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두신다. 이유를 알 수 없고 언제까지인지도 알 수 없다. 그때도 ‘하나님은 선하신가?’라는 질문에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주님을 피난처로 삼은 자들이 아닐까?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 극에 다다르고 평온했던 네덜란드도 전쟁의 포화 속으로 들어간다. 시계를 판매하고 수리하는 코리 텐 붐 가족은 신앙적으로 바르고 보수적이었다. 코리의 가족들은 소외된 자들을 돌보고,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며, 아버지의 권위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존경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독일군의 최대 표적이 되는 유태인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그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다. 50대의 중년 여성 둘, 그리고 80대의 늙은 아버지가 도움이 필요한 모든 유태인들을 위해 지하조직을 만들고 첩보 수준의 일들을 감당하며 아슬아슬하게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생명을 걸고 순종한다. 읽는 내내 그들이 잡히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결국 가족 모두 감옥으로 끌려가게 된다.
이미 늙고 병든 아버지는 수용소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생을 마감한다. 언니 벳시와 둘만 남게 된 코리는 상상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결코 뺏기지 않는 법들을 배우며 그들만의 천국을 확장시켜 나간다. 하룻저녁 모임에 루터 교인들의 속삭이는 듯한 찬송가와 정교회 신도들의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포함되었다. 매번 주위에 몰려드는 여자들이 점점 늘어나서 가까이에 있는 침상이 꽉 찼고 침대가 삐걱거리고 흔들릴 때까지 사람들이 매달렸다.
수용소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천국의 작은 시사회였다
“벳시나 내가 성경을 펴고 네덜란드 말이 아닌 독일어로 크게 번역해주었다. 그 말씀은 다시 불어로, 러시아 말로, 체코 말로, 다시 네덜란드 말로 전달되었다. 그 예배는 천국의 작은 시사회였다.”(p.281)
그러나 그곳은 수용소였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욕과 분노, 그리고 죄수라는 무기력한 상황 앞에 코리는 매일 싸워 이겨내야 했다. “(간수의 가죽 채찍에 맞아) 빨간 얼룩이 벳시의 칼라로 배어나왔다. 내가 그녀의 맞은 자국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안 벳시는 새처럼 가는 손으로 그곳을 가렸다. ‘보지 마, 코리. 예수님만 바라봐.’”(p.286)
나도 코리와 함께 슬픔과 분노가 치솟았다가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벳시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악을 저지르는 독일 사람들 뿐 아니라 코리 안의 존재적 죄 됨을 날카롭게 도려내시는 분이셨다. 수용소에서 불쌍한 처지에 있다고 우리는 결코 선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추위가 심해지는 수용소 안에서 아픈 언니 벳시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코리의 태도를 통해 하나님은 코리가 사탄의 커다란 속임수에 빠져 있음을 알게 하신다. 그리고 다시 코리를 은혜 입은 죄인의 자리로 건져 내신다.
실제로는 가스실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으나, 서류 착오로 석방된 코리는 전쟁 이후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섬기게 된다. 그러나 설교를 하게 된 교회에서 수용소 간수를 만나게 된다. 그가 코리에게 악수를 청하자 코리는 분노로 몸을 떤다. 차마 그에게 손을 올리지 못하는 코리의 마지막 모습. 성경을 알고 동의하는 것과 실제 되는 것은 때론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우리에겐 단지 하나님의 은혜만이 필요할 뿐이다. 코리는 손을 올려 그의 손을 잡으며 비로소 예수님의 용서가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 때에, 나는 노래를 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련다. 감사의 노래로 그의 위대하심을 알리련다.”(시 69:30, 새번역)
주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기에 우리는 우리의 그 때를 마음껏 주님께 드릴 수 있다. 코리처럼 말이다. [복음기도신문]
최현정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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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실패의 비결은 은밀한 기도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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