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오키프의 <랜초스 교회>
올바른 전도와 선교 방식은 ‘거지가 또 다른 거지에게 어디에서 푸짐한 한 끼를 얻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한다. 고압적인 태도는 오히려 복음의 전달을 방해하거나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기도 한다.
반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동일한 눈높이에서 공감하며 전달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 방식, 곧 하나님의 선교를 닮았다. 미국 뉴멕시코 원주민의 전통 건축 양식인 어도비(adobe)양식으로 지어진 랜초스 교회는 1772년 이곳에 심어진 복음의 열매였다. 이 작은 교회는 독특한 건축양식 때문에 ‘마치 그 땅에서 싹 트고 자라난 것’처럼 보인다고 일컬어졌는데, 유럽의 위풍당당한 고딕 교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랜초스 교회’를 그린 미국의 여류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ffee)는 사진뿐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하여 그릴만큼 이 교회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녀가 이처럼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미국의 시골학교 교사 출신이었던 오키프는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뒤, 미술계의 큰손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를 만났다. 그의 정부(情婦)로 6년간 동거 끝에 마침내 결혼하게 됐다.
그러나 오키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스티글리츠의 외도로 파경에 이르고 만다. 스티글리츠와 함께했던 시간 동안 오키프는 항상 손가락질에 시달렸고, 그녀의 재능은 스캔들로 인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20세 연상이며 유부남이었던 이 예술가와의 동거는 항상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스티글리츠가 오키프보다 더 젊고 유능한 여류 화가와 떠난 1929년, 그녀는 화려한 뉴욕을 등지고 인적이 드문 서부의 뉴멕시코로 향했다.
그때 그렸던 작품이 바로 ‘랜초스 교회’(Ranchos Church)다. 이후 그녀는 다시 뉴욕에 돌아가지 않았다. 뉴욕에서 얻은 명성과 굴곡 많은 결혼 생활을 뒤로 한 채, 오키프가 텅 빈 황무지에서 발견한 것은 교회의 독특한 형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랫동안 죄책감에 사로잡혔던 그녀의 눈에 이 작은 교회는 경멸에 찬 눈으로 흘끗거렸던 뉴욕커와는 달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억압적이지도 않으며, 자기 자신을 자랑하지도 않은 랜초스 교회의 소박한 모습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육신을 입고 ‘상황화’하셨던 그리스도의 사랑과 겸손을 닮아 있었다. [복음기도신문]
이상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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