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년간 상설 공연예배로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것”

언제 깨질지 모르는 이혼 위기의 가정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 어느 날 어머니의 미용실에 찾아온 손님의 전도로 온 가족이 동시에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교회 성극에서 이삭을 연기하며 예수님의 마음을 알게 된 후로부터 지금까지 공연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영혼들을 섬기는 김관영 목사(문화행동아트리 대표). 현재 대학로에서 문화예술 선교사로 헌신한 지체들과 함께 2017년 한 해 동안 쉬지 않고 ‘더 북(The Book)’ 공연 예배를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어떻게 1년간 쉬지 않는 이 어마어마한 공연 예배를 기획하게 되셨나요?

“지난 2013년 ‘오직 성경으로’라는 주제로 ‘더 북’이라는 뮤지컬을 만들어 공연했어요. 그때 ‘종교개혁 500주년 때 한 번 더 공연하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죠. 그러다 올 한해를 어떻게 순종할까 기도하던 중 복음과 기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종교개혁임을 새겨주시면서 교회와 열방을 섬기기로 했어요.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명지인 대학로와 문화·예술인들까지도요.

사실 이 일은 2001년에 있었던 작은 사건이 계기가 됐어요. 제가 처음 부목사로 사역한 교회는 대학로 근처 한 빌딩 지하에 개척된 곳이었는데, 어느 날 유명한 뮤지컬에 출연하던 배우들이 저를 찾아왔어요. 배우들 중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많으니 공연을 끝낸 후, 기도를 하고 집에 갈 수 있도록 장소를 허락해 달라고요. 사실 공연이 끝나면 집에 가기도 힘들 정도로 배우들은 탈진 상태인데 기도를 하고 싶다니. 정말 제 마음에 큰 기쁨이 있었죠. 그런데 교회에서 허락해주지 않아서 참 안타까웠어요. 그 기억이 오래 제 마음에 남아 있었어요.”

– 기도에 대한 갈망이 있는 배우들이 있군요.

“그럼요. 지금 대학로는 200여 개의 극장이 있고, 100여 개의 공연이 올려지지만 목마름으로 헤매고 방황하는 연극계 사람들이 많아요. 이들이 매일 밤 기도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고 싶었어요. 주일에 대학로는 손님이 없기 때문에 오후 3시나 4시에 한 차례 공연을 하고 나서 대부분 술집으로 가죠. 밤새 술을 마시면 공연이 없는 월요일은 하루 종일 잠을 자요. 이것이 대학로의 굳어진 생활 방식이예요. 그래서 저희는 결정했어요. 이들이 저녁에 술 마시러 가는 대신, 복음을 들을 기회를 마련해보자. 그렇게 생각한 것이 ‘그 나무 아래’라는 이름의 복음특별집회예요.”

갈망하는 영혼들을 위해 1년간 복음특별집회 열기로

re_152_5_2-inter2– 그렇다면 이 집회도 1년간 열리나요?

“네, 맞아요. 이런 모임이 지속적으로 가능하도록 1년 동안 대학로 극장을 빌리기로 했어요. 그렇다면 공연예배도 하자. 또 집회만 한다고 하면 배우들이 딱딱하게 느낄까봐 정성스런 밥도 준비하기로 했어요. 혹시 이 이름으로 집회가 열린 적이 있나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는데 한웅재 목사님의 ‘그 나무 아래로’라는 제목의 곡이 있었어요.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보려고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의 이야기더군요. 세상의 성공과 위선이라는 나무 위에 있는 배우들에게 ‘삭개오야. 내려오너라.’고 예수님이 부르시는 것 같았어요.

성경에는 없지만 삭개오는 그 뽕나무 위에서 열매 따는 시늉을 했다고 해요. 돈 많은 그가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죠. 그의 진정한 갈망은 예수님, 참 진리였던 거죠. 그 마음을 아신 예수님이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죠. 대학로에 있는 이들을 그렇게 십자가 아래로 초대해 쉼을 누리게 하고 싶어요.”

– 매 주일 저녁 특별복음집회와 함께 공연예배도 있나요?

“네. 1년간 370회 정도의 공연을 주일을 제외한 평일 저녁 8시, 토요일과 공휴일은 오후 3시와 저녁 7시에 있어요. 올해 저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예요. 정말 믿음으로 죽기를 각오했어요. 아마도 우리나라 공연사에 없었던 일일 거예요.”

– 이런 순종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해본 적 있으세요?

“몇 년 전 2달 정도 쉬지 않고 공연을 해본 적은 있어요. 사순절을 기념해 그해 2월부터 ‘의’라는 공연을 시작했는데, 공연계에서는 무대를 잘 올리지 않는 기간이죠. 소극장 공연은 막연하게 관객을 기다리기 때문에 정말 피 말리는 전쟁인데, 어느 날 매표 담당 선교사가 관객이 2명밖에 없다며 저에게 어떻게 할지 물어요. 출연 배우들보다 관객 수가 적으면 표를 돌려드리는 것이 일종의 관행이라 저도 보통 때처럼 말했죠. 그런데 저희 식구들이 천하보다 귀한 두 영혼이 왔는데 어떻게 공연을 쉴 수 있겠냐며 공연을 하겠다는 거예요. 정말 눈물이 핑 돌았어요. 주님이 우리를 이렇게 바꾸셨구나. 그래서 저희 공연 예배를 통해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 돌아온다면 우리는 순종하겠다고 결심했어요.”

– 인터넷 온라인상에서 ‘삐끼(호객 하는 사람) 목사’라는 명칭으로 활동하고 계시던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한때는 대학로에서 엄청 유명한 삐끼였어요(웃음). 공연인들이 공연을 기획하고, 만들고 자신을 표현하는 건 어려워하지 않지만 사람들에게 직접 다가가 설득하고 초대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어요. 그래서 제가 삐끼노릇을 했죠. 그날도 여느 날처럼 거리에서 저희 공연홍보를 하고 있는데, 아시는 목사님이 보시고는 ‘저 사람 완전히 삐끼 목사 다 됐구만.’ 하시는 거예요. 그 말이 제 마음에 새겨졌어요.

최고급 음식으로 잔치를 준비했지만 사람들이 초대를 받지 못하면 올 수 없듯이 공연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알지 못하면 찾아오지 못하잖아요. 지금은 불법이라 거리에서 호객 행위를 하면 벌금을 물고 연극협회에서 제공하는 게시판에 포스터를 붙이지 못해요. 그래서 온라인과 모바일 문자를 통해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 그런데 공연을 보신 분들이 격려해 주시고 저보다 더 활발하게 삐끼 역할을 해주고 계세요.(웃음)”

– 목사님은 연극을 배우셨나요?

“아니오, 저에게는 교회와 대학로가 학교였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영접하고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했어요. 그 이듬해 어느 날 교회 선생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이라는 부활절 성극에서 이삭 역할을 맡으라고 하셨어요. 연극이 뭔지도 모르고, 이 내용이 부활절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이삭이 되어 실제 결박된 제가 제단 위에 눕혀졌을 때, 예수님의 마음이 부어졌어요. 그때 성극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어서 교회의 모든 연극에 출연하게 됐죠. 중학생이 돼서는 문학의 밤이라는 것을 통해 더 연극을 배웠죠. 당시 종로 5가 CBS 방송국 2층에 교회를 대상으로 의상도 빌려주고 대본도 살 수 있는 시청각 자료실이 있었어요. 제집 드나들 듯 매일 찾아갔어요.

어느 날부터는 우리가 하려는 연극에 맞는 대본을 찾지 못해 제가 대본을 쓰기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어요. 그러다 저와 제 친구들 8명이 ‘구유선교단’이라는 문화 선교단체를 창단해 활동하기도 했죠. 공연에 필요한 기본적인 학습은 했지만 이렇게 현장에서 배운 것들이라 일반 공연 어법에 맞지 않는 게 정말 많을 거예요.”

우상 숭배자에서 복음만을 높이는 예술선교단체 출범

– 정말 대단하시네요. 청소년 시절부터 문화사역을 하셨군요.

“방학이 되면 전국을 돌아다니며 2박3일간 문화부흥회를 열었어요. 중3부터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정말 신나는 시간이었죠. 성극을 하고 악기도 연주하고 아카펠라를 부른 후, 복음을 선포했죠. 그때 복음 선포자로 함께 했던 분이 저의 이모부가 되셨는데, 지금은 해외에서 선교사로 활동 중이세요. 대학교 3학년이 될 무렵 각자 사정으로 팀이 해체됐고, 저는 다시 신학생으로 돌아가 2년간 학업에만 마음을 쏟았죠. 그러다 사역지를 정할 때, 모교회 목사님이 저를 부르셔서는 이곳에서 문화사역자로 꿈을 펼치라고 하시더군요.

교회에서 ‘말죽거리’라는 이름으로 극단이 창단된 후 10년간 사역을 했어요. 1년에 한편씩 기독교 연극을 무대에 올렸죠. 이런 작품들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기독교 연극을 발전시키고 싶어 ‘문화기획 나들목’이라는 이름으로 공연기획사를 세웠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oh! my gods!(오 나의 잡신들)’라는 기독교 풍자 뮤지컬이에요. 정작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이용해 세상을 섬기고 나를 섬기는 슬픈 자화상이 담긴 내용이죠.”

– 의미를 다 알고 제작하신 건가요?

“문제 의식은 있었는데, 그게 저라고는 상상을 못했죠. 마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처럼 포장해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고 그것으로 쾌락을 느꼈어요. 교계에서 만든 작품이 세상에서도 인정받는 첫 케이스가 되어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인터뷰를 하루에 서너 번씩 하고, 강의 요청이 쇄도하면서 저희 팀도 유명해졌어요. 하지만 재정적으로는 정말 어려웠어요. 예수 같은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만큼 헌신적인 삶을 살았어요.

그런데 제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자아의 욕망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어요. 훗날 복음 앞에 선 이후에야 알았죠. 결국 대학로의 우상이 되고 싶었더군요. 이런 우상 숭배자였던 저는 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면서 고스란히 죄인으로 드러났어요. 직원들이 퇴근한 늦은 밤이 되면 온갖 음란 동영상을 뒤적였어요. 아내가 둘째를 출산하고 난 후 산후조리를 하러 멀리 본가로 갔을 때 젊은 여직원과 간음을 저지르고 말았어요. 그 후, 2년 반 동안 황폐하게 살았어요.”

– 모든 것이 무너졌네요.

“네. 사역도 가정도 명예도 저의 죄로 인해 모든 것이 박살났어요. 이모부님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가정으로 돌아오게 됐어요. 많은 연극인들이 저의 소식을 듣고 찾아왔고, 만 3년 만에 공연을 했지만 이모부님이 사역보다는 복음 앞에 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권면해주셨어요. 그래서 아내와 함께 2007년 1월 총체적 복음 앞에 서는 큰 은혜를 입었어요. 그 시간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도 자아추구의 극치를 달렸겠죠. 저의 생명의 변화를 본 극단 식구들도 복음 앞에 서고 변화되기 시작했어요. 더 이상 이대로 살 수 없다 선언하며 십자가 복음만을 높이는 공연을 위해 2009년 5월, 13명의 선교사들의 극단 ‘아트리(Artree)’가 새롭게 출범되었어요.”

“기다림 속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배워요”

– 연극인들이 선교사가 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네. 저희도 그저 은혜였어요. 첫 2년간은 대학로로 출퇴근 했죠. 공동체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필요해서 시작했어요. 1년이 지난 후, 함께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한 형제가 자기 생애에서 최고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막 울더라고요. 3년을 약정하고 단체를 시작했는데,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 같아 부끄럽다며 종신으로 선언을 하더군요. 그리고는 다른 지체들까지 줄줄이 종신 선교사로 선언했어요.”

– 정말 기쁜 순간이었겠네요.

“부끄럽지만 저는 준비가 안됐어요. 당시 지체들이 저한테 안 물어봐줘서 다행이었지, 너무 이 바닥 일이 힘드니까 3년 후에 그만 두려고 했거든요. 몇몇 사람들이 단체를 이끌 때 얼마나 힘드냐고 물을 때마다 저는 정말 미안해요. 제가 아니라 식구들이 저를 이끌어줬거든요. 어디서 살아야 하는지, 뭘 먹어야 하는지 현실에 부딪히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했어요. 어느덧 함께 산 시간으로는 만 6년의 시간이 됐네요. 한국교회로부터 열방으로부터, 복음기도동맹군으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re_152_6_3-interview3– 공동체로 살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갈등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주님은 복음과 기도의 자리로 초대해 주셔서 갈등이 변하여 사랑이 되는 경험을 하게 하세요. 갈등은 여전하지만 복음으로 품어 안고 갈 수 있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으니 바로 이곳이 천국이죠. 어려움을 빨리 해결하고 싶을 때도 많았어요. 그럴수록 더 실패를 경험하게 돼요. 그렇게 공동체 속에서 기다림을 배우고, 나를 통해 얼마나 오래 참고 기다리셨는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지금도 배워요.”

– 마지막으로 기도제목이 있으시다면요.

“최근에 학생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SVM)을 통해 주님 오시는 날까지 저희가 가야할 구체적인 비전 로드맵을 받았어요. 문화사역은 그저 메시지를 전하기 전,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오프닝 사역쯤으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최근에 성경을 보면서 이 사역은 클로징(closing) 사역임을 알게 됐어요. 아무리 말씀을 선포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백성들을 위해 심판 직전 선지자들에게 실제 행동을 명하셔서 깨닫게 하시는 일이죠. 이제는 예술인들을 선교사들로 부르셔서 열방의 씨앗으로 훈련시키는 예술선교대학(Artist Volunteer Movement, AVM)에 대한 비전이 더 확고해졌어요. 이 공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고 선교의 비전을 받고 복음으로 섬기는 마지막 메신저가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GNPNEWS]

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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