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한 믿음의 걸음을 꿈꾸며…”“神様だけで十分である信仰の歩みを夢見ながら。。”

목마른 자로 주님 앞에 서는 김동준 전도사(봉화현교회)

[message_box title=”” color=”red”]모태신앙으로 자라난 청년. 그저 교회 뜰을 밟던 자에서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을 소망하는 새로운 피조물로의 변화되는 경험. 신학생과 교회 사역을 오가는 전도사로서, 부교역자로서 복음이 내 삶에 실제인가 질문해보지만 여전히 목이 마르고 주님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시간들. 이 시대 한 청년 사역자의 주님 부르심에 순종하며 달려가는 모습을 통해 주님의 이끄심과 순종의 삶을 함께 묵상해본다[/message_box]

이번 가을학기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셨다구요. 그동안 주님이 이끌어 오신 시간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까요?
“무너지고 절망하고,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신학교로 부르심 받은 이후 복음이 결론된 신학을 꿈꾸고 또 선교단체를 통한 복음과 기도의 삶을 사는 훈련을 받고, 지역교회에서도 전도사로 섬기는 일이 함께 진행되었어요. 정말 주님 앞에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시간이었죠.”

– 어려서부터 목회에 대한 부르심이 있으셨나요?
“아뇨. 저는 모태신앙으로 교회 안에서 자랐지만,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일 뿐이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교회의 다른 프로그램에 일절 참여하지 않고 주일 낮 예배 시간에만 참석했었어요. 예배시간에 졸다 나오는 신앙생활이 한 10년 동안 지속되었죠. 그러면서도 ‘태어나면서부터 교회를 다닌 모태신앙이라는 이유로,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인식이 있다’는 이유로 ‘천국에 갈 수 있다’라는 엄청난 오해를 하면서 살았죠.”

십자가복음을 통과하며

– 그런 ‘종교생활’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가 있으셨겠군요.
“2003년 군대를 전역하고 못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부모님을 설득해서 대입수능을 다시 보기로 했어요. 그리고 수능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알았던 (저를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이 필요했죠(웃음). 그래서 교회에 열심히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을 전능한 종으로 부려먹으려는 저의 불순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십자가’를 주제로 진행되는 한 집회에서 저를 만나주셨어요. 은혜였죠. 10년을 엉터리로 신앙생활을 했던 터라 찬양 한 곡 제대로 할 줄 몰랐던 저였지만, 주님은 이천년 전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단순한 복음이 그대로 믿어지게 하셨어요. 그러면서 저의 죄악된 삶들을 회개하게 되었고, 거듭남을 경험했죠.”

– 신학교를 가게 된 연유도 듣고 싶은데요.
“그때까지 목회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어요. 그런데 학교에 복학한 해 여름에 교회에서 이스라엘로 아웃리치를 가게 되었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으셨던 그 길을 걷게 되었는데, 알 수 없는 눈물이 계속 났어요. 그리고 제 입에서 ‘제가 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입니까?’라는 기도를 계속 되뇌게 되었어요.

그런 후에 누가복음 18장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는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를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고, 신학교에 가기로 결심하게 됐어요.”

– 신학교를 다니던 기간에 강도 높은 훈련을 받으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훈련을 받으셨나요?
“신학교를 다니면서 제가 훈련되어야 했던 부분은 말씀과 기도 안에 거하면서 신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신학 공부를 통해 얻은 진리를 붙들고 깊이 있게 기도를 하지 않으면 신학은 사변화되거나, 오히려 하나님보다 자신의 지식을 더 높이 평가하는 죄악에 빠지게 되는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신학교의 과제와 시험 그리고 지역교회를 섬기는 사역이 겹치게 되면 제일 먼저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줄어들더라구요. 기도 중에 하나님과 깊이 있는 교제를 하지 못하니까 자연히 힘든 시간이 찾아왔어요. 신학생이 서로 주고받는 농담이 있는데, ‘신학교에 불덩이로 들어와서 잿더미로 나간다’라는 말이죠. 저는 이 말을 굉장히 싫어했는데, ‘이것이 신학생의 현실인가?’라는 위기감으로 흔들리기도 했었죠.”

-그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정말 바싹 메마른 시기였어요. 2010년 가을이었는데 가장 절망스러운 때였죠. 그때 주님께서 한 선교단체에서 진행하는 ‘말씀기도학교’로 불러주셨어요. 그때 말씀기도 본문이 로마서였어요. 늘 읽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 말씀을 통해서 다시 제게 복음이 들려질 때, 그 앞에 엎드려지고, 기도하게 되면서 그 복음으로 제 영혼이 다시 살아남을 경험했어요.

그 일을 겪으면서 신학교 안에서 말씀과 기도의 견고한 결론을 가지고 서로에게 증인이 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점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어요. 함께 이 믿음의 싸움을 싸울 동료들이 필요했어요.”

말씀과 기도를 결론으로 붙잡고 달리다

– 지금은 그런 공동체가 신학교 안에 세워졌나요?
“주님은 정말 선하신 분이세요. 목마름을 주시고 그 목마름을 해갈하게 하셨죠. 처음에는 복음과 기도가 결론인 것에 대해 동의하는 학우들과 함께 작은 모임을 시작했어요. 매주 모여서 복음스터디를 했고 말씀기도를 했어요. 그리고 이후에는 이 모임의 멤버들이 선교사파송연구회라는 동아리를 통해 더욱 활발하게 움직였어요. 예를 들어, 개교기념제 특강을 통해 복음과 기도가 신학의 영역 안에서도 가장 근본이며 생명이라는 사실을 신학생들 안에 새삼 깨닫고 인정하는 일이 있었죠. 지금도 후배들이 그 정신을 잘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닌 것 같지만, 제게는 주님이 행하신 정말 엄청난 사건이었죠.”

– 그렇게 훈련받은 신학생이 지역교회를 섬기면서 겪었던 어려움은 없었나요?
“2010년 4월부터 봉화현교회(담임목사 호병기)에서 청년부사역을 시작했어요. 복음을 가지고 영혼들을 섬겨야하는 목회라는 영역에 실제로 부딪히면서 제가 알고 있는 복음이 얼마나 실제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지체들을 섬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높은 기준들로 지체들을 판단하고 정죄했죠. 그리고 복음을 전해도 반응이 없는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능력 없는 자신을 한탄했어요.

당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주일 설교였어요. 나 자신도 실제가 되지 않는 복음을 전해야 하겠는데, 전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전하지 않을 수는 없고…. 아내가 그러는데 그 당시 토요일 밤만 되면 설교 준비하면서 제가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구요(웃음).”

– 이 훈련 과정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교훈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작년 여름에 제가 섬기는 청년부의 한 지체가 “전도사님은 일주일에 한 번 설교하러 오는 강사 같습니다.”라고 하더라구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로 마음이 무너졌어요. 그 사건을 통해서 주님은 고린도후서 4:15절의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는 말씀으로 책망하셨어요.

그 말씀을 받고 제가 복음으로 낳은 지체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시도한 적도 잉태한 적도 없었죠. 그것을 계기로 제 태도가 바뀌었어요. 주님께 단 몇 명이라도 복음으로 낳는 사역을 하고 싶다고 매달렸죠.”

– 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제게 변화가 나타난 이후 청년부 지체들도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복음이 내게 주는 기쁨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듣는 대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부어지지 않으면 전달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어도 끝까지 믿는 인내도 필요하구요.

최근에는 청년부에서 자체적인 기도수련회를 두 차례 가지면서 기도하는 공동체로서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고, 제자양육반, 성경통독반, 성경개관반을 통해 복음으로 양육하는 것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어요.”

복음으로 제자 낳는 자를 소망하다

– 아프리카 선교에 대한 비전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아프리카에 대한 마음은 신대원을 준비하면서 선교지에서 1년을 보내겠다는 서원을 했을 때, 주님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응답을 주셨어요. 그런데 이것이 언젠가 해결해야 할 숙제처럼 남아있었죠. 그러나 지금은 그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선교를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부르심을 받을 때에 받았던 누가복음 18장의 말씀은 ‘목사’라는 직분으로의 부르심이 아니라, ‘선교적 존재’로의 부르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작년 말 복음기도동맹에서 주관한 ‘다시복음앞에’ 집회에 참석하면서, 다시 한 번 주님의 책망을 받고 미뤄왔던 선교에 대한 부르심에 응답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사신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없는 사람처럼, 고아처럼 혼자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이미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순종하지 않는 저의 모습에 주님이 너무 섭섭해 하고 계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일단 먼저 순종하는 마음으로 올해 초 순회선교단의 복음선교관학교를 섬겼는데 놀랍게도 아웃리치로 남아공 땅을 밟게 되었죠. 다녀와서는 어떤 한 나라가 아니라 아프리카 땅에 대한 마음을 주셨어요. 본격적인 선교 준비를 위해서 2012 선교한국도 참여했어요. 2-3년 교회사역을 하면서 준비과정을 거쳐 선교지로 나갈 계획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 계획이나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먼저 선교를 준비하며 순종하는 과정을 통해서 재정, 사람, 부모님 등 알게 모르게 하나님 외에 내가 의지하고 의존하는 모든 것들이 끊어지고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한 믿음의 걸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역교회 안에서도 복음과 기도로 세워지는 공동체를 보고 싶어요. 또한 그런 공동체를 세워나가기 위해서 영혼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품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 기도제목이에요.”

J.S

渇く者として神様の前に立つ、キム ドンジュン伝道師(ボンハヒョン教会)

[message_box title=”” color=”red”]キリスト教家庭で生まれて育った青年。彼は教会の庭を踏んでいた者から、神様の国の復興と宣教完成を望む新しい被造物としての変わる経験。神学生と教会の働きを行う伝道師として、副教役者として、福音が自分の人生に実在しているかを質問して見てはいるが、いまだに渇きを感じ、神様が必要だと感じる時間。この時代の一人の青年の、働き者の主の呼びに従順して走っていく姿を通して、神様の導きと従順の人生をともに黙想して見ます。[/message_box]

―今度の秋の学期に神学大学院を卒業しましたね。そのあいだ神様が導いてくださった時間を一言で要約できますか。                                                      ‘崩れて絶望して、そして神様を見上げる時間だったと言えます。神学校への声かけをいただいた後、福音が結論になる神学を夢見て、また宣教団体を通して福音とお祈りの生き方を生きる訓練をうけて、地域教会でも伝道師として使わされて進みました。本当に神様の前で強度の高い訓練を受けた時間でしたよ。’

―幼い時から牧師に対しての声かけがありましたか。                             ‘いいえ、私はキリスト教の家庭に生れて育ちましたが、名目上のキリスチャンでした。中学校の時から教会の他のプログラムにはいっさい参加出ず、日曜日の昼の礼拝時間だけ参加しました。礼拝時間では眠っていた信仰生活がおよそ10年続けました。そうしながらも、‘生まれながらの信仰だという理由で、神様がいらっしゃることを否認できないと認識していました。’その理由で、‘天国へいける’というひどい誤解をしながら生きていました。‘

十字架の福音を通過しながら

―そんな‘宗教生活’から抜け出したきっかけがあったでしょう。                       ‘2003年軍隊を終えて夢を果たすために、親を説得して大学入試を再び受けるようにしました。そして入試に成功するためには、幼い時から知っていた(私のため)全能なる神様が必要でした((笑)。それで教会に熱心に通うようになりました。

しかし神様を、全能な召使として利用しようと思った私の不純な意図にもかかわらず、神様は‘十字架’を主題に進行するある集会で私に会ってくださいました。恵みでした。10年を無駄に信仰生活をしていたので、讃美歌一曲もまともに出来なかった私でしたが、神様は2千年前、イェス様が私の罪の代わりに、十字架で死んでくださった単純な福音が、そのまま信じさせてくださいました。それで私の罪の人生を悔い改めて、生まれ変わりを経験しました。 ‘

―神学校に行くようになった理由を聞きたいです。                               ‘その時まで牧師の働きに関して一回も考えたことがなかったです。しかし学校に復学した年のある夏に、教会でイスラエルへアウトリーチを行くようになりました。イェス様が十字架を背負って歩いたその道を歩くようになった時、訳の分からない涙がずっと流されました。そして私の口から’私が背負わないといけない十字架は何ですか‘という祈りをずっと繰り返していました。

そんな後で、ルカの福音書18章に、‘神様の国のために、家、妻、兄弟、両親、子を捨てた者は必ずこの時代ではその幾倍も受け、また、きたるべき世では永遠の生命をうけるのである’というみ言葉を通して、神様が私を呼んでくださっているのがわかり、神学校に行く決心を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

―神学校に通う期間に強度の高い訓練を受けたと言いましたが、どんな訓練を受けましたか。           ‘神学校に通いながら私が訓練していた部分は、み言葉とお祈りの内にいながら、神学を勉強しないといけなかったことです。神学の勉強を通して得た真理を握って深く祈らないと、神学は変質してしまうし、なおさら神様より自分の知識をもっと高く評価する罪悪におぼれる過ちを犯すしかないと気付きました。

神学校の課題と試験、そして地域教会に仕える働きが重なると、第一にまずみ言葉を黙想して祈る時間が減ります。祈り中の神様と深い交わりができなくなるから、自然とつらい時間が訪れました。神学生がお互いに言っている冗談がありますが、‘神学校に燃えて入ってきては、灰の山になって出ていく’という言葉です。私はこの言葉がすごく嫌いですが、‘これは神学生の現実か’という危機感で揺れる時もありました。‘

―そんな危機をどのように克服しましたか                                    ‘本当にひどく乾いた時期でした。2010年秋でしたが、本当に一番絶望の時でした。その時、神様がある宣教団体で行う’み言葉祈祷学校‘へと招いてくださいました。その時の聖書の本文がローマ書でした。いつも読んでいて、よく分かっていると思っていた、そのみ言葉を通して再び私に福音が聞こえた時、その前に伏せて祈るようになり、その福音で私の魂が再び生き返るのを経験しました。

そのことを経験しながら、神学校でみ言葉と祈りでの堅い結論を持って、お互いに証人になれる共同体が必要であると、もっと切実に感じました。共に信仰の戦いに向かい合える仲間たちが必要でした。‘

み言葉と祈りを結論として掴んで走る。

―いまはそんな共同体が神学校の内に立てられましたか。                         ‘神様は本当に善なる方です。渇きをくださって、その渇きを潤してくださいました。初めは福音と祈りが結論になることに対して同意するなかまと共に、小さな集まりを始めました。そしてその後、この集まりのメンバーらが宣教師派送研究会というクラブを通して、もっと活発に動きました。たとえば、開校記念祭の特別講義を通して、福音と祈りが神学の領域内でも、一番根本であり、命であるという事実を、神学生たちの中で新たに気付き、認めら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いまも後輩たちがその精神をよく継いでいるようです。事実、別に特別な事でもないですが、私には神様が行った本当にすばらしい仕業でした。’

―そのように訓練された神学生が地域教会に仕えながら感じた大変さはなかったですか。       ‘2010年4月からボンハヒョン教会(担任牧師 ホービョンギ)で青年部担当を始めました。福音をもって、魂たちに仕える牧師の働きという領域に実際にぶつかりながら、私が知っている福音がどんなに現実であるかが見せられた時間でした。聖徒たちに仕える準備ができてなかった私は、私が持っている高い基準で彼らを判断して裁きました。そして福音を伝えても反応がない彼らに、全ての責任をかぶせて、一方では能力ない自分に嘆きました。

一番つらかった部分は日曜日の説教でした。私自分自身も現実になってない福音を伝えないといけないのに、伝えたくないけど、伝えないといけないし。。妻は言っていますが、その当時土曜日の夜になると、説教の準備をしながら私が沢山泣いていたそうです(笑)。‘

―この訓練の過程で神様がくださる教訓があったと思いますが、                      ‘去年夏に私が仕えている青年部の一人の成年が‘先生は日曜日に一回説教しに来る講師のようです。’と言いました。その話を聞いて、本当に心が崩れました。そのことを通して、神様はコリント人への第一手紙4:15の‘たといあなたがたに、キリストにある養育係が一万人あったとしても、父が多くあるのではない。キリスト・イェスにあって、福音によりあなたがたを産んだのは、わたしなのである。’というみ言葉でとがめました。

そのみ言葉をいただき、私が福音で産んだ生徒が一人もいないことに気付きました。やろうとも、産んだこともなかったです。それをきっかけに私の態度が変わりました。神様が、たった何人でも福音を通して産める働きがしたいとすがりました。‘

―その後の話が聞きたいですね。                                         ‘私に変化が現れた後に、青年部の成年たちが近寄ってくることを感じました。福音が私に与える喜びを、他の方たちに伝えるためには、福音を聞く相手にたいしての神様の愛が、私に注がれないと伝われないことを知りました。いますぐ目に見える変化がなくても、最後まで信じる忍耐も必要です。

最近では青年部で、みずからお祈りの集会を二回集まりながら、祈る共同体としての動きが始まっていて、弟子養育チーム、聖書通読チーム、聖書開館チームを通して、福音で養育する事に対しても少しずつ知りつつあります‘

福音を通して弟子を産む者になることを願う。

―アフリカ宣教に対してのビジョンがあると聞きました。                             ‘アフリカに対しての気持ちは神学校の大学院を準備しながら、宣教地で1年を過ごしますとの約束をした時、神様が南アフリカ共和国に対しての返事をくださいました。しかしいまは、その宿題を終えるために宣教を行こうとは思いません。お声をいただいた時にもらったルカの福音書18章の言葉は’牧師‘という職での呼びかけではなく、’宣教的存在‘としても呼びかけだったと気付いたためです。’

去年末福音祈祷同盟が開催した‘もう一度福音の前に’という集会に参加しながら、もう一度神様の叱責をうけて、延期していた宣教に対しての呼びかけに、返事する時間がありました。神様が私の中に生きているといいながら、神様のいない人のように、孤児のように一人で悩み、心配しながら、すでにおっしゃっていることに対して従順してない私の姿に、神様がとても悲しく思っていらっしゃることを発見しました。

いったんまず従う心をもって、今年初旬巡回宣教団の福音宣教館学校に仕えていましたが、驚くことに、アウトリーチで南アフリカ共和国の地を踏むようになりました。帰ってきては他の国ではなく、アフリカに対しての気持ちをくださいました。本格的な宣教準備のために、2012宣教韓国も参加しました。2-3年間教会の働きをしながら、準備過程を経て、宣教地へ行く計画を持ってお祈りしています。‘

―これからの計画とか祈り課題を教えてください。                               ‘まず宣教を準備しながら従順する過程を通して財政、人、親など、気付かないまま神様以外に私が依頼して依存しているすべてのものを捨てて、ただひとり、神様一人だけが十分である信仰の歩みになってほしいです。

そして地域教会内でも、福音と祈りで立てられる共同体が見たいです。またそんな共同体を立てるために魂に対しての神様の愛を抱いた、神様の心を持つようになりたいのが、祈りの課題です。‘

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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