겝하르트의 <야곱과 천사>
장자권을 빼앗은 야곱은 에서가 사백 명의 군사들과 마중 나온다는 소식에 잠 못 이룬다. 사백 명의 군사 앞에서 누가 편히 잘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야곱은 절체 절명의 위기 앞에서 벧엘의 축복을 확인 받는다. 이 확신이 들기까지 그는 얍복 강가에서 홀로 하나님과 처절한 씨름을 해야 했다.
에스토니아 출신의 개신교 화가 에두아르 본 겝하르트(Eduard von Gebhardt)는 평생토록 초상화와 성화만을 그렸다. 초상화를 통해 인간에 대한 관심을 키웠던 작가는 그것을 성화에 오롯이 쏟아 부었다. 겝하르트가 그린 ‘야곱과 천사’는 같은 주제로 다른 이들이 그렸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천사와 야곱의 겨루기를 팽팽한 접전으로 묘사했던 다른 이들과 달리, 겝하르트의 천사는 야곱을 훨씬 앞지르는 존재로 표현됐다. 때문에 야곱은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잠 못 이루고 수척해진 얼굴의 야곱이 사력을 다해 천사의 옷자락을 부여 쥔 모습은 절박하고 처절한 심정에 대한 화가의 깊은 이해를 보여준다. 이 모습은 고난 속에서 부르짖는 우리들과 똑같다. “주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제게 주신 약속을 확인하실 때까지 놓지 않겠습니다”라고 소리치듯.
얍복 강가의 처절한 밤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나의 데스티니 찾기’(고성준 저, 규장, 2018)의 저자는 얍복 강 씨름의 본질을 ‘하나님을 졸라 얻어낸 축복’이 아닌 ‘씨름 끝에 얻게 된 믿음’으로 설명한다. 약속의 성취를 가로막는 실제 장벽은 눈앞에 닥친 현실도 아니요, 약속을 불이행하는 하나님의 변심도 아니다. 그것은 나도 모르게 쌓여온 내 편에서의 장벽이다. 이는 철저히 영적인 문제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함에서 온다.
또한 장벽은 눈앞에 닥친 현실에 육적으로 반응하도록 만든다. 내게 속한 사람들을 계수하며 끊임없이 에서의 사백 군사와 비교한다. 내 편이 육백이면 안심이고, 이백이면 불안하다. 그러면 권력자와 약속을 잡거나, 은행 대출을 의지하기도 하며, 접대와 연줄에 마음을 빼앗기곤 한다. 이 모두 장벽을 만드는 일이요, 하나님 편에서 불의이기도 하다. 하지만 얍복 강가에 홀로 서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던 나의 장벽을 무너뜨릴 때 마침내 현실과 상황을 뛰어넘는 평안을 얻게 된다. 승부처는 에서를 만나기 전 얍복 강가였다. [복음기도신문]
이상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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