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세계관은 생명의 삶을 만든다”

이태희 목사 (그안에진리 교회)

[222호 / 2020 비상한 때, 비상한 기도- 지상중계(2)]

한국교회와 사회는 지금 도덕적 가치와 천부적 인권, 가정의 가치가 세속적 가치의 도전 앞에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성경적 진리와 세계관을 보수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반역하는 사상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결과다. 이러한 때를 맞아 복음기도동맹은 각자의 삶의 터전의 골방에서 온라인 메시지와 기도인도자의 진행으로 유튜브 기도모임을 갖고 있다. 비상한 때 비상한 기도모임은 2월 27일부터 4월 2일까지 매주 목요일 유튜브 김용의TV를 통해 중계된다. 다음은 메시지 요약. <편집자>

우리의 눈은 우리의 삶을 만든다. 눈이 어두워지면 삶이 어두워진다. 눈으로 형성된 세계관이 우리의 삶을 만들고, 이 삶이 문화를 이룬다.

태초에는 두 가지 세계관이 존재했다. 첫째는 하나님 말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관점을 그대로 대적하는 사탄의 관점이다. 사탄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을 먹어도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관점이 아담과 하와 앞에 주어졌다. 그때 아담과 하와는 ‘네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네가 판단하고 네가 결정하면 된다.’는 사탄의 관점을 택했고, 그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원죄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을 ‘성경적 세계관’이라 부르고, 사탄의 관점을 ‘인본적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태초에 시작된 영적전쟁은 관점의 전쟁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생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창 1:28). 하지만 사탄의 관점을 갖기 시작하면서 ‘사망’에 처하게 됐다(창 3:17). 이 땅에서 펼쳐지고 있는 모든 사망과 저주의 시작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사탄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다.

우리가 처한 위기의 본질은 내가 주인인 삶

인본주의는 ‘내가(我, 나 아)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어서(主, 주인 주)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면 나도 살고 세상도 산다(生, 살 생)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아주생(我主生)’이라고 믿었지만 실상은 ‘아주사(我主死)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아래서 그 말씀에 순종하면 살게 되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위에 앉아서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기 시작하면 다 죽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위기의 본질이다. 사탄은 ‘네 감정, 네 생각, 네 느낌대로 행하면 된다.’고 미혹한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다.

세계관은 안경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성경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성경적 관점을 쓰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삶과 신앙의 이원화가 일어난다. 요시야 왕은 율법서를 발견하자 옷을 찢었다. 율법으로 현실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많다. 먼저 인본주의는 하나님의 자리를 인간이 대신 차지한 신념 체계다. 니체는 ‘우리 자신이 신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다. 인본주의 선언에서도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실현하는 것도 인간이 단독으로 할 일이고, 그것을 성취할 능력도 인간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종교개혁(16C)으로 세워진 성경의 가치가 계몽주의(18C)이후에는 이성으로 대체되었다. 계몽주의로 말미암아 세워진 문화와 문명을 모더니즘 시대라고 말한다. 모든 일들을 인간의 이성과 과학기술을 토대로 결정하고 계획하면 진보하고 번영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지만, 오히려 빈익빈부익부와 세계대전으로 인간의 문명이 파괴됐다. 이 때문에 모더니즘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20C)로 넘어가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신념은 ‘모더니즘 시대에 가지고 있었던 신념들을 해체시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족질서, 자본주의, 교회, 남녀 성별, 성경 등을 모두 해체시키고 모든 것이 진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주의가 가장 집중하는 것이 성(性)의 영역이다. 왜냐하면 성을 해체하면 모든 것을 해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명령한 첫 번째는 ‘생육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은 아이를 낳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의 윤리, 성의 질서 해체에 집중한다. 뉴에이지 신학의 핵심은 ‘모든 개인은 신’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런 영성으로는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없다. 하나님이 오늘날 비상한 시국을 허락하신 이유는 이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을 깨우기 위함이다.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반전의 비결이 있다. 바로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믿음이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 서 있었음에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비상할 수 있었다. 한국교회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얼굴만을 구하며 나갈 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이 나라, 민족과 열방 가운데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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