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언제나 개방이에요! 선교사님들 오세요”

[202호 / 인터뷰]

최근 중국, 인도 등 해외 선교지에서 한국 선교사들이 잇따라 추방되고 있다. 추방된 선교사들은 한국에서 머물 곳이 없어 찜질방을 전전한다고 한다. 추방이 아니더라도 한국을 방문한 선교사들은 조건에 맞는 게스트룸을 구하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소식을 들은 주창호 권사와 이혜경 전도사 부부는 자신들의 집을 개방하기로 했다. 대대로 우상을 섬겨왔던 종갓집에서 안식처가 필요한 선교사들을 섬기는 집으로 변화시키신 하나님의 한 수를 들어본다.

– 한국에 오신 선교사님들에게 집을 내어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이야기가 궁금해요.

주창호(이하 주): “선교훈련을 받으면서 차드와 키르기스스탄 두 나라를 다녀왔는데요. 차드에서 만났던 선교사님이 한국에 오셨는데 머물고 계신 장소가 불편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우리 집이 생각났습니다.

이 집을 지을 당시에는 대가족이라 집을 크게 지었는데, 어머니가 소천하시고 아버님과 저희 부부 셋이 살기엔 장소가 너무 넓은 거예요. 아버님도 이 큰 집을 처분하지 않았으면 하셨죠. 활용할 수 있는 빈방이 있으니 머물 곳이 필요한 분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집에 남는 방도 있고 마당에 텃밭도 있고 오시면 된다고요. 그래서 몇 분이 오셨고 6개월 정도 쉬고 가신 분도 계셨어요.”

▶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주창호 권사와 이혜경 전도사 부부의 집 전경

이혜경(이하 이): “최근 참석한 집회에서 중국에서 추방당한 선교사님들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한국에 오셨는데 갈 곳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한 번 섬기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이번에 인터뷰를 통해 더욱 알리고 싶어요. 우리 집은 언제나 개방이에요! 그런데 차가 없으면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15~20분 정도의 거리를 걸어와야 한다는 점이 좀 아쉽죠. 그래도 주님이 우리 집을 교제의 장으로 써주시는 데는 별 지장이 없어요. 지난번에는 스리랑카, 파키스탄에서 오신 선교사님들과 함께 식탁교제를 나누기도 했어요.

이런 모임이 참 즐거워서 섬겼어요. 이렇게 집을 내놓은 지는 3년 정도 되었어요.”

추방당한 선교사님 이야기 듣고

– 집을 내준다는 것은 주님의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 같은데,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셨는지 궁금하네요.

이: “저는 절에 열심히 다녔던 사람이에요. 아이들 입시 때마다 삼 천배를 두 번이나 할 정도로 열심이었죠. 어느 날 갑자기 저희 시어머니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게 되셨어요. 시어머니는 처녀 때 신앙생활을 하셨는데, 종갓집 종부로 시집오면서 교회를 못 가게 되셨죠. 저는 부처님께 빌고 어머니는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빌자고 했어요. 종교는 다 각각이고 길은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1년간 항암치료를 받으시면서 어머니는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되셨어요. 어느 날 쓰러진 후 입원해 계셨는데 그 교회 성도들이 계속 와서 예배도 드리고 돌봐주셨어요. 어머니는 거의 탈진상태가 되셨어요. 어느 날 교회에서 오셨고, 늘 그랬듯이 어머니만 병실에 두고 다른 가족들은 모두 밖으로 나갔죠. 그날은 어머니가 힘없이 제 손을 잡으셨어요. 그래서 얼떨결에 저도 같이 예배를 드리게 되었어요. 찬송가 492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찬양을 하는데 울고불고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었어요.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엄청 창피한데 눈물이 안 멈춰지는 거예요. 그날 주님은 저를 불같이 만나주셨어요.”

– 찬송가 한 장으로 주님을 만나셨군요. 그 이후 어떻게 되셨죠?

이: “네, 어머니의 장례는 기독교장으로 치렀어요. 그 이후부터 혼자 신앙생활을 시작했어요. 담임 목사님은 교회 나간 지 한 달도 안 된 저에게 교회 열쇠를 주시며 밤 12시에 기도를 하라고 하셨어요. 신앙생활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다 그렇게 하는 줄 알았어요. 10개월 동안 밤이면 12시에 올라가서 첨엔 아무것도 모르니까 성경책을 크게 읽고 주기도문, 찬송가도 읽었어요.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성령님이 기도의 문을 열어주셔서 기도도 하고 영적 세계가 어떠한 것인지 알게 하셨어요. 정말 당시 영적 전쟁이 치열했어요. 우리 집은 더군다나 자손 대대로 우상을 섬겼던 집안이었기 때문에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죠.

12시 자정 기도를 하기 시작하면서 40일 작정 기도를 같이 했어요. 남편은 예수 믿는다고 사사건건 비아냥거렸죠. 그땐 제가 알던 남편이 아니었어요. 제가 교회에 나간 지 3주쯤 되었을 때, 남편이 저를 따라 새벽기도를 가겠다고 하더군요. 정말 놀라운 일이죠. 한 달 된 사람에게 교회 열쇠를 주시면서 기도훈련을 시키셨고, 두 달 되면서부터는 모든 공 예배에 참석하게 하셨고, 일주일에 세 번씩 성경공부를 시키시더니 바로 주님의 종으로 부르시더군요. 그리고 일 년 안에 모든 가족과 친정식구들까지 다 교회에 나갈 수 있도록 주님이 하셨어요.”

일 년만에 온 가족 교회 출석

– 권사님은 어떻게 새벽기도에 나가실 생각을 하셨나요?

주: “제가 장남인데, 어머니가 특별히 저를 많이 사랑하셨고 저도 어머니를 많이 사랑했어요. 일 년간 투병하시는 동안 저도 일을 정리하고 어머니와 같이 있었어요.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걸 모두 하지 않으면 후회하겠다 싶었어요. 장례식 절차 중에서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하는 물음이 있었죠. 교회 분들이 정말 사랑으로 돌봐주셨고 어머니가 아프시다가도 찬양하시면 잠깐 해맑아지시는 걸 봤거든요. 믿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마음은 열려있었어요. 돌봐주신 것이 감사해서요.

장례가 끝나고 예배를 몇 번 드렸죠. 아내가 계속 새벽기도를 가니까 관심을 갖게 됐어요. 새벽기도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겠다는 마음도 있었고 교회라는 단체에 대해서 굉장히 궁금했죠. 새벽기도 때 찬양하는 중에 하나님이 저를 만나주셨어요. 그러다 말씀이 궁금해졌고 주일예배도 참석하게 되었어요. 주일설교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어머니가 천국에 계신 것을 알게 되었고, 나도 갈 수 있다면 내가 하던 모든 걸 그만두고서라도 이쪽을 택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 처음부터 대단한 결단을 하셨군요. 이후 신앙생활은 어떠셨나요?

주: “하루는 교회 기도제목을 듣게 되었어요. 멈춰진 소 성전 공사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저는 당시 건축 일을 했기 때문에 한 달 만에 자비량으로 공사를 마무리하게 되었고, 목양실 인테리어도 멋있게 바꿔드렸어요. 나중에는 3년여 동안 교회 건축까지 했어요. 아무 일도 안하고 오직 그 일에만 매달렸어요. 하나님이 저에게 그 기간 동안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셨고 기쁜 마음을 부어주셨던 거 같아요. 그러나 그때 자기 의도 상당했다는 것을 복음을 만나고 난 뒤 깨닫게 됐어요.(웃음) 그러나 여러 이유로 8년을 섬기던 교회를 떠나게 됐고 지금의 교회로 옮기게 되었어요.”

– 교회를 옮기게 된 특별한 사연이 있으신가요?

▶ 2015 다시복음앞에 집회에서

이: “다른 건 없었고 제가 2013년 다시복음앞에 집회 때, 2박 3일 동안 선한목자교회에서 메시지를 들으면서 ‘이 교회 성도들은 참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집회에 참석하며 내가 목말랐던 이유가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면서 목마름이 해소가 되었어요.”

– 목마름이 해소됐다고 하셨는데 목말랐던 이유가 무엇이었죠?

이: “교회에 나간 지 얼마 안 되서 신학을 공부했어요. 그러나 전도사로 사역하면서 내가 선포하는 복음이 내게 실제가 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어요. 주님께 사역자가 아닌 평신도로 헌신 봉사하겠다고 했어요. 급기야 주의 종의 길을 가지 않겠다고 21일 금식까지 했어요.(웃음) 동일한 3번의 꿈을 통해 선교사로 부르셨지만 두려움 가운데 여전히 선교사는 밀어놓고 생각지도 않았죠.

그렇게 사역하며 목마름으로 힘들어할 때, 지인을 통해 “예수면 다다”라는 제목의 짧은 영상을 보며 홀라당 뒤집어졌어요. 그러고는 인터넷을 통해 다시복음앞에 집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참석하게 되었죠. 그곳에서 복음이 이런 거구나 알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복음학교라는 곳을 알게 됐어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참석해보기로 했어요. 미루고 미루다가 2년 만에 복음학교에 가게 되었고 남편도 그 해에 복음 앞에 서게 되었죠.”

– 복음을 만나시고 두 분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이: “복음학교 이후에 섬김이를 신청해서 남편도 저도 동일하게 훈련생을 섬기는 소그룹의 조장으로 섬기고 돌아오면서 우리가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부분들을 나누게 하셨어요. 그동안 사탄에게 붙잡혀 털어놓지 못했던 우리의 실체를 나누며 참 자유를 얻게 됐어요. 그날 우리에게 실제가 된 복음을 나누며 마음으로 주 안에서 하나가 되었던 것 같아요. 서로 울면서 기도하며 서로 안고 있는데 갑자기 딸 부부가 들어온 거에요. 저희를 보더니 이건 무슨 상황인가 의아해했죠. 그래서 딸한테 “엄마, 아빠가 지금 신혼으로 돌아갔어.”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저희 부부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딸도 아들 부부도 복음학교에 가게 되었고 모두가 복음을 만나게 되었어요.”

<이상 202호에 게재>

두 사람의 변화 이후, 아들 내외도 복음앞에 서고

– 시어머니 한 분으로 시작해서 모든 가족에 이르기까지 복음의 역사가 대단하네요.

▶ 차드 아웃리치에서 주창호 권사

주: “예수님이 자기 몸을 내놓으시고 인류를 구원하셨듯이 우리 어머니는 우리 가정에 밀알이 되셔서 우리 가족들을 구원하시는 통로가 되어 주셨어요. 저도 누구한테든 복음을 전하러 가야 될 소명이 있는 거겠죠.”

-마지막으로 두 분 기도제목 나눠주시겠어요?

주: “아버지가 구원받는 게 가장 큰 기도제목이에요. 주님과 동행하는 이 모든 시간 가운데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 주시고, 나의 나태함이나 욕심 때문에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주세요. 주님과 동행하며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고 주님 부르시면 천국에서 주님 만나기 소망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니도 만나고 싶습니다.”

▶ 열방의 기도의 자리에서 이혜경 전도사

이: “찬양의 가사처럼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서 정말 나의 모든 뜻이 아버지의 뜻이 되고 내 모든 삶이 그분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희 아버님이 열방이시잖아요. 주님이 저를 교회로 부르셔서 기도하고 있어요. 주님이 허락하시면 집에서 교회개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러나 주님의 주권 안에 그분이 허락하시는 그 끝자리에서 이 복음에 영광과 능력과 축복을 누리며 주님 디시오시는 그 날을 소망하며 주님과 사랑하는 자로 살고 싶습니다.” [복음기도신문]

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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