말했던 사람이 있었다. 가장 존경 받은 한국 초기 기독교인 중 한 사람인 김교신이었다. 마음을 열고 그의 글을 다시 읽어보면, 그가 한국 교회를 공격하거나 거부하는 데 집중했던 것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인들이 교회나 교단에서 시선을 돌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씀을 조선 전역에 더 널리 전하라는 부르심에 집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게는 그저 많은 교회를 세우거나 많은 한국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이상(理想)이 있었다. 그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다름 아닌 ‘성경에 기초한 새 조선 건설’이었다(서, 2005, 456). 그는 교회 개척과 교단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우려했다.

그런 개척과 성장이 목표를 이루는 데 있어 중요한 방법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그로 인해 목표에서 멀어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조선 교회는 그들이 이 땅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말하곤 했다. 단지 죽은 뒤 천국 가는 것에 대한 말이 아니라, 금주 운동, 과부 재혼 금지령 철폐, 사회생활 개혁을 부르짖고, 일부일처제 지지를 분명히 하며, 농촌 산업에 몸 바쳤으며, 조국의 미래를 제시하며, 문맹을 없애고 민족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주일학교와 야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큰 사업이 진행 중이든 간에 그 중심에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제 이러한 것을 잊고 천국 가는 일을 이야기한다. 누구도 기독교인들이 해온 일을 부정하거나 그들의 성과를 칭찬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믿는 나의 목표는 오로지 천국 가는 일이다.

그밖에 다른 일들은 계몽 단체나 [동아일보의] ‘나로드(Narod, 민중)’ 운동 등 다른 조직들이 더 잘 할 수 있다. 민족 의식을 일으키는 일에 있어서는 보천교나 천도교가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죄인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일은 오직 예수님의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김교신, 웰즈(Wells), 2009, 71).

이는 김교신이 민족적 사건들에서 발을 빼고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에 관해 웰즈는 “‘조선’과 ‘성경’은 이인일체(二人一體), 즉 한 몸 안에 깃든 두 인격으로 인식되어야 했다. 국가의 역사는 민족의 혼을 보여주며, 국가 발전의 핵심은 하나님의 섭리였다(2009, 71).”고 설명한다. 김교신은 교회 성장 이상의 것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한민족의 영적이고도 윤리적인 개조였다.     

훗날 월간「성서조선」 158개호 전편을 모아 총 7권의 김교신 전집으로 엮은 노평구는 이와 같이 말했다.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그의 애국심은 남달랐다. 그는 한국인들의 영적이고도 윤리적인 개조를 목표로 삼았고, 이는 곧 종교나 윤리를 통해 한 민족을 세우는 일을 뜻했다.”(김, 2012, 178). 실제로 김교신의 이상(理想)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향한 것이었다.

김교신은 지(知), 정(淸), 의(意)라는 한국적 덕목을 믿음, 소망, 자비라는 기독교적 덕목에 맞추고, 이를 온 세상에 알리는 것이 한국의 사명이라고 가르쳤다…한국 외부에서 주입된 것은 무엇이든 수용을 거부했고 한국과 성경의 완전한 융합을 주장하는 동시에, 그는 이 같은 한국식 형태를 세상에 전하라고 한국인들에게 호소했다(웰즈, 2009, 71-72).

한국이 온 세계로 뻗어나갈 운명을 지녔다는 사상은 일본인들이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서종민(2005, 457)은 일본인들이 “다른 어떤 독립운동이나 민족주의보다 김교신식 신앙 운동을 더욱 두려워했다.”고 말한다. 한국 교회는 알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일본은 김교신이 목표로 삼고 있는 바가 한국 교회가 가진 이상(理想)을 넘는, 훨씬 더 원대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결국 일본은 판매 부수가 겨우 350권에 지나지 않는 그의 월간지에 실린 글 한 편을 구실로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웰스, 2001, 155). 한국 교회도 김교신을 배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교신이 자신의 이상때문에 교회를 거부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왜 김교신이 일본 당국과 한국 교회 모두에게 그토록 위협적이었는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에 대한 신학적이고 역사적인 뿌리들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곧 무교회주의의 창시자, 일본에서 김교신의 스승이었던 우치무라 간조를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김교신 특집- 제4부 “우치무라 간조의 제자가 되다”가 이어집니다.<계속> [복음기도신문]

현숙 폴리 박사/목사 | 전 세계 특히 북한의 핍박받는 성도들을 섬기며 한국 초기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관심을 갖게 됐다. 현재 (사)한국 순교자의 소리 대표로 한국 기독교재정투명성협회 이사, 프라소 한국설립자 겸 회장을 맡고 있다.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 과정(M.div)과 Colorado Christian University 상담학 석사, Regent University 리더십 박사 학위를 이수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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