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자녀들이 복음으로 사는 법을 배우는 곳이에요”

김유경 집사(광주 문광교회)

스스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삶의 시련 끝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는 김유경 집사(광주 문광교회)에게 기쁨 그 이상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터진 큰 울음과 함께 참 자유와 평안을 맛본 김 집사는 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오늘도 아줌마의 특권으로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전한다. “예수님 믿으세요.” 자신의 회복뿐 아니라 가정과 열방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자랑하는 김유경 집사를 만났다.

– 어떻게 전도자의 삶을 시작하게 되셨어요?
“저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그런데 생명 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그분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더군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사실인 것을 경험한 이후, 가장 먼저 가족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그 후, 전도는 제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이 됐어요. 정해진 틀 없이 택시를 타면 택시 기사님에게,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캠퍼스 앞에서도 복음기도신문을 가지고 전도했죠.

이전에 길거리 전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길에서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왜 남한테 피해를 주나?’라고 생각했고, 배척했던 사람이 저였어요. 사람들의 많은 거절 속에서 복음을 만나기 전의 저의 모습을 봐요. 그때마다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뿐이에요. 때론 주님이 위로도 해주세요. 추운 겨울에 따뜻한 음료 한 잔으로, ‘나도 복음을 만났어요.’라고 외치고 가는 분들을 통해서 말이죠. 전하면서 누리는 기쁨이 커요. 전도는 어떤 결과나 열매를 보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모든 영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어요.”

전도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

▶ 일본에서의 길거리 전도 모습

– 지금도 그렇게 전도하시나요?
“요즘은 교회 전도팀과 함께 하고 있어요. 전도에 늘 부담과 열정을 갖고 있던 목사님의 나눔과 권유로 전도팀이 구성되면서부터죠. 총 10명의 성도가 매주 수요일, 세 팀으로 나눠서 주택단지, 공장, 근처 초등학교 등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에게 실제 된 복음을 나눠요. 아이들을 만날 때는 신문 대신 직접 만든 과자를 가지고 나가죠. 이전에 교회에서 어려움을 당해서 교회를 나가시지 않는 분, 몸이 불편해 교회에 나오기 어려운 어르신들께는 저희가 직접 찾아가 예배를 드리기도 해요. 거리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잘 몰랐을 거예요.”

–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셨나요?
“제게는 두 딸이 있어요. 30대 후반 쯤, 큰딸이 다니던 유치원 학부모 모임에서 친해진 언니가 있었어요. 그 언니가 자꾸 교회에 나가자고 권하더군요. 저는 어릴 적부터 엄마 손에 이끌려 절에 나갔고, 교회에 안 좋은 인상 때문에 나가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언니의 끊임없는 권유로 나가게 됐죠. 교회에 다닌 지 2년째 되던 해 연말에 문득 아무것도 변화되지 못한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됐어요.

변하고 싶어서 두 가지 결단을 했죠. 첫째는 1년 52주 예배를 한 번도 빠지지 말자. 둘째는 십일조를 하자. 당시 남편과 별거 상태였던 저는 두 딸을 혼자 키우고 있어서 재정적으로 여유롭지 못했어요. 십일조를 결단한 일은 제게 큰일이었죠. 그런데도 마음 안에 갈급함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어요.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삶의 시련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 행복한 척해야 하는 삶이 힘겹게 느껴졌어요.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고, 힘들게 살아야 하지?’

아버지의 외도로 평생 폭력에 시달려야 했던 어머니, 그런 가정에서 자란 저는 결혼해서 잘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 역시, 남편의 외도로 깊은 상처를 받았죠. 같이 살 수 없었어요. 그러니 남은 두 딸들도 이런 삶을 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자살할 방법과 시기만 늘 생각했어요. 살아있지만, 죽은 자 같았어요.”

그때 전도사님의 추천으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한 훈련과정에 참석했다. 답을 찾고 죽어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 시작했다.

– 어떤 답을 찾으셨나요?
“어느 날, 제게 숙제가 주어졌어요. 제가 용서해야 할 10명의 이름을 흰 종이에 쓴 후, ‘용서하겠다’고 고백하라는 거였죠. 정말 유치했어요.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낸 후, 이름을 하나씩 적어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래, 나도 죄인이지. 이들을 내가 용서 못 할 이유가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10번째 되는 이름 앞에서는 머뭇거리고 순간 분노가 일어났어요. ‘10명 중 9명이나 했으니까 다 됐어.’ 종이를 구기고 버리려는 순간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어요. ‘주님, 그 사람이 제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아시잖아요. 저 용서 못 하겠어요.’ 발악을 했어요.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을 주님이 들추시니까 견딜 수 없었어요. 왜 그 사람에게 죄를 묻지 않으시고, 저더러 용서를 하라 하시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했어요. 반항을 하는 날이면 많은 아이들 앞에서 뺨까지 맞았어요. 이 일은 제가 마치 잘못해서 벌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누구에게도 이 말을 할 수 없었어요. 외도로 집에는 몇 달 만에 들어오시고 재산을 다 탕진하신 아버지 때문에 네 자녀를 홀로 책임지셨던 어머니께 저마저 힘겨운 짐이 될 수 없었어요.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늘 강한 마음으로 살았어요. 학년이 끝나자 교육열이 높으셨던 어머니가 저를 서울로 전학을 시켜주셔서 고통에서 벗어났지만 수치는 계속 남아있었어요. 그래서 제 삶을 거짓으로 가릴 수밖에 없었죠.”

용서를 선포하는 순간, 폭포처럼 터져 나온 울음

–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셨군요.
“내면의 음성으로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유경아. 내가 이천 년 전,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십자가에 매달렸어. 너의 수치를 알아. 너를 위한 수치였어.’ 십자가는 성경책에 갇혀 있어서 제게 아무런 능력도, 상관도 없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일을 통해 주님의 사랑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라는 이유로 병든 자아를 끌어안고 있었던 나는 죽었다는 말이 믿어졌어요. 어린 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제게 주님은 알아듣도록 설명해 주셨어요. 진리를 다 알지 못해도 제가 죄인이라는 것은 알았죠.

그래서 한 번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마지막 이름을 ‘용서하겠다’라고 선포하는 순간 여태껏 눌려있던 울음이 폭포처럼 터져 나왔어요. 그렇게 큰 울음은 처음이었어요. 그 일 이후, 제 마음에 참 자유와 평안이 찾아왔어요. 그제야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고, 제 존재가 보였어요. 어디서 은혜를 받았는지, 어디에 속한 존재인지, 저를 자녀로 택하셨다는 것을 굳이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알겠더군요.

그리고 드린 첫 번째 기도가 이런 거였어요. ‘주님, 바보 아니세요? 전지전능한 하나님, 그분은 십자가에 매달리시면 안돼요. 주님은 왕이시잖아요. 벌레만도 못한 저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말은 있을 수 없어요.’ 울고 웃으며 올려드린 그 기도 후에 ‘주님, 저도 주님과 같이 바보처럼 살게요.’ 그렇게 고백했어요.”

그때부터 모든 찬양의 가사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말씀을 펴자 글자가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복음이 들려져야 할 영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선교단체의 훈련 속에서 열방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매일 한 시간씩 열방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에 대해 하나씩 알아갔다.

“2008년 주님이 총체적 복음 앞에 서라는 말씀을 주셨어요. 주님이 복음을 다 알게 해주셨는데 또 6일간의 시간을 내어 참여해야 할까 고민됐어요. 하지만, 단순히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싶었고, 하실 말씀이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땐 미처 다 몰랐지만, 복음 앞에서 저를 더 낮추시고 다가올 일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더군요.”

–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었나요?
“일본에서 사업 중이던 남편이 암 선고를 받았어요. 시한부 인생으로 한국에 들어와 병원에 입원했죠. 우리 세 가족의 유일한 재정 공급처가 완전히 끊긴 것이죠.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알았지만, 실제 그 상황들이 닥치니까 정말 막막했어요. 차비가 없어서 두 시간을 걷기도 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냉장고를 붙들고 기도하기를 여러 번.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었어요. 남편은 아이들과 제가 거지같이 살까 봐 걱정하더군요. 하나님이 저희를 돌보고 계심을 나누고 안심시킨 후, 저는 남편 병간호를 위해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당시 저는 남편이 회복되어 가족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랐어요. 또 그렇게 기도했고, 주님이 살려주실 줄 알았어요. 어느 날, 제게 실제 된 복음을 남편에게 나누었어요. 복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에게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나눴어요. 함께 살지 못한 딸들을 천국에서 만나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 사람이 제 말을 듣고 믿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일주일 후, 목사님을 통해 세례를 받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런데 5일 후, 시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그날 오후 3시에 남편이 죽었다는 거예요. ‘세례도 못 받았는데…’ 갑작스러운 죽음에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근데 주님은 이미 ‘아들이 내 품에 있다.’는 확신을 주셨어요. 그거면 저는 충분했고 두 딸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어요. 제게 행해주신 일을 딸들에게 나누고 장례를 함께 치렀어요.”

십자가의 은혜로 가족의 하나됨을 경험하다

▶ 우크라이나에서 성도들과 예배 드리는 모습

– 한 사람을 세우시는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놀랍습니다. 그 이후 또 어떤 믿음의 삶이 이어졌는지 궁금하네요.
“제가 무너진 가정에서 자랐고, 제 아이들도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다음세대에 대해 남다른 마음이 있었어요. 또 저와 열방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나니 우리 가정이 회복되면, 열방의 무너진 가정들이 회복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서 제 나이 41살쯤, 주님이 재혼을 말씀하셨어요. 처음엔 사탄이 주는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내저었어요. 삶의 주관자 되시는 분이 주님이시니까 저를 맡기겠다고 고백은 했지만, 재혼은 죽음과도 같았어요.

이미 저는 실패를 해 본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주님은 제게 순종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주셨어요. 훈련학교에서 만나게 된 형제였는데, 처음에는 진리의 교제만 하다가 마음을 나누게 됐어요.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이 만남을 나눈 후, 재혼을 하게 됐어요.”

– 순종해서 이룬 가정이네요.
“저도 말씀이 실제가 되는 가정은 처음이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많은 고통이 따랐어요.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가는 모든 과정들이 십자가가 없인 불가능했어요. 가장이 세워지는 것이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더군요. 아이들이 아빠의 본심을 이해하는 데까지 꽤 시간이 걸렸어요. 저희의 마음은 우리 두 사람이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언제든 열방에 가든지, 혹은 주님 품으로 갈 때 남겨진 아이들이 복음으로 살기를 바라고 있죠. 지금 25살, 23살인 두 딸에게 직접 벌든, 장학금을 받든,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재정의 원리를 가르쳐 주고 싶었어요. 28살이 되면 완전히 독립하라고도 했죠.

처음 저희의 마음을 몰랐던 두 딸이 많이 어려워했죠. 이제는 이해를 넘어 오히려 자녀들 통해 격려를 받아요. 지금은 저희가 오히려 큰 딸에게서 생활비를 받고 있죠.”

<이상 복음기도신문 185호 게재>

– 가족이 모두가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셨군요.
“네, 큰 딸이 말을 하진 않았지만, 아빠와 충돌이 있을 때마다 많이 어려웠나봐요. 총체적 복음 앞에 섰을 때, 주님은 큰 딸에게 아버지께 순종하라고 말씀하셨대요. 그것이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요. 집에 돌아온 딸은 자신에게 실제 된 복음과 함께 솔직한 마음을 쓴 편지를 아빠에게 전해줬어요.

그때부터 회복이 일어났어요. 서로가 믿어지고, 사랑이 뭔지 알게 하셨죠. 많은 싸움 속에서도 행복해요. 대화를 많이 하고 고민을 나누면서 각자 역할 속에서 주님만 드러나는 것 같아요. 복음으로 연합은 정말 가능해요. 이런 회복의 기쁨을 주시려고 제게 재혼을 하게 하신 거였어요.”

– 그동안 다음 세대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일인지 설명해주시겠어요?
“2009년에 시작되어서 1년 2번씩, 지금까지 총 17번의 청소년복음수련회가 열렸는데, 그 모임을 섬겨왔어요. 함께 해외 아웃리차에 참여했던 분의 제안으로 시작된 사역인데, 처음에는 참석인원이 적었어요. ‘복음이 과연 아이들에게도 전해질까?’라는 의문도 있었어요.

그런데 복음은 능력이었어요. 아이들이나 섬기는 사람들도 함께 복음의 능력을 맛보게 됐죠. 이 일이 일회적인 수련회로 멈출 수는 없겠다는 마음을 섬기는 모든 분들에게 주셔서 지금까지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될 수 있었네요.”

복음의 능력, 다음 세대에게

– 다음 세대와 함께 하시면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많으시죠?
“날이 갈수록 다음 세대가 참 많이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돼요. 그러나 복음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면 놀랍죠. 세상에 나가 겪게 될 수많은 일들을 어른인 저희는 알잖아요. 늘 기도로 응원하죠. 몰라보게 큰 아이들이 어느 날 찾아와서 ‘저 몇 기 참석했던 누구예요. 저 선교사 됐어요. 저 이렇게 살아요.’라고 인사를 해요. 그때는 정말 기뻐요.

복음수련회는 섬김이까지 늘 100명 이상이 참석했는데, 최근에는 인원이 많이 줄었어요. 회계 직임이었던 저는 재정에 대한 계산이 빠르게 될 수밖에 없어요. 학생들이 내는 적은 액수의 회비, 그 외에는 전부 헌금으로 운영되어서 넉넉하진 않죠. 여러 가지 상황적 어려움 때문에 저 뿐 아니라 다른 섬김이들도 같이 마음이 어렵죠.

그런데 최근 이 수련회에 30명 정도의 인원으로 우여곡절 끝에 수련회는 시작됐어요. 그러나 풍성하게 수련회는 마쳐졌어요. 마지막 날, 재정보고를 하는데 차고 넘치는 헌금으로 부족함 없이 행사가 끝이 났어요. 매번마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은 그런 은혜를 누리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기도제목이 있으시다면요?
“저의 시선 끝에는 늘 영혼 구원이 있어요. 저희 가족들이 주님 앞에 돌아오는 거예요. 양가 집안 식구들이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으세요. 그로 인한 어려움이 있지만, 그때마다 더욱 주님을 더욱 부를 수밖에 없어요. 또 다음 세대가 주님을 소망으로 여기고 담대하게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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