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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일을 한다고 거룩해지지는 않더군요,십자가 앞에 설 때, 우리는 거룩한 신부가 됩니다.”

                        "제가 만난 열방의 모든 사람들이 복음의 삶을 누리도록 섬기고 싶습니다."

“제가 만난 열방의 모든 사람들이 복음의 삶을 누리도록 섬기고 싶습니다.”
 -브라질 윤영목 선교사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짐을 받은 삶. 오늘 이 땅 위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 중 누구도 이같은‘정의’에서 벗어날 인생은 없다. 단지 그 은혜를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 그 차이가 있을 뿐이다. 깨달은 자에게는 영생의 길이, 깨닫지 못한 자에게는 멸망의 시간이 영원토록 펼쳐져 있을 뿐이다. 브라질 밀림지대에서 사역중인 윤영목 선교사(58). 4대째 모태신앙이었으나 복음과 무관한 지옥뚜껑 위에서의 삶에서 극적으로 벗어난 그는 남미에서 주님이 그려주시는 제2의 인생을 누리고 있다.

-주님을 만나기 전, 어떤 삶을 사셨는지 궁금합니다.
“4대째의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모두 한국에 복음이 전래되던 초기부터 신앙생활하던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아버지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신앙생활하던 할아버지에게서, 어머니는 황해도 소래교회를 섬기던 조부모에서 시작된 믿음의 계보를 잇는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제가 중2 되던 해에 당시 집안의 어른이며 새문안교회를 섬겼던 외조부의 소천으로 부모님과 함께 저의 신앙생활은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후광으로 승마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함께 승마를 즐겼던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 몇몇은 지금 국내 정재계에서 활약중인 권력자들이 되어 있더군요. 이후 죄 된 존재를 마음껏 드러내며 세상을 즐기다 군을 제대할 무렵에 어머니가 다시 신앙생활을 재개, 함께 주님의 품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죠.”

– 다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방탕한 삶에서 벗어나지 않은 전형적인 선데이 크리스천이었습니다. 무역회사에 다니며 새벽같이 출근해 자정이었던 통행금지 시간 직전에 귀가하는 올빼미 같은 생활을 하다, 80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미국에서는 안정된 생활을 누려가며 더욱 세상의 쾌락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그러다 10여년 동안 일궈온 모든 사업들이 무너져 극심한 경제적 위기상황을 맞게 됐습니다. 그때 당시 마약유통이나 온갖 불법적인 사업을 제안하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그만큼 제 삶의 기반이 허물어져 있었던 것이죠. 그러자 주님이 갑자기 개입하셔서 저를 미국에서 빼내어 한국에서 몇 달 동안 머물게 하셨습니다. 기적적인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당시 알고 지내던 몇몇 사람들은 총기사고 등으로 세상을 떠났더군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한 교회에 출석하게 되면서 다시 복음 앞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 주님을 진정한 나의 주인이자 구주로 인정하게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믿음 생활을 시작한 이후, 찬양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때로는 찬양인도하시는 전도사님과 함께 기타를 치며 예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찬양팀을 인도하던 그 전도사님이 교회를 떠나게 된 겁니다. 교회 장로님이 제게 그 자리를 맡아달라고 요청하셨지요. 제가 유년시절에 교회를 떠나 당시 많이 부르던 복음성가를 전혀 알지도 못했는데, 저도 모르게 ‘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같은 대답에 저도 놀랐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원하지 않은 일을 그렇게 아무 조건 없이 ‘순종’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첫 순종이었지요. 그리고 매일 집에서 몇 시간씩 찬양 연습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섬김도 정말 ‘순전한 순종’인지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됐습니다. 12명까지 늘어나는 찬양팀의 부흥이 허락되자, 교만한 마음으로 실족하게 되고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완전한 절망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제게 진리의 기반이 없음을 깨닫고 다양한 훈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의학을 공부하고, 1년에 4-5차례 열방을 다니며 단기선교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2006년 십자가복음 앞에 서게 된 복음학교를 통해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사시는 삶으로 사는 자임을 고백하게 됐죠.”

– 지금 사역지인 브라질 마카파 지역은 어떻게 섬기게 되셨나요.
“2004년에 선교에 관심 있는 분들과 함께 ‘아마존을 품읍시다’라는 기치 아래 7명이 모여 브라질 동북부에 위치한 마카파란 곳에 가게 됐습니다. 이곳을 어떻게 복음화할 것인가를 두고, 기도하며 리서치하는 일정이었습니다. 마카파 자체는 꽤 큰 소도시지만, 이곳에서 아마존 지역으로 이어지는 복음의 불모지대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주님이 그 마음을 주셨겠지요. 언젠가는 이곳을 섬기자.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탐을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주님은 예기치 않은 사건을 통해 또 한번의 결단을 하게 하셨습니다. 2004년 딸이 예비군으로 있다가 현역으로 이라크전에 참전하게 된 것입니다. 이듬해 1월1일 현지에 도착한 딸아이가 다소 지친듯한 목소리로 함께 도착한 다른 팀은 교전중이라며 전화로 안부를 전하더군요. 앞으로 어떤 상황을 맞게 될지도 모를 딸을 위한 기도가 절로 나오더군요. 그때 주님이 잠언 14:26말씀을 주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자녀에게 피난처가 주어진다는 말씀을 보게됐습니다. 그리고 저도 믿음의 땅에 서야겠다고 결단하게 되고,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느꼈던 마카파로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선교사의 삶을 결정했다기보다는 순종의 발걸음이 선교지를 택하게 된 것이군요.
“예. 당시 저는 뒤늦게 배운 한의사 자격증으로 한의원을 하며,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제가 한의사로 섬기다보니 한의사는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라는 은사라고 생각되더군요. 그러다보니 거의 무료시술로 주변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어차피 사람을 섬기기로 결정된 삶인데 장소만 바뀌어지는게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브라질로 가야겠다는 마음의 결정을 한 이후, 주님은 멕시코로 가서 언어훈련을 받게 하셨고, 자연스럽게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더군요.”

– 브라질에서 현재 어떤 사역을 하시는지요.
“사실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할 무렵, 아무런 대책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순종하기로 결정한 그때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그곳에 센터를 구축할 최소한의 자금이 확보됐습니다. 그것도 한꺼번에 마련된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주님이 허락해주셨지요. 처음으로 홀로 그곳을 찾아가 땅을 개간하고, 어린이성경학교를 열어 복음을 나누고 한 걸음 한 걸음 순종했습니다. 또 강을 거슬러 12개의 폭포를 지나 현지인과 함께 먹고 자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제목을 나눠 주세요.
“현재 저는 부족하지만 주님이 일을 하신다는 사실을 여러 영역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교회나 단체로부터 후원을 끊으시고, 현재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아내에게 기대던 재정지원도 최근 주님이 정리하도록 하셨습니다. 사실 아내에게 의존하던 재정지원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으나, 그것 역시 주님만 의뢰하는 선교방법이 아님을 깨닫게 됐습니다. 이제 오직 주님만 믿도록 코너로 몰아붙이고 계십니다. 정말 주님만이 저의 의뢰대상인지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앞으로 이곳에 나무를 심어, 현지인들이 복음 안에서 믿음으로 설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주님 일을 한다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앞에 설 때 비로소 우리가 주님의 거룩한 신부로 선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제가 만난 열방의 모든 사람들이 그 복음의 삶을 누리도록 섬기고 싶습니다. 계속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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