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회복되니 가정이 회복되고 나아가 열방까지 회복될 거예요”

주님의 사랑에 눈 먼 연현주 집사

따뜻한 햇살 아래에 붉게 물든 단풍, 수북이 쌓인 낙엽사이로 바람을 맞으며 걷는 기분은 가을에만 만끽할 수 있는 특권이다. 작은 씨앗 하나가 싹을 틔우고 거목이 되기까지 나무는 더위와 추위, 바람과 비를 견딘다. 어느새 나무는 많은 새들의 그늘이 되어 바람과 비를 피해 찾아드는 새들의 안식처가 된다.

연현주 집사(수지선한목자교회)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나무는 우리에게 풍성한 가을의 정취를 선물했다. 겨울을 준비하는 그 나무들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그녀의 삶을 이끄신 주님이 허락하신 예고편 같았다.<편집자>

5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그녀는 절에 보내졌다. 그러나 절 형편도 여의치 않아 초등학교 4학년 때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왔다. 설상가상, 아버지는 재혼이라는 사실을 속이고 다시 결혼한 상태였다. 어머니의 자살기도, 친척집을 전전하며 겪었던 갖은 폭력과 식모수준의 삶은 어린 그녀가 감당해야할 몫이었다.

– 주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10년 전에 저는 아는 언니와 포교원을 개원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절에 있었으니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그런데 그 무렵 이웃에 사는 언니가 계속 전도하며 저에게 교회에 나가자고 했어요. 너무 애쓰는 모습에 계속 거절하기가 미안해 하루만 교회에 나가겠다고 했어요. 당연히 믿을 생각은 없었어요. 작은 예배당 맨 앞자리에 앉아서 찬양을 듣고 있는데 어느새 저도 모르게 찬양을 따라 부르며 울고 있었어요. 내가 왜 울지? 창피하고 당황스러워 성전 밖으로 나오면 눈물이 그쳤어요. 그런데 자리로 돌아가면 다시 눈물이 나왔죠. 들락거리는 저의 손을 언니가 잡으며 말했어요.

“울어도 돼. 처음엔 다 그래.” 그때부터 펑펑 울었던 것 같아요. 주님이 그날 저를 만나주셨어요. 그 이후 말씀이 믿어지는 은혜를 주셨어요. 날마다 꿈만 같은 시간이었어요. 이제야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억울할 정도였죠. 함께 포교원을 하려고 했던 스님 언니에게도 이제 머리 기르고 예수님 믿자고 했어요. 저는 그렇게 주님께로 돌아왔어요.”

처음 나간 예배당에서 하염없는 눈물

– 주님을 만난 이후의 삶은 어떤 시간이었나요?

“사이가 안 좋았던 시어머니와 관계가 회복되면서 평생 우상숭배만 하시던 어머니가 드디어 교회에 나오시게 됐어요. 그리고 남편도 교회에 나오게 됐죠. 그 과정도 쉽지 않았죠. 제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남편은 술도 많이 먹고 새벽에 들어오는 일이 많아졌어요. 교회에 가면 천국인데 집에만 오면 지옥인 것 같았어요. 하지만 말씀대로 순종하기로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닦았다는 말씀을 보게 됐어요.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날 남편의 발을 닦았어요. 남편은 제가 그럴 때마다 어리둥절했죠. 또 어떤 날은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한 말씀을 보면서 ‘아! 이거구나!’ 생각했죠. 예수님을 믿게 된 나는 새 삶을 살아야하는데 남편은 여전히 세상나라에 사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왜 예수를 안믿으세요”  전도에 열정

– 뭐라고 하셨나요?

“남편에게 말했어요. “내가 진짜 미안해. 모든 반대를 무릎 쓰고 나와 결혼해줬는데 내가 하나님을 믿고 나니까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아. 내가 다시 새 삶을 살아보려고 하는데 당신하고 좀 헤어져야 되겠어요.” 저는 나름 진지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털썩 주저앉았어요. “나 좀 도와줘.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교회를 다니면서 그렇게 좋은 삶이 있으면 나한테도 같이 가자고 해야지. 왜 헤어지자고 그래?” 그 일이 있고나서 남편과 함께 교회를 나가게 됐어요. 저는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됐죠.”

– 교회에서의 생활은 어떠셨나요?

“날마다 전도를 했어요. 비록 욕도 많이 먹었지만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어요. 도리어 왜 예수를 안 믿느냐면서 당당하게 전도 했던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전도를 하면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 거예요. 여세를 몰아 목사님께 사람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플랜카드를 만들어서 붙이자고도 해보고, 유명한 목사님들에게 편지를 보내 부흥회를 하려면 우리 같이 작은 개척교회에서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다짜고짜 강의요청을 하기도 했어요.

교회에 대해 잘 모르니 가능한 일이었죠. 그러나 개척교회에서 너무 적극적인 저의 모습은 다른 교인들에게 어려움을 주기도 했어요. 그래도 주님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조용히 있을 수 있겠어요.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기에 큰 교회로 옮기게 됐어요.”

– 뜨거운 열정 때문에 주위 분들도 조금 어렵기는 했겠네요.

“지나고보니 복음에 대해 잘 몰라서 어려운 시간이었어요. 저는 제 과거에 대해 늘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쯤 기숙사가 있는 공장으로 가게 되었어요. 중학교 진학은 못한 채 함께 생활하는 언니들과 어두운 길로 들어서게 됐어요.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인생을 탕진하다 괴로움에 죽으려고도 했어요. 그러나 죽을 용기도 없었죠.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뒤, 지난날을 만회해보려고 정말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했어요. 인정과 칭찬으로 행복했지만 점점 목이 마르기 시작했죠. 하나님을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각했고 나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도구쯤으로 여겼어요. 그 무렵 새로운 교회에서 만난 한 집사님의 삶을 보며 도전을 받게됐어요. 그분의 삶은 저와 달랐어요. 그분을 변화시키고 지금까지 이끌고 있는 복음에 대해 듣게 되었고 저도 그 복음을 알고 싶은 목마름이 생겼어요. 결국 2011년에 5박 6일간의 훈련과정을 통해 복음에 저의 존재가 부딪치게 되었어요.”

– 복음에 존재가 부딪쳤다는 것이 무슨 의미죠?

“한 주 동안 복음의 진리를 들으며 내 존재가 곧 죄 자체라는 것을 보게 됐어요. 더욱 절망적인 것은 나로는 그 죄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죠.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함께 죽고 다시 사신 십자가로 완전히 해결하셨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고 감사했어요. 수치로 물든 죄인 연현주가 죽었다는 사실을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나누면서 이제 남편에게 순종하겠다고 고백했어요.

처음에 남편은 당황하며 “어~ 많이 고생했네.” 한마디 하고는 급히 방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잘 알죠. 저의 과거를 알게 되면 남편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를 구원한 복음을 말하려면 저의 지난 삶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복음 앞에 서면서 내가 회복되면 가정이 회복되고, 가정이 회복되면 열방이 회복된다는 마음을 주셨어요. 저와 가정이 복음 앞에 서는 것이 급선무였어요. 그래서 순종한 것이 홈스쿨이었어요.”

– 홈스쿨을 어떻게 하셨나요?

“아이를 진리로 양육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이것이 저의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에 당사자인 큰 딸 하영이에게 저의 마음을 나누고 상의 했죠. 하영이는 1년 정도 학교에 다녀본 후 결정하겠다고 했어요. 1학년 6개월이 지나자 이제는 그만 다녀도 되겠다고 말하더군요. 그래도 약속한 일 년은 다니도록 했어요. 드디어 올해부터 홈스쿨링이 시작됐죠. 이름도 지었어요. 원형 홈스쿨. 디모데후서 2장 21절을 토대로 학생선언문도 만들었어요.

‘나는 학생으로서 모든 배움에 책임과 의무가 나에게 있는 것을 명심하여 작은 일에 충성하는 선한 일꾼의 자세를 가질 것을 다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을 겸손한 자세로 배우며 진리에 대해 온유함으로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입니다.’”

– 홈스쿨은 어떤 점이 가장 유익하다고 생각하세요?

“홈스쿨을 시작하며 아이와 계속 집에 함께 있는데 사춘기라도 시작되면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어요. 사실 저도 제대로 양육을 받고 자란 것이 아니기에 더 겁이 났죠. 그래서 주위에 있는 선배 홈스쿨러들에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하나같이 모두 같은 반응이었어요. 사춘기를 잘 모르고 어려움 없이 지나갔다는 거예요.

모든 아이들이 약간의 몸부림이 있었지만 부모가 심각하게 느끼지 못할 정도였어요. 요즘 3~4학년만 되도 부모와 눈 마주치며 대화하는 것은 어렵다고들 해요. 그러나 홈스쿨링을 한 아이들은 감정적인 충돌이 있을지언정 부모와 끊임없이 대화를 해왔기 때문에 어떻게 풀어갈지 아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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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보호기관 조사요원 한 마디, “부러운 홈스쿨이네요”

–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저희가 홈스쿨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동보호기관에서 조사를 나오겠다는 거예요. 학교측에서 자녀를 방치한다고 신고를 했다는 거예요. 면담과정을 통해 신앙인으로 자녀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충분히 설명하며 학교에 교육계획서까지 제출했는데… 처음엔 당황스러웠죠. 조사요원이 왔을 때, 아이한테 매 맞은 적이 없다고 말하라고 해야 하나? 아이도 놀라서 어떻게 말해야 하냐고 묻는데 우리에게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직 시작하신 주님만을 믿어야겠다고 생각했죠.

“하영아, 너 마음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말해. 만약에 엄마가 잘못한 게 있으면 대가를 치를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라면 받을 준비 돼있어.” 얼마 후 기관에서 나와 아이와 따로 40분 정도 얘기를 마치고 나오면서 말하더군요. “이렇게 하는 홈스쿨이라면 너무 부럽네요. 다른 아이들도 이렇게 배우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이 일을 계기로 홈스쿨을 하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가 됐어요. 일리 있는 세상 교육이라고 해도 진리와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더욱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었어요.”

“복음을 가진 자로 세상과 적당하게 타협하며 살 수는 없어요”

– 1년이 되어가는 홈스쿨링 가운데 주님이 주신 은혜를 나눠주세요.

“하영이는 집에서는 묵상도 잘하고 기도도 잘했어요. 교회에서 하는 말씀기도 모임이나 열방을 위한 중보기도모임에서는 자신에게 실제가 된 복음을 말하며 교회 성도들에게 늘 칭찬을 받는 아이였죠. 주말에 하는 어린이 대상 신앙훈련과정인 빛의열매학교에서 선생님도 아이가 모범적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일주일 동안 실시되는 아웃리치 기간에는 팀 분위기를 흐리는 행동으로 어려움을 줬다는거예요.

사실 세상에서는 그 정도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믿음의 사람이라는 관점에서는 경고가 필요했어요. 아이의 자랑이던 머리카락을 잘랐어요. 그리고 딸과 함께 이사야서로 말씀기도를 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구했죠. 감사하게도 주님은 기도가 진행되는 동안 아이를 만나주시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고 주님이 전부가 되는 시간을 허락하셨어요.”

– 끝으로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홈스쿨링을 하면서 아이는 주님이 키우고 계신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어요. 비록 아이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으로 훈계하고 양육하는 것이 제 실력이지만 연약함을 통해 아이와 저를 말씀으로 한 걸음씩 인도하고 계세요. 주위 사람들이 홈스쿨에 대해 물어오면 자연스레 복음을 나누게 되고 그들도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 수 없다고 말해요.

고린도후서 4장의 말씀처럼 질그릇 같은 나는 깨지고 보배 되신 주님만 드러나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가정 안에 있는 복음을 열방 끝까지 흘려보내는 통로로 쓰이도록 남편과 저, 그리고 아이들 안에 오직 복음이 전부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어요.”

[GNPNEWS]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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