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칼럼] 단나상입니까?

일본의 거리 풍경 ⓒ복음기도신문 자료사진

고정희 선교사의 주님이 사랑하시는 것(17)

처음 일본생활을 시작하고 몇 개월이 지난 후 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언어가 불가능하기에 일본어를 잘 못해도 가능한 일을 하게 되었다. 일본에도 일본 김치가 있다. 우리나라의 발효 김치와는 재료와 만드는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다시마, 소금, 간장에 절여 ‘츠케모노(채소를 절임한 저장음식)’의 한 종류로 먹고 있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곳이 일본 김치를 만드는 곳이었다. 일본 음식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일본 김치 만드는 법도 배울 겸 시작하게 되었다. 출근할 때에는 회사 차를 이용했지만 퇴근할 때는 내가 끝나는 시간이 달랐기에 남편이 마중을 와야 했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언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사건이 일어났다.

첫째 날, 일을 마친 내게 김치공장 부쵸(부장)이 ‘단나상가 무카에니 쿠루카라 오마치시떼구다사이(남편이 데리러 올테니 기다리세요)’라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이름 뒤에 ‘상’이 붙으면 우리나라 ‘00씨’의 개념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단나라는 사람이 나를 데리러 오는 줄 알았다. 한참을 기다렸다. 지나가던 부장은 아직도 단나상이 안 왔냐고 하시며 그냥 지나가신다.

년말 추운 겨울날이었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에게 ‘혹 단나상 입니까?’ 하고 물으면 이상하게 쳐다보곤 가버렸다. 일본인들이 들을 때 어떤 여자가 ‘단나상? 단나상?’ 하고 묻고 다니니 얼마나 웃기고도 슬픈 상황인가? 몇 시간을 발을 동동 구르며 그렇게 ‘단나상’만을 외치며 간절히도 기다리고 있었다. 해는 지고 캄캄해졌을 때 남편이 눈시울이 붉어져서 왔다. 나도 참았던 눈물이 주르르….드디어 ‘단나상’이 왔다. 일본어 ‘단나상’은 다름 아닌 우리말로 ‘남편’이었던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이야기 하자면 좀 길지만 해외 초년생만이 겪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 기다림에는 처음부터 초점이 잘못되었다. 단나상이 남편인줄 알았다면 여기 저기 뛰어 다니며 단나상을 확인하며 찾아 헤매지 않았을 것이고 어떻게든 전화가 있는 곳을 찾아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을 것이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잘못된 집중으로 어려움이 있던 날이었다. 이 사건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올바른 집중이 중요하다. 오늘도 나는 내게 언제나 올바른 예수님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다니엘은 나라(남 유다)를 빼앗기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지만 늘 하나님께 집중했다. 왜 나라를 빼앗겨서 이런 포로 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불평하며 자신의 환경에 집중하거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해주시길 기다리는데 집중하지 않았다. 오로지 하나님께만 집중했다. 그러기에 다니엘이 끌려온 나라 바벨론은 더 이상 바벨론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다.

나는 조선인들이 바벨론(일본)에 집중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왜 우리 할아버지는 일본 땅에서 살 수밖에 없었을까? 왜 우리들의 삶은 고단해야만 살 수 있는가? 우리의 아이들의 미래도 나와 같단 말인가? 우리 조선인들의 외침이다. 모든 의문의 외침을 내려놓고 아버지이신 우리 하나님께 뜻을 정하는 백성이 되길 기도한다. 환경과 상황에 매인 잘못된 집중으로 포로 된 자로 살지 않기를 기도한다. 조선인들, 그들이 이 땅 일본에서 예배할 때 이곳은 더 이상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사랑과 정의를 지키며 너희 하나님께만 희망을 두고 살아라(호 12:6) [복음기도신문]

고정희 선교사 | 2011년 4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족이 일본으로 떠나 2014년 일본 속에 있는 재일 조선인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우리학교 아이들을 처음 만나, 이들을 섬기고 있다. 저서로 재일 조선인 선교 간증인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었다'(도서출판 나침반, 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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