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앞에서 회개하며 믿음의 공동체로 세워지다

▲ 지오선교회 컨퍼런스(지오선교회 웹사이트)

지오(GO)선교회 이야기

계간지로 발간되는 KMQ(Korea Mission Quarterly) 2020년 가을호는 선교동원을 특집으로 다루며 다양한 믿음의 발걸음을 소개했다. 그 중 선교단체 지오(Global Operation)선교회의 해외본부장으로 섬기고 있는 김마가 선교사가 선교동원을 다루는 주제 가운데 지오가 지난 몇년간 말씀앞에서 공동체가 회복되는 과정을 소개했다. 한 개인을 넘어 70여명의 공동체가 어떻게 말씀과 기도의 삶으로 결단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정리한 부분을 발췌, 필자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다.<편집자>

나는 이쯤 해서 지오선교회의 이야기를 좀 할까 한다. 2002년부터 시작했던 지오는 나름대로 성공적인 동원을 하고 있었고 전국에 지부를 확장하며 선교사들을 내보내고 있었다. 2006년에 주누가 선교사와 필자는 크리스천 의과 대학생들을 모집해서 국제적으로 공중 보건의 성공적 사례인 CRHP(Comprehesnsive Rural Heath Project, 1970년 인도인 크리스천 의사 아롤레와 그의 부인이 시작해 잠켓의 공중보건은 물론 사회적개혁을 이룬 사례)를 벤치마킹하면서 이를 선교적 방안으로 만들어 보기 위해서 인도의 잠켓을 방문하여 한 달을 머물렀었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선교 단체로서 지오가 한국교회에 무슨 유익을 끼치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질문했다. 그리고 우리가 안고 있던 문제를 개선할 목적으로 선교 훈련의 모델을 구상했다. 한국에 돌아와 5-6년에 걸쳐서 몇몇 지역 교회와 실험을 해보았다. 우리는 지역 교회가 스스로 지속 가능한 선교 구조를 갖고 선교 훈련을 시켜서 선교사를 배출해내고 열매가 맺어지는 것을 촉진하려고 했다. 지역 교회가 모달리티(Modality)의 역할을 하는 동안 우리는 전문적인 선교 단체로서 현장의 사역을 지도하고 전력적인 선교를 실행함으로써 실제적인 복음의 진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성공적인 사역열매로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고 싶었으나…

그러나 결론적으로 발견한 것은 첫째는 소달리티(Sodality)로서 우리가 지역 교회에 공급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고, 둘째는 줄 것이 있다 해도 그것은 지역 교회가 목말라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역 교회는 타 문화권 선교가 우선순위가 아니었기에 교회 자체가 그렇게 원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정말로 문제가 된 것은 여전히 우리들의 자세였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 우리 자신이 희생해 가는 것을 그다지 원하지 않았다. 우리의 사역이 성공적인 열매를 맺기를 원하고 성공적인 모델로서 세상에 알려져 우리들이 확장되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지오는 큰 실험을 했다. 양질의 선교사를 배출하고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며 선교지 교회가 만들어지고 성장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것이 애초에 고민이었다. 여러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우리는 온전히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구하자”는 비전에 이르게 되었다. 2012년 늦은 가을에 선교 헌신자들과 선교사들 70여 명이 함께 조그만 도시의 외곽으로 이사를 했다.

우리는 전적으로 주님의 군대가 되기로 하였기에 앞으로의 사역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을 기대했다. 물론 우리는 완전히 모여서 사는 공동체도 아니고, 자기 소유를 모두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기도와 노동만을 하는 공동체도 아니었다. 우리 스스로 공동체라고 이름을 붙이기에도 어쭙잖은 모임이었다. 다만 우리의 모든 관심을 주님께 집중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본부 사무실을 중심으로 걸어서 5-10분 거리에 세를 얻어 살면서 매일 오전 3시간 동안 말씀을 공부했다. 성경을 한 장씩 보면서 성경을 해석하는 훈련을 하고 거기서부터 우리들의 삶과 선교 방법을 도출하는 연구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녁에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를 하기로 했다. 우리 개인이나 혹은 우리 단체 혹은 우리와 관련된 내용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들을 구했다. 우리 자신 중심에서 하나님으로 시각을 옮기는 일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다. 낮 시간에는 사역을 위한 행정을 했다. 저녁에는 미션 홈에서 2-3유닛이 함께 생활하였다. 매달 첫 삼 일은 모든 일을 멈추고 금식기도를 하면서 우리 죄를 회개하고 모든 민족들 가운데 복음이 증거되기를 구했다.

말씀앞에서 주님을 찾을수록 우리의 들보를 들춰내시는 주님

그렇게 몇 달을 보내면서 우리들 안에는 큰 기대가 있었다. 이제 주님께서 복을 주시고 우리를 모든 교회의 본보기로 삼으실 것이며 선교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우리에게로 몰려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말씀을 보고 주님을 찾으면 찾을수록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의 죄들을 드러내기 시작하셨다. 우리 눈의 들보를 보기 시작하면서 한없이 초라해진 우리 모습과 속사람을 감춘 채 선교의 가면에 숨어있던 우리를 보게 되었다. 큰 두려움 속에 회개와 떨림이 거의 2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기간에 전국의 지부를 돌볼 힘이 없었고 선교지의 선교사들은 당황했으며 몇몇 분들은 지오를 떠났다.

우리는 무엇보다 주님의 나라를 구하지 않았고 우리의 이름을 내려는 욕심으로 일했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단체나 사람들보다 우리가 뛰어나기를 원했다. 야고보서 4:1-2의 말씀은 우리 모습 그대로였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모든 것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나님께 요구했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려는지 묻지도 않았고 우리 속에 정해진 신학적 명제와 당위성을 따라서 행해왔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존중하지 않았으며 주님께서 세우신 영적인 질서들을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배운 것들을 열거하면 끝이 없다.

그 결과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어떻게 되었는가? 참 미미하다. 소수의 가정을 선교지로 파송했고 우리 중 몇 사람들은 지오를 그만두기도 했다. 그렇지만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었기에 처음 이사 올 때와 지금 전체의 숫자는 비슷하다. 우리가 세 들어 있던 건물 주인이 부도가 나서 졸지에 길거리에 나앉게 될 때도 있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주님께 우리 사정을 아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후에 주님의 도우심을 입고 결국 그 건물을 우리 소유로 얻게 되었지만 그 위기에 진땀을 뺐다. 재정을 얻으려고 돌아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3년쯤 지나서는 있던 것들도 바닥이 났었다. 완전히 바닥이 나던 그달에 주님께서 재정을 다시 부어주셨다. 우리는 지오의 운영에 대해서 신명기 28:1-6의 말씀을 믿고 있 다. 만일 우리들이 주의 명령과 말씀을 지켜 행하면 우리의 사역이나 생존이 지켜진다는 것을 믿고 구하고 있다.

선교현지의 지도자들과 함께 주 안에서 가족을 이뤄가며

지오를 시작하면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는 말씀을 붙들었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사랑함으로 교제하시다가 아들을 보내신 방식이 제자들에게도 적용되어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도록 하셨으며 그 제자들을 보내시겠다 하셨다. 선교사들의 파송이 사랑의 교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알고 그 일에 힘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선교사들은 편차가 심했다. 현지에서 활동을 활발하게 하시는 분들도 있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몰라서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다. 일부는 서로 싸우다가 돌아온 분들이 있고 일부는 도저히 같이 살 수가 없어서 제명해야 하는 분들도 있었다. 파송되는 선교사가 드물기에 선교사 숫자는 늘지 않았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현지에서 새로 교회를 시작하게도 하시고, 크고 작은 선교적 프로젝트를 진행하게도 하셨고, 무엇보다도 현지인 지도자들과 교회들을 섬길 수 있도록 하셨다. 우리에게서 파송된 분들을 통해서 주님께 돌아온 무슬림들이 있다. 그러나 훨씬 많은 숫자는 현지 교회와 지도자들을 통해서 돌아왔다. 매일 현지 교회들을 위해 기도하며 주님께 배운 것들을 현지에 전달하고 현지의 필요를 들을 때마다 힘껏 도왔다. 이렇게 해서 한국 선교사들만이 아니고 현지의 지도자들도 주 안에서 가족이 되었다.[복음기도신문]

김마가 선교사 | 지오(GO)선교회 해외본부장.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중앙아시아에서 전문인 선교사 일하면서 무슬림 배경의 믿는 자들로 교회를 세웠다. 다양한 지역사회개발사업에 참여했고, 2004년부터 Ethne의 운영위원(Steering Committee Member)으로 활동하며 비전 5:9, 세계기도운동(GDOP) 등의 국제선교 및 기도운동의 파트너십에 참여해왔다.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문의:

Print Friendly, PDF & Email

관련기사

20240425 Bible
[GTK 칼럼] 말씀을 전파하라(8): 깊이 있고 균형 잡힌 목회를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20240423_sunshine
[고정희 칼럼] “엄마, 나 아파”
20240424_Risen
[TGC 칼럼] 복음은 성경의 역사적 증거다
aaron-burden-unsplash
[채영삼 칼럼] ‘예정론을 오해한 사람들’에게

최신기사

美 89세 프로라이프 운동가, 낙태 클리닉서 낙태 막으려다 체포... 감옥서 죽을 각오
[오늘의 한반도] 사이버 도박 단속으로 청소년 1035명 검거... 9세도 포함 외 (4/26)
[오늘의 열방] 이란, 반정부 시위 지지 래퍼에 사형 선고 외 (4/26)
[GTK 칼럼] 말씀을 전파하라(8): 깊이 있고 균형 잡힌 목회를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美 대법원서 ‘긴급 낙태시술 허용범위’ 두고 공방
생명존중 과학자 27명, “신학교에서 유신진화론 가르치면 안돼”
美 하원, 중국의 인지전 통로인 '틱톡' 금지 법안 통과
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