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이를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기는 이쁜이”

복음의 영광으로 빛나는 장선화 집사(삼성연합의원)

경북 의성 읍내에 위치한 이 병원은 아침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북적인다. 대변검사라도 있는 날이면 커다란 검정 비닐봉지에 변을 한가득 담아 접수창고에 내는 일은 다반사다. 그곳에서 장선화 집사는 ‘이쁜이’로 통한다. 병으로 아픈이들을 돌볼 뿐 아니라 환자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장 집사를 만났다.

– 병원에서 어떤 일을 하세요?

“청소도 하고 어르신들 불편하지 않으시게끔 손발이 되어 심부름도 해드려요. 청소, 빨래 기타 등등 필요한 모든 곳에서 일해요. 환자 대부분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신데요, 한 분 한 분에게 예수님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제가 먼저 말을 걸게 돼요. 영혼 사랑하는 마음을 주님이 주신 것 같아요. 관심을 갖다보면 그분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눈에 보이고,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조금씩 도와드리죠. 그러다보면 이분들이 저에게 마음을 조금씩 여세요. 그러면 예수님을 안 믿는 분이라도 “3층에 있는 교회에 가서 예수님 영상도 보고 예배도 드리자”고 권해요. 감사하게도 “우리 이쁜이 때문에 간다.”라고 해주시기도 해요.”

– 이런 섬김은 주님의 마음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네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죠?

“성경공부를 통해 알게 된 권사님의 초대로 병원에 오게 되었어요. 우리 부부는 이 병원에 오면서 한 가지 결정을 했어요. ‘내가 이곳에서 주님이 나에게 행하신 일들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이었죠.”

장 집사는 교회에 다니면서도 ‘선교사는 선교사니까, 목사님도 목사니까 그렇게 사는거지.’라며 평신도로 헌신된 삶을 사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평신도로서 병원을 선교기지로 내어놓고 선교사로 살고 있는 김정화 권사를 만났다. 충격이었다. 김 권사가 만난 예수님은 그의 삶을 전부로 드려 순종할만한 가치였다. 하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고민도 했지만 그런 삶이 너무 사모되었다. 그 무렵 김 권사에게 병원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장 집사는 짝사랑 하는 대상에게 고백을 받은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주님이 하신 일을 전하고 싶어

▶ 병원에서 환자들을 섬기고 있는 장선화 집사

“주님이 나도 너를 사랑한다고 해주시는 고백처럼 들렸어요. 사실 주님은 병원에 오기 전까지 제가 마음껏 순종할 수 있도록 신앙의 터를 닦아 주셨어요. 대전에서 거주하면서 신앙훈련과 복음학교 훈련을 쉬지 않고 받았어요. 목사님을 통해 선포되는 진리도 끊임없이 들었어요. 그 시간은 저에게 ‘온실 속 화초’같은 시간이었어요. 복음이면 충분하다는 고백을 하는 지체들과 교제하는 시간은 너무 행복했어요. 이제 무엇을 하든 기쁘게 순종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마음을 먹고 병원에 왔는데 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쓰레기와의 싸움이었고, 가래침과의 싸움이었고, 변과의 싸움이었어요.”

– 듣기만 해도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 같군요. 그 시간이 어땠는지 말씀해주세요.

“저는 오물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변기를 수세미로 다 닦아내야했어요. 처음엔 이런 것들이 저에게 결코 쉽지 않았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다지 어렵지도 않았어요. 제가 이 오물보다 더 더러운 자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어요. 커다란 재떨이를 비우다보면 담배꽁초와 가래침들이 뒤섞인 오물을 끄집어내야 하는데, 제 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나오는 것 같다고 생각되니까 그것들이 그렇게 더럽다고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하루는 저한테 하수구에 들어가서 청소를 하라는 거예요. ‘이걸 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하수구를 뜯었는데 악취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거예요. 순간 불평이 생겼어요. ‘내가 오기 전에도 이런 청소를 했나? 왜 내가 오니까 하지?’ 그러나 아침에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깨닫게 하신 것이 생각났어요. “선화야. 너 그 깊숙한 곳에 더러운 것 있잖아. 이 하수구보다 더 더러운 그곳. 선화야, 난 더 깊숙이 있는 그것도 닦아내면 좋겠어.” 그리고 그 깊숙한 더러움을 깨닫게 해주셨어요.”

– 일하는 모든 곳에서 주님의 메시지를 들으시는군요. 감동입니다. 삶속에서 깨달은 진리들을 좀 더 나눠주세요.

“풍족한 삶을 살면서도 제 것이 아닌 것들을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며 개인적으로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예를 들어서 샴푸, 일회용 비닐 같은 것을 제가 맘대로 쓰고 있더라고요. 하수구 청소를 하고 있을 때 주인이 허락하지 않는 것들을 함부로 내 소유로 여긴 일들이 생각났어요. 청소를 마친 후 주인들에게 용서를 구했어요. 주님은 그렇게 세심하게 하나하나 제 안에 있는 것들을 들춰내시며 닦아 주셨어요. 또 한 가지는 환자들을 섬기며 받는 칭찬이었어요. 주님 생명으로 하는 섬김이긴 한데 이 칭찬들이 하나씩 하나씩 내 몸에 붙는 것 같았어요. 어느덧 그 칭찬이 예수님을 빙자해 내 영광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하수구 청소하다 죄 된 실존 깨달아

▶ 병원에서 청소하고 있는 장선화 집사

– 작은 부분 하나까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사셨군요?

“제가 복음학교 훈련을 받고 난 이후 십자가 목걸이를 뺀 적이 없어요. 그러나 이 목걸이를 하기 까지도 결코 쉽지 않았죠. 길거리에서 침을 함부로 뱉을 수도 없고, 환자 단 한 명에게도 함부로 할 수 없어요. 목소리도 사납게 낼 수 없죠. 왜냐하면 저의 어떠함 때문에 우리 주님이 욕먹는 것이 싫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이 목걸이를 걸고 다니다보니 예수님이 저에게 스며드시는 것 같아요. 때로는 엎어질 때도 있어요. 말씀을 제친 적도 있어요. 그러면 주님은 반드시 물으세요. “어제 네가 한 그 행동, 나에게 물어봤니? 너 어떠니?” 그러면 주님 앞에 말할 수 없는 죄송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어요. 더불어 지체에게 용서를 구해야하는 것도 너무 속상했어요. 이렇게 다시는 육신으로 행하지 않게 주님이 각인시켜 주시는 것 같아요.”

– 예수님이 스며드는 삶이란 말이 너무 감동적이네요. 그건 어떤 삶이죠?

“내 마음에서 주님을 일부러 밀어낸 날에는 반드시 물으세요. “너 나 없이 행복했니?” “아니요! 하나도 행복하지 않아요.” 우리는 두 삶을 보잖아요. 똑같은 하루를 살아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 주님을 밀어내는 삶 말이에요.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그때는 신나고 달콤하죠. 그러나 그 이후의 시간에는 하나도 행복하지가 않아요. 오히려 하나님에게 너무 죄송하고요. 그럴 땐 고린도후서 13장 5절의 말씀이 하루 종일 생각나요.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나는 믿음 안에 있는가,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나, 성령님과 교제하는가. 계속 초점을 맞추게 돼요.”

– 이런 삶은 하루아침에 된 것 같지 않은데 신앙훈련을 많이 받아서 이런 삶이 가능한 건가요?

“아니에요, 훈련은 오히려 온실 속이었어요. 오히려 지금은 그때 갈고 닦은 칼을 쓰는 전쟁터라고 생각해요. 훈련을 받으면 뭔가 되는 것 같고 내가 뭔가를 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내 안에 계신 주님 한 분으로 전쟁터에서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해요. 이 전쟁터에서는 오직 말씀과 기도만이 저의 무기죠. 아침에 일어나서 신랑과 말씀 묵상을 하고, 주님과 깊게 기도하고 전쟁터로 나가요. 전쟁터에서 있었던 승리와 넘어짐을 저녁에 와서 주님께 직고하고 남편과 나눠요. 복음스터디를 하고 복음일기를 쓰고, 또 아침을 맞으며 말씀을 묵상하죠. 남편은 출근하기 전 입원실을 돌며 기도를 해요. 환자들을 주님께 올려드렸던 것이죠.”

알코올 중독에서 예수님 만나

– 네. 그럼 전쟁터에서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죠?

“인간 장선화로 할머니들을 보면 냄새가 나서 옆에 갈 수가 없어요. 날이 따뜻해지면서 부패가 심하다보니까 소변 줄 끼고 계신 분 옆에는 갈 수가 없어요. 제가 비위가 많이 약하거든요. 저는 그 어떤 선행이 나올 수 없는 존재에요. 욕으로 시작했다 욕으로 끝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욕을 하나도 안하면서 궂은일을 할 수 있는 건 진짜 주님이 하셨다는 것이죠. 이 비위도 사치라는 것을 알게 하셨어요. 주님이 다 걷어 가세요. 복음이면 얼마나 가능한지! 그러니까 내 안에 십자가가 없으면 환자를 볼 수가 없어요. 활동이 너무 많으니까 하루를 살다보면 너무 몸이 고되거든요. 그럼에도 환자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를 향한 애타는 마음이 넘쳐나요. 하루는 그 마음으로 예수를 믿지 않는 할머니에게 교회로 올라가서 함께 기도하고 예배하자고 권했어요. 그랬더니 “그래 같이 가자.”하시면서 같이 수요예배에 올라가시는 거예요. 할렐루야! 저희 병원에는 암환자도 몇 분 계세요. 예수님을 안 믿는 이분들에게 마지막으로 복음을 들려드릴 수 있는 곳이 여기구나 깨닫게 됐어요.”

– 병원이 정말 선교지네요.

“복음이 아니면 이런 삶은 불가능했어요. 저는 사람을 때리고 욕할 줄밖에 몰랐고, 세상을 저주했고 가족을 저주했어요. 3년 반을 따라다녀 결혼한 신랑도 사랑이 아닌 내 소유인 양 집착으로 대했죠. 머리부터 발끝까지 꽉 짜면 썩은 진액만 나올 수밖에 없는 저주받아도 마땅한 저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오셨어요.”

<이상 205호에 게재>

–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셨어요?

“저는 알코올 중독이었어요. 그날도 술에 취해 있었는데 날 보고 있는 한 검은 물체를 봤어요. 그때 느꼈던 죽음의 공포는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때마침 예전에 딱 한번 가본 교회 목사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제가 하도 전화를 안 받으니까 다른 사람 전화를 빌려서 전화를 하신 거였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주님이 강력하게 전화해야겠다는 마음을 주셨대요. 목사님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시면서요. 통화를 하면서 살 길에 대해 알려주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함께 기도원에 갔어요. 그날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게 됐죠. 술은 자연스럽게 끊어지게 됐고, 예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했어요. 잠이 많은 제가 새벽에 일어나 새벽예배에 갈 자신이 없어서 새벽에 우유배달을 하고 교회에 갔어요. 거리에서 사람들과 눈만 마주치면 시비를 걸던 제가 웃으면서 전도를 했어요. 그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위해 대신 돌아가셨다는 구원의 감격이 넘쳤어요.”

– 아주 강력한 만남이었군요. 그 은혜가 지금까지 이어져온 거군요.

“아니에요. 그렇게 주님을 만났지만 어느 날 옛날 알고 지내던 사람을 우연히 만났어요. 그날 4년 넘게 끊은 술을 40년 어치 먹은 것 같아요. 제가 술만 마시면 음주운전을 하곤 했어요. 그날도 어김없이 음주운전을 하다 걸려서 구속됐어요. 거기다가 술에 취하면 다 때려 부수곤 했는데 그날 구속된 구치소에서 깽판도 부렸어요. 이 일로 주님한테 술 먹어서 잘못했다고 빌고 교회에서 철야로 기도도 했어요. 그랬더니 뭔가 된 것 같았어요. 그런데 술을 보니까 먹고 싶은 거예요. 생각해보니 참고 있던 거였어요. 이게 뭐지? 예수님을 믿기 전과 똑같았어요. 또 신랑과 싸우고, 외도도 하게 되고… 이혼위기까지 갔어요. 이혼하기 직전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복음학교를 가게 됐어요. 놀라운 복음을 깨닫게 되었죠. 그러나 복음을 완전히 다 깨닫게 된 건 아니었어요. 그러다 대전에서 열린 한 집회에 참석했는데 그때 복음이 심령으로 깨달아졌어요! 주님께 제 전부를 드리게 됐어요. 왜 죄에 자꾸 넘어졌는지, 왜 자꾸 내가 주인이 되려고 했는지 알게 됐어요. 그동안 나(옛 생명)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는 것이 나에게는 슬로건이었던 거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주님과 함께 복음이 나에게 실제가 되지 않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하나하나 알게 되는 과정을 걷고 있어요.”

– 놀라움의 연속이네요. 위기를 함께 겪은 부군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신랑은 제가 술 먹고 사고를 하도 많이 치니까 저를 죽이고 보험을 받을까 생각까지 했다고 하더군요. 당시 보험도 많이 들어놔서 제가 죽으면 20억이 넘게 보상을 받을 수 있었어요. 물론 남편도 복음학교를 통해 복음을 만나고 변화됐기 때문에 지금 이런 얘기도 할 수 있네요. 남편이 자신에게 실제가 된 복음을 저에게 나눠주는데 나에게 이렇게 한 그 사람이 밉지 않았어요. 오히려 복음이 우리를 변화시킨 놀라운 이 영광이 기뻤어요. 할렐루야를 외치고 소리를 질렀어요. 주님이 살인마를 이렇게 바꾸셨어요. 이후 오히려 신랑을 더 사랑하게 됐어요. 병원 할머니들이 남편이 잘생겼다며 많이들 칭찬하시는데요. 그럴 때 “잘생긴 게 다가 아니에요. 어머니, 생김새에 속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없는 자는 다 완악한 존재입니다.”라고 하면서 우리를 변화시키신 복음에 대해서 나눠요. 이미 마음을 열어주신 할머니들께서 제 말을 즐겁게 들어주세요. 솔직히 제 과거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서 주님께 지우개로 지워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한 설교자를 통해서 “넌 이것을 가지고 날 전해다오.”라는 메시지를 듣게 하셨죠. 지우개로 지웠으면 큰일 날 뻔 했어요! 제 짧은 지식과 말 표현, 주변머리로 어떻게 하나님과 그분이 하신 일을 마음껏 말할 수 있겠어요(웃음).”

–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복음의 능력이 정말 대단하네요.

“지금은 어디서나 옆에 사람만 있으면 예수님을 전해요. 저는 여기가 훈련장이라고 생각해요. 아직도 변화되지 않은 나의 습관이나 가치관이 있지만 그것들을 드러내시며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합당한 통로로 만들고 계세요. 얼마 전에 친언니와 남편을 통해 제가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라는 것을 알려주셨어요. 나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산 삶이 무엇인지 경험해가고 있어요. 하지만 이건 안 쓰는 근육을 쓰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에요. 불편한 관계가 생기면 “왜 나에게 저렇게 말을 할까?”라고 생각했어요. 그걸 기분 나빠하고 있었어요. 장선화의 기분이 나쁘면 장선화의 기분이 살아있다는 증거고, 내 생각대로 생각하는 것은 내 생각이 살아있다는 증거였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지체를 위해 기도를 해주실 것 같거든요. “선화야 왜 그거 잡고 있는데? 쓰레기통에 버려! 그 사람은 그렇다 치고, 오히려 기도해줘. 그분에게 주님이 깨닫게 해주시겠지. 치워, 그 마음 치워!” 주님은 제게 그렇게 치우는 작업을 하게 하세요.”

▶ 삼성연합의원에서 장선화 집사와 같이 섬기고 있는 남편과 함께

– 치우는 작업이라… 저도 매우 솔깃하네요.

“한 마디 말에 신경이 쓰이고 그걸 생각 하다보면 비판이 돼요. 그건 결국 내 마음이 썩고 부패되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이 ‘치워! 쓰레기통에 넣어!’ 말씀하세요. 제 앞서 간 믿음의 선배가 이 삶을 살고 계시더라고요. 그 삶을 원하게 되니 그렇게 하게 되더라고요. 한번은 ‘신랑이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나눈 적이 있어요. 그 믿음의 선배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거 집사님 생각이잖아요. 버려요. 이렇게 되면 좋겠다. 저렇게 되면 좋겠다. 한번 얘기했는데 안 되면 그 뒤로는 하지마세요. 다 치워요.” 그러나 이게 아직도 익숙하진 않네요. 내가 옳다는 생각을 주장하는 것은 결국엔 주변의 사람들까지 끌어들여 동조하게 만들고 어떤 한 사람을 완전히 매장시키는 결과를 내요. 나를 높이고 싶어서 나는 잘했고 그 사람은 못했다며 깎아 내리고 내가 옳다는 인정을 받아내죠. 그렇게 제가 주변사람들을 오염시키고 있더라고요. 그게 제 38년 된 병자의 모습이었어요. 계속 훈련받고 있어요. 내 입을 함구하고 다 주님께 직고하고 나서 ‘버리는’ 것을요.”

– 기도제목이 있으신가요?

“요즘에는 반드시 두 개가 명확히 드러나요. 내 생각, 주님 생각. 반드시 주님 생각이 승리하시고 내 것은 패하는 것, 이것이 승리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요. 어떤 때는 나의 원함이 클 때 주님의 생각을 제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러나 오로지 주님이 승리하시는 삶을 살고 싶어요.” [복음기도신문]

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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