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 감옥에서 모든 것을 다 잃고 하나님 한 분을 얻었다”

116_7_2 revival 2‘연어의 꿈’(5)

가족을 잃은 한 북한 청소년이 탈북해서 하나님을 만나, 이제는 북한의 복음화를 꿈꾸고 있다. 그 내용을 담은 ‘연어의 꿈’(강디모데, 예영B&P刊, 2013)을 요약, 연재한다. <편집자>

신의주 보위부는 그곳으로 끌려온 사람들의 돈을 찾기 위해 입 안을 살펴보고, 심지어 항문까지 검열했다.

옆방에는 나처럼 중국에서 성경공부를 하다 잡힌 아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결국 정치범 수용소로 갔다. 서로 말은 못했지만 속으로 기도했다.
조사가 끝난 후 11월에 신의주 집결소로 넘겨졌다. 그곳에서 시멘트 싣기, 언 땅 파기, 장갑도 없이 손으로 인분을 푸고, 때로는 변소 밑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식사는 몇 시간씩 삶은 옥수수 알갱이 세 숟가락 정도였다.

여러 번 치질에 걸려 피를 쏟고, 양손에 생손앓이로 손톱을 다 뽑았다. 함께 잡힌 형들 중에는 바지를 입은 채 설사를 하는 형이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누워서 용변을 보면 형의 옷을 벗기고 얼음을 깨고 옷을 빨아주었다.

수개월 만에 담당 경찰이 와서 신의주로 데려갔다. 다시 단천까지 7일이 걸렸다. 경찰 감옥은 밥이 나오지 않아 면회를 기다려야 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나는 누구도 찾아 오지 않았다.

고독한 시간, 춥고 어두운 냉방…. 어느덧 의식을 잃었고, 눈을 뜨자 경찰들의 방안이었다. 전기 히터가 있었다. 경찰들은 죄수들의 도시락을 한 숟가락씩 주었다. 며칠 만에 이모가 도시락을 들고 왔다.

외할머니는 내가 살아나올 희망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가셨다고 했다. 지금까지 17년간 살아온 삶을 기록하는 ‘비판서’와 죄를 나열하는 ‘진술서’를 썼다. 교회 갔었지? 라는 질문에 몇 번 가서 잠만 잤다고 했는데 가혹한 고문이 주어졌다.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는 단천시 구류장에서 나는 한 달을 버텼다.

그리고 함경남도 함흥 영광군에 있는 ‘55호 로동단련대(오로)’에 1년을 선고받았다. 그곳은 강제노동으로 몇 달을 못 버티고 죽어나가는 악명 높은 곳이었다. 이미 8개월 동안 감옥 생활을 한 나는 키 167cm 몸무게 42kg, 허약 2도(죽기 직전 최악은 허약 3도) 판정을 받았다.

결국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오로’에 가는 기차에서 경찰은 어머니가 중국에서 잡혀 북송되던 중 도망치다 기차에서 뛰어내려 객사했다고 전해주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감이 일어났다. 틈만 나면 자살 충동이 일었다. 지금까지의 어떤 고난보다 고통스러웠던 것은 어머니의 사망 소식이었다.

허약2도, 한 달을 넘길수 있을까?
2004년 2월 28일 새벽 2시 함흥역에 도착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오로’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감옥들은 15군데 정도다. 조금씩 다른 규율을 배워야 했다. 6시 기상, 노동, 일일총화, 명제학습 후 취침. 노래 금지, 소음 금지, 두 주에 한 번 삭발, 보안원의 지시 없이 앉을 수도, 휴식할 수도 없었다.

매일 자갈을 나르며 중노동에 시달렸다. 밭일을 나가면 메뚜기, 잠자리, 청개구리, 뱀까지 보이는 대로 잡아 날것으로 뜯어 먹었다. 어느 날 한 형이 쥐를 잡았다. 그 형은 쥐 껍질마저 아까워 털을 뽑고 내장만 버리고 생고기를 먹었다. 6개월 동안 고통과 눈물로 밤을 보냈다. 죽는 것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죽음 앞에 있으니 일초라도 더 살고 싶었다. 그때 숟가락 크기 만한 가루떡을 몰래 건네주었던 분들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하나님 살려주세요’ 수시로 기도했다. 그러다 잠꼬대라도 할까봐 기도를 바꾸었다. ‘아버지 살려주세요’.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늘 함께 하고 계셨다.

하루는 보안원이 식당일을 보내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 도우려 말고 네 배나 채워라.” 어느날 친구가 배가 고프다며 소금을 부탁했다. 들키면 짤리지만, 내가 배고팠던 때가 생각났다. 결국 들켜 쫓겨났지만 친구를 원망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도왔다는 것이 뿌듯했다. 도움을 받았던 나는 은혜를 나누고 싶었다.

2005년 2월 13일. 철대문 소리와 함께 ‘55호 로동단련대’ 감옥문을 나섰다. 기적이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두 번 태어나는 것 같은 기분, 새로운 땅을 디디는 기분이었다. 감옥은 용광로 같은 하나님의 단련대였다. 스스로가 얼마나 더럽고 추한지 보게 되었다.

나에게 남아있는 탐욕이 죽어야 했고, 더 많은 욕심과 더러움이 빠져나가야 했다. 그 빈자리는 하나님의 구별된 것으로 채워져야 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하나님 한 분을 얻었다.<계속> [GNPNEWS]

강디모데

Print Friendly, PDF & Email

관련기사

20240420 life
[오늘의 한반도] "로잔대회, 인간 생명 존중 입장 명백히 선언해 주길” 외 (4/20)
20220531 GTK_BOOK2-min (1)
[오늘의 한반도] 성인 60%, 1년에 책 한 권도 안 읽어 외 (4/19)
20240418_YH_outline of crime
고교생이 만들고 중학생이 관리…판돈 2억원대 도박서버 적발
20240418 Korean War
[오늘의 한반도] 6.25전쟁 당시 종교인 학살, 1700명... 기독교인 104명 외 (4/18)

최신기사

[세상 바로 보기] HIV 감염이 장애로 인정될 수 있나?
[최요나 칼럼] 난 실력자야!
美 민주당, ‘트랜스젠더 수술, 사춘기 차단제’ 권리 성문화 방침 밝혀
[오늘의 한반도] "로잔대회, 인간 생명 존중 입장 명백히 선언해 주길” 외 (4/20)
[오늘의 열방] 아프간 탈레반, TV 채널 2개 폐지... 이슬람 가치 반해 외 (4/20)
[김종일 칼럼] 최근 ‘이란-이스라엘’ 사태(2024)에 대한 이해와 평가(1)
“시리아서 IS 공격으로 친정부군 등 20명 사망”
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