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선교사로 떠나는 두려울 것 없는 젊음의 강 크리스찬 형제

이 땅의 첫 순교자, 토마스 선교사가 사역의 롤 모델 

맹렬한 탁구공과도 같은 탄성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단단한 바닥을 치고 끊임없이 튀어 오르는 열망이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람. 그 삶의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빛 된 존재의 생기가 눈빛에서 말에서 드러나는 사람. 어떻게 해서든 복음을 위하여, 그리고 한 영혼을 위하여 송두리째 피 흘리기만을 갈망하는 사람. 그야말로 두려울 것 없는 젊음이 눈부신 그런 사람, 두 달 후 수단으로 떠날 나이 서른의 강 크리스찬 형제를 만나보았다.

– 형제님은 어떤 분인가요?
“현재 FIM선교회 소속의 선교사이구요. 이 선교단체는 작고, 시스템이 잘 구축되지 않은 곳입니다. 그래서 더욱 ‘믿음으로만’ 설 수 있도록 하는 곳이지요. 출석하고 있는 교회는 정동 제일교회와 강남 새사람교회, 그리고 무학교회입니다. 매 주일마다 각각 7시 30분, 11시30분, 2시 30분에 성가대와 선교 관련 분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중3 때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대에서 성악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는 않으며 그에 대하여 아쉬움도 미련도 없습니다. 오히려 축가를 부르거나 레슨을 함으로서 돈에 대한 유혹을 끊임없이 받아 왔는데 그 생활을 청산하고 나니 다행이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 오늘에 이르기까지 형제님 개인의 BC와 AD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제맘대로’ 모태 교인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모태들은 죄를 짓고 싶어도 짓지 못해, 열매도 없고 그러니 회개할 것도 별로 없어 미지근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마음껏 죄를 짓고 살아왔습니다. 물론 남 모르게 했죠. 죄의 열매가 수도 없이 많아서 돌아보면 악취가 날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죄의 장아찌’가 바로 저입니다. 양심의 가책 없이 매우 이중적인 삶을 능수능란하게 살아서 친구들은 저를 ‘다섯 얼굴의 사나이’ 라고 부를 정도였지요. 걸치고 있는 세계와 상대하는 사람에 따라 철저히 다른 얼굴로 살아왔으니까요. 그러다 군대에 갔습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간 군 생활에서 자존심이 깨지는 일이 다반사였죠. 게다가 디스크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해 수술을 하고 3개월간 병상에 누워 있게 되면서 무기력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오페라를 하려면 기본 2시간은 서 있어야 하는데 파열된 허리로는 연습도 공연도 할 수가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이 됐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좌절하던 그 때 영어공부나 하려고 병원 침대에 누워 영어 성경을 읽을 때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통째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깨달아졌고 역겨운 그 죄의 열매들을 토해내고 저도 모르게 ‘주님 위해 살겠노라’ 서원까지 해버렸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깨어짐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주님 위해 살겠다고는 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도통 모르겠더군요. 교회 봉사활동은 열심히 하고 성가대에서 노래도 치열하게 불러왔는데 말씀을 제대로 양육 받은 적이 없었던, 근본 없는 모태교인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퇴원하고 더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하면서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나 자신은 변했는데 다른 사람은 육적인 존재로 사는 것이 눈에 보이는 거예요. 이해가 안 되고 용납이 안 되었습니다. 정죄가 시작된 것입니다. 가족부터 시작해 교회 식구들, 나라. 세계…. 그렇게 안티 기독인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죄를 낱낱이 밝혀 고발하려고 전단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전보다 더 괴로워졌습니다. 내가 적그리스도가 아닌가, 번뇌하고 혼란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죄에 대하여 너무도 탁월한, 어찌하여도 죄에서 벗어나지지 않는 내 모습에 대하여 절망했습니다. 급기야는 포기하고 멀쩡한 교인으로서의 면모와 안티 기독교인으로서의 맹렬한 활동을 겸하면서 철저히 낮과 밤이 다른 생활을 또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 그런 시기를 어떻게 통과하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첫 번째, 회심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깨달아졌으나 ‘복음’ 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그 삶을 살아낼 능력이 없었던 것이지요. 마치 다중인격자와도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노방전도 하면서 목이 터져라 기타 치며 찬양을 하다가 이대로는 목이 터져 못 부르겠다 물이라도 한 모금 마시면 세 시간을 채울 수 있을 텐데, 그렇게 기도하고 눈을 뜨자 거짓말처럼 지나가던 사람이 물 한잔을 건네주는 작은 기적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아, 이렇게 정신병자처럼 살면서도 복음전도자로서의 삶이 가능하단 말인가, 싶어서 잠시 뜨거운 나날을 보내기도 하던, 그렇게 미친 것 같은 삶을 갈팡질팡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방송을 통해서 FIM선교회의 유해석 선교사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두 번째 기회였습니다. 바로 전화를 했고 이슬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수단을 처음으로 마음으로 접했습니다. 그러면서 ‘복음선교관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지요. 복음에 기초한 선교적 관점을 가르치는 이 과정을 통해 십자가가 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모태부터 교회를 다닌 햇수가 얼마나 됐는데 이제야 십자가 복음이 들어왔다는 것이 황망스러웠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많은 것을 보여주시고 부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지었던 죄의 열매들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했던 고통스러운 기간이었고 가야할 길에 대한 확신을 주신 위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동유럽으로 비전 트립을 가면서 ‘내가 죽는 것’ 이 무엇이며 ‘복음’ 의 원리가 무엇이고 ‘기쁨’이 어떻게 생기는 지 깨달았습니다. 안티기독인으로 살 때 저를 괴롭히던 그 문제들은 사실 ‘그들’ 이 아니라 ‘나’ 였던 것을 철저히 깨닫고 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30기 복음학교를 통해서 복음이 무엇인 줄은 알겠지만 그대로 안 살아지는 내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던 나의 존재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여기고, 드리고, 신뢰하라!’를 통해서 조각난 복음이 조립되기 시작했지요. 완전한 복음을 그때서야 온전히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세 번째의 기회였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수단을 향해 지속적으로 마음을 품고 있던 중 때마침 기도24.365에 참여하시는 어머니가 사용하는 ‘세계기도정보’ 를 보게됐습니다. 제가 평소에 늘 품고 있던 기도제목들이 그곳에 모두 들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 제가 가야할 땅이 바로 수단이군요” 마음으로 외치고 정기기도회를 다니면서 유혜석 선교사님에게 수단에도 보내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마침 그날 아침에 선교지에 머물고 있는 사모님으로부터 ‘혹시 수단에 보낼 선교사가 없느냐’ 는 전화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언어 적응 훈련 없이도 바로 파송할 수 있겠다는 결정이 나면서 수단으로 정탐을 다녀오고 그를 통하여 자기열정을 먼저 깨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수단을 객관적으로 보는 계기가 되었지요.”

– 이제 두 달 후면 단독으로 수단으로 파송 받고 떠나실 텐데 그곳에서의 구체적인 사역방침과 계획에 대하여 나눠주십시오.
“그곳에는 사역하고 있는 팀이나 가정, 개인이 없습니다. FIM선교회 방침이 한국인들이 없는 곳, 수도보다는 지역에서 현지인처럼 지내는 것을 선교 방침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제가 별도의 계획이나 사역방향을 설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과 똑같이’ 생활하는 것 만이 제 바람입니다. 그들이 농사를 지으면 저도 농사를 짓고, 그들이 낙타를 기르면 저도 낙타를 키울 거예요. 제가 음악을 전공했다고 해서 ‘지라니 합창단’(쓰레기장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케냐의 어린이합창단:편집자주) 과 같은 사역을 계획하거나 그곳이 열악한 곳이기 때문에 사회사업이 필요하겠다든가 하는 생각이 우선적으로 제 마음에 자리 잡지는 않습니다. 그런 것은 제가 그곳에서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때에 필요하다면 하나님께서 시작하실 것이고 그러면 과정으로서 제가 그에 따를 뿐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정착하는 선교사가 아니라 ‘순교하는’ 선교사로 그곳에 남겠다는 결단이 제 안에 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로 사역의 첫 걸음이 아니라 현지인들과 같은 모습으로 같은 일상을 살다가 그들 속에서 삶을 마감하겠다는 바람을 갖게 된 구체적인 계기나 롤 모델이 있으신가요?
“예.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유대땅의 나사렛이라는 작은 마을에 ‘외지인’ 이나 ‘이방인’ 으로 오신 게 아니잖아요. 마을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오셨고, 똑같은 언어와 삶을 ‘그곳 사람으로서’ 살아내셨습니다. 특별히 대우받는 특권층의 사람이 아니었지요. 그리고 현지인처럼 똑같이 머리를 하고 옷을 입고 살면서 선교를 한 허드슨 테일러와 우리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첫 번째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님이 제 사역의 롤 모델입니다.”

– 수단에서의 선교적인 그 삶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실 지 기대가 됩니다. 기도제목을 나누어 주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이 제게도 큰 기도제목입니다. 그를 위하여 늘 ‘주님의 뜻’ 에 대하여 민감히 반응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홍수에 갇혀 기도하던 선교사가 도울 사람이 다가왔는데도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만 구하다가 그를 죽게했다는 에피소드처럼 하나님의 방법에 대하여 분별할 수 있도록 항상 깨어있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저의 능력이나 경험과 하나님의 도우심 사이에서 올바른 분별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분들이 하나님 나라와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사는 것이 제 기도제목입니다. 생각나실 때마다 수단과 그 속에서의 저를 위하여 기도해주십시오.”

글 허혜란 편집위원(소설가)
사진 장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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