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믿습니까?

ⓒ안호성

목사님!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마음에 담고 개척 교회를 시작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에 흔들림이 있다는 솔직한 고백 또한 하나님께서 이기실 힘을 공급하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10년 후 20년 후를 기대하며 기다려집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예전에 한 목사님과 나눈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그 목사님은 평신도가 대표로 있는 선교회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곳을 방문했다가 그분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평신도가 대표인 선교회에 목사님처럼 열심히 충성하는 목사님은 처음 봅니다.”

그 목사님은 목회를 접고 그 선교회에 들어오게 된 배경을 들려줬습니다. 그 선교회 대표는 그 목사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목사님!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믿습니까?”

아니 내가 목사인데 그것을 안 믿고 목회의 길을 가는 목사도 있을까? 나를 무엇으로 보고 이런 질문을 하는 거야.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답했다고 합니다.

“믿고 말고요.”
그랬더니 그분이 이렇게 되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목사님이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믿는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목사님은 한 성도만을 섬기며 일생을 스트레스 받지 않고 목회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가만히 있었더니 같은 질문을 다시 했습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믿어야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분이 다시 덧붙였습니다.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고 아는 것입니다. 아는 것을 믿는 것으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믿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것이 바로 기적이지요. 목사님이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 줄 알고 일생을 바치겠다면 하나님이 목사님에게 한 영혼만 맡기겠습니까?”

그의 이 말을 듣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함이 진정으로 믿어질 때까지 이 선교회에서 사역하겠다는 마음으로 섬기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지금은 교회를 맡아 다시 목회하고 있습니다. 이 목사님의 말을 들으면서 나도 아직 아는 수준이지 믿는 수준이 아니구나 하면서 아는 데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겠다고 다짐해 보았습니다. 근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아는 수준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작은 것이 귀하고 작은 것이 큰 것임을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더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그를 따르는 큰 무리보다 500명, 500명보다 120명이 귀하고, 120명보다 70명, 70명보다 12명, 12명보다 한 명이 귀한 줄 압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과 교제했으나 지금까지 계속 교제하는 분은 손꼽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소수의 사람이 더 크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드리는 말을 비판으로 듣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나는 대형교회를 비판할 마음이 없습니다. 나는 지금도 학교에서 내게 도움을 받은 제자 목사님들이 대형교회 목사가 되든지 아니면 중형교회라도 목회를 했으면 하는 자입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은퇴한 이후,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그동안 2만 명이 넘는 제자를 길렀으나 그들 중에 나를 위해 죽을 자가 있을까 하니 손에 꼽을 수가 없다” 했답니다. 정말 존경받는 목사님이셨습니다. 한국교회에 그런 목사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금도 그분의 설교를 들으면 감동이 됩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왜 그렇게 말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사도 바울은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라고 말이 순간적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나는 제자훈련에 미치지도 못한 자인데 다음 말을 용서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그 목사님이 길러낸 제자가 그 목사님에게 “목사님 저 같은 못난 제자를 위해 죽을 수 있겠습니까?” 질문 한다면, 제자훈련에 미쳐야 한다는 ‘광인론’을 외치신 그 목사님은 아마 “나는 너를 위해 미쳤는데”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제자는 아마 “미치는 것이 죽는 것은 아닌데”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해산의 수고를 통해 낳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너희는 나를 위해 눈이라도 빼줄 수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누가 갈라디아 교인에게 “네 눈을 바울을 위해 빼주면 너 병신 되는데” 하면 갈라디아 교인들 대답은 “바울은 우리를 위해 심장이라도 빼서 줄 분인데 눈깔 하나 빼주는 것이 대수냐” 할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목사님에게서 “광인론”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강의를 들으면서 “정말 그렇지, 나도 앞으로 이 목사님처럼 목회해야지” 하며 경청했습니다. 하지만 그 목사님이 은퇴 후 하신 말씀을 듣고 무엇에 미쳤느냐, 미쳐야 하느냐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질문은 “내가 지금 제자훈련에 미쳤느냐 아니면 제자에게 미쳤느냐”이었습니다.

제자훈련에 미치지 않고 제자에게 미쳐, 미치게 제자훈련을 시키는 목사는 제자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승이 제자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훈련 시키는데, 그 스승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는 제자가 있을까요? 예수님과 사도의 관계, 사도와 그들이 제자 삼은 자와 관계는 생명을 주고 받는 관계였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 생명을 담보로 하는 관계가 오늘의 기독교가 있게 한 줄 압니다. 목사님! 목회가 다음 세대를 책임질 하나님의 사람 하나라도 길러내는 목회 되시기 바랍니다. 늘 두렵고 떨림으로 주신 사명 잘 감당하는 목회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나는 그동안 나의 가는 길은 내가 정하고 그 뜻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는 생각 속에 살아왔습니다. 늦게서야 깨닫는 것은, 사실은 내가 정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길, 내가 모르는 그 길, 그러나 목적지는 가나안을 향하여 가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가 없지만 만일 모세가 여호수아의 말을 듣지 않고 다수인 열 명의 말을 들었다면? 모세는 그렇지 않았지만, 우리, 아니 나는 가끔 불신앙의 열 명의 편에 섰을 때가 있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목사님이 고집쟁이가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모세가 통과해야 하는 광야에는 길은 없지만,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쉴 나무는 없지만 구름 기둥이 있었습니다. 농사나 사업을 하지 않았으나 만나와 메추라기가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이 직접 공급하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면서 광야 길을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내년에는 이스라엘로 가려 하는데 거기서 만나는 내리지 않는 대신 그 땅에서 나는 것을 먹는다고 했는데 그것이 무엇일지를 기대하며 가나안 이스라엘 땅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복음기도신문]

필자소개 | 유영기 목사 평생 섬기던 합동신학대학원을 은퇴한 이후에도 말씀에 대한 갈망은 더 깊어져, 내년부터 이스라엘에서 성경을 더 공부할 계획이다. 현 헤브론선교대학교 총장, 전 합동신학대학원 박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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