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지려면 낮아져야 하고 목숨을 구하려면 잃어버리라

A. W. 토저 지음 | 이용복 옮김 | 규장 | 231p | 2011

A.W. 토저 <철저한 십자가>

이 책의 원제는 ‘더 래디컬 크로스(The radical cross)’다. 래디컬은 ‘근본적인, 철저한, 급진적인, 과격한’으로 번역된다. 이 단어는 십자가를 설명하기에 아주 정확하고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된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토저는 주님을 따르기 원하는 자에게는 조건이 있다는 것을 누가복음 말씀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 조건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십자가는 예수님을 죽인 사형도구였다. 그리고 주님을 진지하게 따르려고 하는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 이끄는 도구이기도 하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 세상과 옛 자아의 나에게 영영 작별을 고하고 하나님 한 분에게만 방향을 정한다는 의미이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

토저는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십자가를 만들어 주는데 매우 능하신 분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무거운 쇠나 납으로 만들어 주시기도 하지만 지극히 가볍게 보이는 지푸라기로도 만들어 주신다. 남들이 보기에 가벼운 지푸라기 십자가가 어떤 사람에게는 완전한 죽음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때 내게 있었던 지푸라기와 같은 십자가가 기억났다. 또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도 떠올랐다.

주님을 따르기로 했던 지난 시절, 나는 순교를 결심하기까지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지푸라기와 같은 십자가의 자리가 허락될 때, 그것을 십자가로 여기지 못했다. 주님을 위한 나의 열정으로 바빴다. 가까이 있는 가족들에게는 함부로 대하면서 기도, 예배, 헌신의 자리에는 아낌없이 나를 드렸다. 토저는 “육신적인 화와 짜증을 내버려둔 신령한 자는 없다.”고 선언한다. 가까운 사람에게만 화를 드러내는 내가 못 박혔음을 보기까지 주님이 인도해 주셨다. 지푸라기 같아 보여도 육신에 속한 내가 죽을 때 비로소 진정한 기도와 예배, 헌신의 기쁨과 승리가 드러나는 것임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토저는 십자가가 한 개인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었을 때 나타나는 십자가의 역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인은 높아지려면 낮아져야 하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잃어버리는 자리로 나아간다. 가장 약할 때 가장 강하고 가난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들이다. 자신의 무지를 깨달을 때 가장 지혜로우며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많은 일을 하는 것이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이 가장 멀리 가는 것이다.”

십자가의 역설적인 영광

나는 십자가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때, 십자가의 역설적인 영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균형 있는 신앙생활을 원했고, 주님을 위해 나를 가꿔 세상에 빛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은 나의 능력 뒤에 숨어 나의 연약함을 숨기면서 나의 강한 부분만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애썼다. 결국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배우지 못했던 시간이었다.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기 위해 세상과 비슷하여져서 세상의 영혼들을 얻으려 했지만, 오히려 세상을 이기지 못했다.

토저는 십자가를 미화하고 십자가의 엄격함을 완화하여 교인들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교회를 향해 한탄했다.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기에, 육신에 속한 모든 삶이 끝났음을 강력하게 선포했다. 2020년을 살아가는 내게도 저자의 메시지는 울림이 된다. 날마다 십자가의 철저함을 농도만큼 이해하고 살아가기를!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었지만 육체 가운데 살아가는 내게 더욱 믿음으로 십자가로만 나아가길! 내 뜻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길! 마라나타! [복음기도신문]

김은영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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