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지 않고 누리는 천국의 관점

피카소와 르노와르 <물랭 드 라 갈레트>

▶ 작품설명: 피카소, <물랭 드 라 갈레트(Le Moulin de la Galette)>, 1900년, 캔버스에 유채(위)

▶ 작품설명: 르노와르,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의 춤(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년, 캔버스에 유채(아래)

파리의 핫플레이스였던 물랭 드 라 갈레트(Moulin de la Galette)를 그린 두 그림을 보자.

작가의 시각 차이에 따라 같은 장소도 달라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위쪽은 피카소의 초기 회화로 예술의 도시 파리로 갓 상경한 스페인 촌뜨기 피카소의 지난날을 보여준다. 서툰 불어에 연고도 전혀 없던 피카소는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 주눅만 들고 말았다. 여인들은 흘끗거리며 피카소를 비웃는 듯 그려졌다. 그러나 이 우울했던 초기작은 훗날 비싸다 못해 희귀작이 될 정도로, 그는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다.

한편 아랫쪽 작품은 르노와르의 낙천적이고 진보적인 취향을 반영한다. 당시 아방가르드로 주목받았던 인상파 풍으로 그려진 이 그림에는 여가를 즐기는 파리지엔의 모습 너머로, 새로운 예술에 대한 르노와르의 기대와 확신이 반영되었다.

이처럼 시각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성경에 기록된 천국 비유를 통해서도 깨닫는다.

마태복음 20장 포도원 일꾼들의 비유가 그러한데, 아침과 늦은 오후에 불려온 일꾼들 모두는 약속대로 한 데나리온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아침에 온 일꾼 하나가 주인에게 ‘수고하고 더위를 견딘 우리’에게 어떻게 오후 일꾼과 똑같은 품삯을 줄 수 있냐며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당한 항변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일꾼이 시각을 달리하여 포도원에서의 하루를 견디지 않고 누렸다면 어땠을까? 오후에 온 일꾼들이 보지 못한 포도원 아침의 싱그러움을 경험하고, 영근 포도를 한 송이라도 더 만져 볼 수 있었으며, 포도원에서 일어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듣고, 무엇보다 선한 포도원 주인과 단 한 시간이라도 더 오래 교제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한 하루를 보냈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수고하고 견딘 하루였을까? 아마 늦은 오후에 온 일꾼에게 안타까운 표정으로,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말했을지도 모른다.

교회 안에서 사역과 봉사의 분량이 골고루 분배되지 못함으로 인해 누군가를 정죄하거나 원망한 적이 있었다면, 시각이 바뀌기를 먼저 기도하자. 먼저 된 자, 나중 된 자 가릴 것 없이 천국은 모든 믿는 자에게 열리겠지만, 이 땅에서의 삶이 단지 수고로움을 견딤뿐만이 아니라, 선한 주님과 교제하는 누림이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아침 일꾼은 행복과 감사로 가득 찬 하루를 보낼 뿐 아니라, 덤으로 한 데나리온까지 얻어갈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이상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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