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축복

일러스트= 임이랑

복음이면 충분합니다 / 164호

성전에 충만한 영광의 복음 (2)

건물로서 성전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고백과 더불어 주님께 즐거이 순종하고 복종하는 삶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건물로서 성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이스라엘이 그것을 보여준다. 포로귀환 이후 스룹바벨을 통해 성전을 건축했고 이후, 종교적인 목적으로 또다시 헤롯성전을 지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 질책을 받았다. 주님은 ‘사흘 만에 성전을 다시 세우시겠다’(요 2:19)는 당시에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 건물로서의 성전은 상징적 의미에 불과하다. 십자가를 통해 너희의 심령을 성전 삼겠다는 뜻이다(고전 3:16). 심지어 요한계시록 21장에서는 하나님과 그 어린양이 친히 성전 되시는(계 21:22) 놀라운 일이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다. 할렐루야!

인생이 맞이하는 가장 끔찍한 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임하지 않는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그것도 제사장이었던 ‘엘리’가 그런 비참한 자였다. 성막에서 직업상 직무는 감당하는 혈통적 제사장이었지만 시대가 타락함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도, 이상도 경험하지 못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것은 가장 무서운 저주다. 정통 모태신앙이었던 엘리의 두 아들의 불경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해가 안 될 만큼 길이 참으셨다.

하나님에 대한 관념만 있던 그들은 믿지도 않는 하나님을 전쟁이라는 다급한 상황 속에서 부적처럼 사용했다. 결국 두 아들 모두 전쟁터에서 죽는다. 아버지 엘리는 법궤가 적에게 빼앗겼다는 말을 듣다가 목이 부러져 죽는다. 며느리 또한 해산 중에 ‘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을 외치며 죽는다.

이 같은 일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도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블레셋 군대 앞에서 다급해졌다. 종교적 위안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며 묻지만 하나님께서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어떤 방법으로도 말씀하지 않으셨다(삼상 28:6). 비참한 육신의 죽음이 있기 전에 이미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저주 가운데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책망이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영적 기근의 고통

성경의 많은 곳에는 하나님의 침묵을 고통스러워하는 증인들이 모습이 등장한다(시 22). 성경은 농경시대에 기근보다 더 끔찍한 일은 말씀을 얻지 못하는 영적기근이라고 말한다(암 8:11~12). 심지어는 들려줘도 들을 수 없는 때가 도래할 것이다. 마치 주님이 가룟 유다의 발을 씻기시고 귀빈에게 대접하듯 대접하시고 떡을 주기도 하셨지만 결국 돌이키지 않은 것처럼.

영적 문둥병으로 모든 영적 신경이 죽어버리는 이런 일은 한 번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야금야금 찾아온다. 육체에 나를 조금씩 내어주기 시작하면 점점 완고해져서 끝끝내 돌이키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 기적과 같은 분명한 증거를 보아도 돌이키지 않는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사로와 함께 등장하는 부자는 아브라함을 향해 나사로를 보내서 형제들을 경고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모세와 선지자,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의 경고를 못 받으면 죽은 자가 부활해서 전한다 해도 들을 수 없다고 아브라함은 말한다.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어떤 것으로도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주님의 분명한 경고다. 물론 육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깨달을 수 없다. 그래서 인간에게 가장 큰 저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일이며, 우리에게 가장 큰 은혜가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 무엇으로도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과연 축복 중의 축복이다.(2016. 6 메시지 정리) <계속> [복음기도신문]

김용의 선교사
(순회선교사.LOG미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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