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윤올가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

#2

2020년 1월. 설날.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지역의 어느 카페.
70-90세의 고려인 어르신 50여명과
고려인 3, 4세대 40여명이 모였다.
딸띠코르간과 우슈토베 지역에
차로 한 두 시간 거리를 두고
넓게 흩어져 살고 있는 어르신들.
거동이 어려워 오랫동안 못 만나고
서로 소식도 모르고 지냈다.

#3

어르신들을 이 자리로 초대한 사람은
이 땅을 섬기는 축복의 통로인 한국인 선교사.
그동안 카자흐 사람만 주목하다
한국인이고자 했던 고려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저 이 땅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소수 민족으로 지내다 잘 만나지도 못하는
어르신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싶었다.

#4

오랜만에 한복을 꺼내 입고 만나
함께 먹고 마시는 설날 모임은
그야말로 눈물의 자리.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으로 만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5

“죽기 전에 꼭 동무들을 한번 만나고 싶어”
모임을 제안한 윤올가 할머니.
95세의 나이에도 곱게 화장을 하고
5cm의 굽 있는 구두를 신고
한국인 선교사를 맞는 분이다.

#6

12살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 당해 부모님을 잃고,
삼촌 집에 더부살이 하며 고생했다는 올가 할머니는
다리를 다쳐 이날 모임에는 오지 못했다.
할머니의 기억 속에는 라즈돌노예 기차역의 울음이 있다.

#7

1937년 러시아 우스리스크 라즈돌노예 기차역.
고려인 17만 2000여 명이 기차에 실려
중앙아시아 각 지역으로 흩어졌다.
고려인들의 수가 많아지면
체제 불안 세력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스탈린이
이들을 혹독한 환경의 중앙아시아 벌판으로
강제 이주시킨 결과다.

#8

장장 6,500Km.
짧게는 30일, 길게는 50일 동안
시베리아 횡단 철도 위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달리는 기차에서 던지며 가야만 하는 비참한 여정…
이후 정착지라고 내던져진 중앙아시아의 혹독한 추위에
죽어나간 사람들은 더 많았다.

#9

카자흐스탄 2만 141가구 9만5427명
우즈베키스탄 1만 6079가구 7만3990명
타지키스탄 13가구 89명
키르기즈스탄 215가구 421명
총 3만 6448가구 16만 9927명의 고려인들이 살아남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1937년 12월 5일 문서자료)
카자흐스탄에 이주당한 고려인들 중 500여 가구는
이듬해 초 러시아 아스트라한 지역으로
영문도 모른 채 또다시 옮겨야했다.

#10

그 고려인들 1세대는 95세 이상.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
남아있는 1세대는 20여 명 정도.
그분들이 오늘 딸띠코르간과 우슈토베에서 모여 만났다.
놀랍게도 3.1절 노래를 기억하는 이분들의 부모님들은
3.1운동 이후 블라디보스톡에 거주하다가
1937년에 다시 이곳으로 강제 이주를 당한 기독교인들이 많다.

#11

돌아가시기 전
아직 복음을 들어야 할 분들이 많이 남아있다.
역사와 복음의 사각지대에 남겨진 고려인 어르신들이
모두 복음을 들을 수 있길.
언젠가 딸띠코르간 교회가 이분들을 돌보며
함께 품을 날이 오기를 기도해 주세요.

출처: 복음기도신문 225호 ‘선교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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