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 가운데 부흥의 역사를 펼쳐가고 있는 인도 기독교”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존 목사와 레베카 전도사

[201호 / 인터뷰]

최근 오픈도어선교회에서 발표한 2019년 기독교박해순위에서 10위권으로 진입한 인도. 그러나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이 다가온 것일까? 하나님의 역사가 그러하듯 인도 곳곳에서 부흥의 역사가 쓰이고 있다. 최근 말씀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방한한 존 목사와 그의 처제인 레베카 전도사를 만났다. 인도로 돌아가기 전날 사도행전의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인도에서 어떻게 사역을 하고 계신지요?

존: “저는 ‘아가페 기도의집’이란 이름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제자 훈련을 하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인도는 힌두국가입니다. 그래서 직접 개인에게 드러내놓고 전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구제, 의료선교로 사람들을 섬깁니다. 모든 인도 교회가 그렇듯이 우리 교회도 여성도의 숫자가 많습니다. 자매들이 예수를 믿는 속도가 빠르죠. 그래서 자매들을 말씀으로 양육해 믿음이 자라면 자녀들을 신앙으로 교육하고 남편들이 교회에 나오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힌두교에서 개종한 1세대들입니다. 다음세대 사역을 하기 위해 전도를 할 수 없으니 교회 앞 건물을 빌려서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나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인 아이, 가정이 깨져서 편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를 데려와서 그들에게 밥을 주면서 양육하고 있습니다. 레베카도 이곳에서 함께 사역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개종 1세대 교인들 출석

– 전도사님은 어떤 사역을 하고 계시나요?

레베카: “저는 청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16세부터 사역을 시작해 지금 10년 정도 됐어요. 복음을 접할 기회도 없었고, 또 무조건 복음을 거부하다가 13세에 존 목사님을 만나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고 3년 동안 훈련받고 16세에 주님이 불러주신 길을 가기로 선택했습니다.”

– 어린 나이에, 놀랍네요. 먼저 이런 변화의 출발점인 목사님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주님을 만나셨나요?

존: “저는 힌두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살다가 2004년에 예수를 만나게 됐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정보기술(IT)을 전공했는데, 그때 한 기독교집안에 과외교사로 가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승려였기 때문에 기독교인들과 상종하지 말아야하지만 보수를 많이 준다고 해서 들어가게 됐어요. 그리고 마음 속으로는 기독교 가정을 힌두교로 개종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면서 성경에 대한 많은 질문을 했는데 저의 모든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이에요.”

레베카: “대답을 했을 뿐 아니라 성경도 읽어보라고 권했어요.” 어린 시절 존 목사를 과외교사로 만난 레베카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존: “저는 힌두교신자이지만 이슬람의 쿠란도 읽어보고 성경도 읽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조금 달랐어요. 힌두경전이나 쿠란과 달리 성경은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고 했어요. 저는 그 말에 적잖이 충격과 감동을 받았죠. 힌두경전을 보면 ‘크리슈나’라는 신이 죄인들을 죽이고 착한 사람들을 살리러 이 땅에 왔다고 되어있는데 성경은 정 반대였습니다. 우리가 모두 죄인인데 말입니다. 당장 우리 동네에 있는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레베카가 다니던 교회였어요. 레베카는 제가 가정교사로 가르쳤던 학생이었죠. 어느 날 우리 가족이 제가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집에서 쫓겨났죠. 그게 2005년이에요. 집을 얻고 직장을 다니면서 계속 신앙생활을 하다 2006년에 침례를 받고 2010년에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해 레베카의 첫째 언니와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 주님이 목사님의 삶을 놀랍게 이끌어 주셨네요.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이 있었겠네요.

존: “그때 제 나이가 28살이었습니다. 주위에서 결혼해야 하지 않겠냐며 믿음 좋은 자매를 소개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만났는데 레베카의 큰 언니였죠. 22일간 금식하고 나서 하나님께 제 아내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너는 이 집의 아들도 되고, 남편도 된다. 이 집에서 사역하는 사람으로 살기 바란다.’는 마음을 주님이 주셨습니다. 그렇게 결혼을 결정했지만 친구들과 가족들은 브라만 신분을 버리고 하찮은 기독교인과 살 수 있겠냐며 핍박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족에게서 쫓겨났습니다. 그렇게 결혼을 하게 되었어요.”

죄인을 위해 오셨다는 성경의 진리에 충격

– 어려움이 많으셨군요. 그런데 어떻게 주의 종이 되기로 결심하셨나요?

존: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넌 날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라고 물어보시는 것 같았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곧바로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성도는 없이 가족끼리만 예배를 드렸습니다. 3년 동안요. 그 시간은 주님께 양육을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직장을 떠났으니 간호사인 아내만 경제생활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직장에 다니면서 모았던 금을 하나씩 팔아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갖고 있던 금을 다 팔고나니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살아라.’고 말씀하시더군요. 하루하루 하나님이 먹여주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신앙이 자라게 됐습니다. 물론 굶는 날도 많았죠. 장모님은 쓰레기통에서 음식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시장에서 팔고 남은 야채들을 주우러 가면 ‘집에서 소를 키우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럼 전 소가 4마리 있다고 대답했죠. 네 식구였거든요(웃음).

주위에 많은 목사들이 어리석게 왜 좋은 직장 버리고 힘들게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장모님과 아내, 처제까지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삶을 살기로 결정했죠. 로마서 8장 18절의 말씀처럼 지금의 고난은 앞으로 받을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사람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이 인도해주실 것을 바랐습니다. 그런 3년의 시간은 육체의 핍박은 없어도 영적으로 핍박받는 시간이었습니다.”

– 하나님만 바라는 것, 그것이 오직 믿음이겠죠? 이후에 주님이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존: “2013년부터는 마을을 찾아가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까지 500여 명을 전도했습니다. 그 과정에 육체적 핍박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맞기도 하고 위험한 상황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교회가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이 모이기 시작하자 사탄의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힌두 지도자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죽을뻔한 경험도 있습니다. 2015년 어느 날, 전도하러 한 마을에 갔는데 마을 사람 400명 정도가 우리를 둘러섰습니다. 힌두사원으로 우리 가족을 끌고 가서 힌두 우상에게 강제로 절하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단호했습니다. ‘죽일 테면 죽여라. 우린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 그들은 사원밖에 있는 우리 차를 다 부수고 담배꽁초를 우리 얼굴에 뱉었습니다. 쇠몽둥이로 우리를 때리고, 장모님은 머리채를 잡힌 채 땅바닥에 끌려다녔습니다. 처제는 성폭행을 당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를 둘러싼 400명 군중 사이로 승려 한 명이 나오더니 나를 붙잡으면서 ‘너희 다 죽게 생겼다.’며 우리를 무리에서 끌고 나왔습니다. 우리는 다 부서진 차를 타고 도망쳤고 사람들은 우리를 따라오며 돌을 던졌습니다. 유리가 깨졌지만 우린 돌에 맞지 않았습니다.”

– 정말 큰일 날 뻔했군요. 많이 다치진 않으셨나요?
존: “돌아와 제 몸을 보니 몸 전체에 멍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등에 나있는 멍 자국이 십자가 모양이었습니다. 그날 밤은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머물고 싶었던 것이죠. 가족들은 거실에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성도들도 우리 소식을 듣고 집으로 찾아와 병원에 가자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전 아무데도 가지 않고 하나님과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기도하며 잠이 들었는데 방에서 좋은 향기가 났습니다. 그러더니 어떤 손이 나를 만져주었습니다. 손이 지나갈 때마다 아팠던 통증이 사라지며 치료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음날 아침, 성도들이 병원에 가자고 찾아왔습니다. 제가 나았다는 것을 확신했지만 성도들을 위해 병원에 갔습니다. 모든 검사를 마치고 나온 결과는 다친 곳이 아무데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의 경험이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집단 폭행 현장에서 힌두 승려의 도움으로 살아나

– 정말 놀라운 경험이네요.

▶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인도 기독교인들의 모습

존: “그날 함께 핍박받았던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좋은 아들이 못되고, 좋은 남편이 못되고, 좋은 동생이 될 순 없지만 하나님의 좋은 사역자가 되고 싶다. 그랬더니 가족들은 오히려 이미 좋은 남편이며, 좋은 아들이며, 좋은 오빠라고 말했습니다. 이 핍박을 계기로 가족이 더욱 사랑하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됐습니다. 또한 그 이후 교회도 급성장했습니다. 놀라운 일 한 가지는 그해 연말 우리를 구해준 승려가 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것이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태도에서 미안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에 대해 마음이 열렸습니다. 비록 기독교인이 되진 않았지만 우린 함께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그는 힌두교 책임자였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승려의 딸 중 한 명이 우리 교회의 찬양 인도자로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상 201호에 게재>

– 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힌두교에서 개종을 했을 텐데, 힌두는 다신을 믿고 있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회심을 한 사례를 소개해 주세요.

레베카: “제가 19살 때 한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그에게 복음을 말하진 않았지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매주 한 번씩 친구 집에 가서 교재를 했습니다. 3~4개월 동안은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힌두교에는 조상이 힌두신을 섬기다가 죽으면 자손 중 한명을 택해 신을 받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 친구가 바로 그런, 힌두 신앙이 매우 강한 친구였죠. 그 친구가 하루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나는 남자친구를 사랑한다. 그러나 난 여러 남자들과 간음을 하고 있다. 결혼은 남자친구와 하고 싶으니 저에게 기도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 친구에게 복음을 나눴습니다. 너는 남자친구와 결혼하고 싶어 하지만 더 좋은 남자가 있다. 그분은 예수님이다. 그리고 성경을 줬는데 친구가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이 열리며 십자가의 구주를 만났습니다. 말씀에 대해 질문할 것이 생기면 전화를 걸어 묻고 답을 얻었습니다. 그 친구 집에 가서 기도모임을 시작했습니다. 2년 동안 지속했습니다. 그 친구는 남자친구를 만나면 매일 싸웠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고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러다 그 친구는 예수님은 평안을 주는데 내가 이 분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드디어 2년 만에 교회에 나오게 됐습니다. 그 친구는 예수 믿은 지 1년 만에 남자친구와도 헤어졌습니다. 그러나 남자친구가 그녀의 약점을 가지고 협박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친구는 믿음을 지키고, 그에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부모님도 교회 나가는 것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딸이 변화된 모습을 보고 더 이상 핍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들은 그녀에게 예수 믿는 것은 좋다. 그러나 교회 갈수 없고, 기도모임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집에 없을 때 몰래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1년 동안 100명을 전도했죠. 그 친구를 통해 교회가 개척됐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그 교회 드러머와 결혼을 했어요.”

예수 믿고 삶의 총체적 변화를 경험하는 증인들

– 핍박 가운데 놀라운 부흥이 일고 있네요. 인도의 교회 상황은 어떤가요?

존: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인구는 1900만 정도 됩니다. 교회는 개신교만 20개가 있고, 가톨릭과 정교회, 침례, 장로, 안식교까지 하면 70개 정도가 됩니다. 최근 여호와의 증인도 생기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가정교회라고 부르는데 이 같은 교회는 40개 정도가 있습니다. 한 교회당 평균 50~60명 정도의 성도가 있습니다. 저희 교회 성도는 500명 정도 되어서 현재는 네 군데로 나눠져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 교단에 속한 교회는 학교, 병원사역처럼 영리사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 지금 인도에 필요한 기도제목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존: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도 동성애 문제가 심각합니다. 인도 전역에서 동성애가 가장 심각한 지역으로 뭄바이가 1위, 2위는 콜카타입니다. 콜카타의 매춘 인구는 8만 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미혼이나 기혼이나 할 것 없이 매춘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 때문이기도 하지만 종교적 이유도 있습니다. 칼리라는 여신은 아주 음란한 활동을 하게 합니다. 계급이 높은 승려일수록 벌거벗고 제사를 지내고 어린 아이의 피로 제사를 지내죠. 매년 10월, 한 달 동안 디왈리(DIWALY)라는 칼리 축제를 합니다. 어린아이의 피 제사죠. 그러나 이때 이유를 알 수 없는 많은 싸움이 일어나고 많은 이들이 죽습니다. 죽음의 영이 역사해서 그런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10월에는 둘가(DURGA) 축제도 합니다. 힘의 신이죠. 이같은 음란한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 힌두교는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레베카: “힌두교도 교리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힌두교에서 동성애에 대해 특별히 반대운동을 하지도 않습니다. 인도가 2018년까지 동성애를 허용해왔기 때문에 동성결혼을 할 수 있었죠.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인도를 힌두교화 하려는 운동입니다. 이 때문에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있습니다. 특히 북인도가 극심한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큰 교회들은 영리를 추구하고 있으니 교회도 연합이 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회들이 핍박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다음세대를 양육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복음기도신문]

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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