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네 가족이라면 이 정도로 충분하겠니?”

사람의 마음에는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 파스칼
몇 년 전의 일이다. 청소년들이 십자가 복음 앞에 서 는 자리에서 중보기도로 섬기게 되었다.  섬기는 지체 들이 보통은 20대 청년들로 구성이 되는데 연령으로는 결코 자격이 되지 않는 나를 그 자리에 데려다 놓으신 것은 주님의 특별한 은혜이자 음모였다.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어떤 자리인지 잘 모르고 온 듯한 표정들이었 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지나면서 졸기를 거듭하고, 졸지 않으면 딴 생각, 잡담, 낙서에 집중하는 아이들. “전능하신 주님도 이 아이들은 어쩌실 수 없나보다” 섬 김이들이 함께 기도하는 시간. 참담하고 착잡한 마음들 이 얼굴에 묻어났다. 그 때 전해진 소식. “OOO가 집에 가겠답니다” 사단이, 세상이 조롱하고 비웃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했다. “복음이면 충분하다며… 너가 믿 는 예수, 십자가는 능력이라며…”  죽음같은 시간이 잠 시 흘렀다.
가난한 심령에 임하는 복  비참했다. 절망스러웠다. 그런데 갑자기 너무 속상하 고 견딜 수 없이 분한 마음이 들었다. 눈물과 절규가 터 져 나왔다. “주님, 이렇게 끝날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음란, 증오, 분노, 수치, 두려움 에서 아이들을 건져주십시오. 주님의 십자가가 결코 허 망한 것이 아닌 것을 나타내 보여주십시오.” 기도라기 보다는 절규였고, 울부짖음이었다. 다들 목이 잠겨서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더 기도할 힘도 없었다. 그때 다시 주님이 이렇게 도전하시는 듯 했다. “이 아이들이 네 아들, 딸이라면, 네 동생이라면 이 정도로 충분하겠 니?” 나의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고, 더 이상 힘도 미련 도 남지 않을 만큼 소리지르며 십자가의 능력과 주님 의 승리를 선포했다. 그렇게 기도시간은 끝이 났고 결 국 주님은 아이들에게서 아쉬움이 남지 않을 만큼 최 고의 영광과 찬송을 받아 내셨다.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너무 감격하는 시간이었다. 가난한 심령에 임하는 복이 무엇인지, 내게 임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 땅에 동 일하게 임하는지 알려주시는 주님의 완전한 작전이었 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주민(migrant)들에 대하여 우 리 단체에게 거룩한 부담감과 기도제목을 주신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본격적인 움직임을 위해서 몇몇 분들과 모임을 가진 것도 몇 개월 전이다. 그 이후 중보기 도모임이라도 시작하려고 수차례 시도했지만 이런 저 런 이유로 더 이상 진행되지가 않았다. 나 스스로를 봐 도 그렇고 이주민들과 그들을 대하는 한국교회의 현실 을 바라보노라면 예전에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것 같은 절망스러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나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신 복음이면 충분한데 어떻게 이들을 섬길 수 있을까 고민하며 끙끙대는 시간을 계속 보냈다.
이주민들에게도 십자가 복음이면 충분한가?  그러던 중 올해 상반기에 교회에서 사용할 전도 자료 들을 준비하게 되었고 그 자료를 가지고 교회에 함께 출석하고 있는 한 태국에서 온 한 형제와 교제하게 됐 다. 과거 전문인선교사로 헌신했던 시절의 얘기를 나눴 다. 당시 내가 꼭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몰라 삶 의 허무함이 찾아올 때면 육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해 술과 음란의 죄에 빠지고, 행복하기 위해 학벌, 사람들 의 인정, 쾌락들을 쫓아다녔지만 어떤 것으로도 행복할 수 없었던 내게 어떻게 예수님이 영원한 기쁨과 소망 의 이유가 되셨는지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형제는 그 자료를 가지고 다른 태국 형제와 자신이 만난 예수님 을 전했고, 전해 들은 형제는 또 다른 부부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그 중 한 형제가 이렇 게 고백했다. “와, 이렇게 하면 나도 태국에 있는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어요.” 불교 모태 신앙 출신인 그 형제의 입에서 이와 같은 고백을 받아 내셨다. 할렐루야!!  엎치락 뒤치락 씨름하고 있는 동안 주님은 이주민 중 보기도모임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준비시켜 주셨고, 향 후 진행될 방향과 식양을 하나씩 준비하게 하셨다.

돈 을 찾아, 행복을 찾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들 어온 이주민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면 충분한가? 아멘이다. 이들의 마음에도 하나님으로 만, 십자가로만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나라와 민족이 다른 이주민들을 한국에 보내신 주님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이들이 나의 아들, 딸들이고, 너의 아들, 딸들이란다.” 이들과 그리스도의 한몸된 교 회를 이루어 함께 땅끝에서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는 그날을 사모해 본다. 아멘 주예수여 어서 오소서.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 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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