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칼럼]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되셨다

▲ 신사앞에 설치된 게시판에 일본인들이 소원을 적은 메모지를 끼워놓은 모습. 고정희 선교사 제공.

사쿠라(벚꽃) 꽃잎으로 화려했던 나무들이 푸른 잎사귀들로 하늘을 가리 울 만큼 가득히 숲을 이루었다. 더워지는 날에 그늘이 되어 잠시 그 밑으로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잎사귀 안을 들여다 보았다. 드문드문 발그레 작은 열매들이 보인다.(벚꽃은 6~7월 즈음 더운 여름이 되면 굳은 씨 열매를 맺는다.)

얼마 전에 읽은 마가복음11장의 예수님이 저주하신,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생각이 나서였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다는 이유로 다시는 열매를 내지 못하고 뿌리로부터 마르는 심판을 하셨다. 무화과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꽃이 피지 않고 열매와 잎이 거의 같은 때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예수님은 마침 시장하셨다. 그래서 잎사귀들로 풍성한 무화과나무에는 당연히 열매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시고 찾으셨다. 그런데 열매가 없다. 여기에 예수님의 응답은 틀림없이 같이 있던 제자들을 무척 놀라게 했다. (성경에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여기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잎이 그처럼 무성한데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저주를 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제자들을 향해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셨다. 열매는 믿음이었다. 믿음이 없는 나무를 심판하셨다. 믿음은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것 같고 전혀 응답하지 않을 것 같은 때에도 말이다.

너는 노아를 비웃던 자들과 달리 나를 신뢰하느냐?

코로나19로 긴 시간을 지나면서 우리에게 풍성하게 붙어있던 잎사귀들이 하나씩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믿음이 없다, 믿음이 작다, 믿음이 크고 튼실하다.

그동안 풍성한 잎사귀에 가려져서 잘 몰랐던 것들을 보게 하신다.

교회에 풍성하게 붙어있던 잎사귀를, 선교지에 풍성하게 붙어있던 잎사귀를, 나에게 풍성하게 붙어있던 잎사귀를 하나씩 떼시는 것 같다.

주님은 화려한 잎사귀들의 잔치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나무 어딘가에 달려 있는 진짜 믿음을 찾고 계신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6:6)

이 세상은 긴 시간동안 멈추어 있다. 오늘 일본 텔레비전에 한 청년이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더 이상은 못 참아’ 하며 소리 지르는 모습이 나왔다. 일본정부의 긴급사태선언이 발표되었다. 최소한의 생활에 가능한 가게를 제외한 대부분의 상점들과 문화시설이 긴 휴업에 들어갔다. 꼭 필요한 것들은 아니지만 우리를 즐겁게 하기에 좋은 것들에서 쉬게 하고 있다. 세상은 더 이상 못 참겠다고 야단들이다. 복잡했던 세상이 단순해지고 있다.

솔직히 나는 코로나 이전의 바쁜 생활에서 육의 쉼을 누리고 있는 환경이 조금은 근심이고 불안했다. 우리(조선)학교에 가서 급식을 하고, 아이들을 만나고, 선생님을 만나고, 엄마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같이 바자회를 준비하고, 한국음식을 나누고…그런 하루하루를 기뻐하고 뿌듯해 했다. 학교를 다녀오거나 엄마들을 만나는 것으로 만족 할 때가 솔직히 많았다. ‘아 ~ 오늘도 열심히 사역했다’ 하면서 말이다. 지금 이런 것이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님을 먼저 말해주고 싶다. 나는 무엇이든 사역(육체적 노동)후 얻는 성취감과 몸의 피곤함을 좋아한다. 주방에서 밥을 못하고 있는 현실을 불안 해 하고 있는 나의 믿음 없음을 알게 되었다.

믿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함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간을 참 많이 주시고 있다.

이 설명 없으신 고난은 그분의 사랑법이다. 마지막 때에 그동안 잎사귀에 가려서 잘 못 보았던 나무에 믿음이 달렸는지 보라고. 하나님을 신뢰할 만한 이유들이 모두 희미해져 버리는 어둠 속에서 여전히 주님을 신뢰하고 있는지 보라고. 멈춘 단순해진 세상에서 더 주님을 사랑하고 거룩해지라고. 그리고 내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주님의 마음을 잘 보라고 열방에 주시는 시간이다.

신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깨끗함으로 신랑을 사랑하고 뜻을 함께 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바쁘고 여러 곳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기적과 표적을 일으키시고 복음을 전하신후엔 언제나 조용히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아버지와 만나셨다. 아버지를 신뢰하므로 참 쉼을 누리셨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뜻을 이루어드리는 아들이고 싶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가야바 뜰, 빌라도 법정, 헤롯왕 앞 그리고 골고다 그 길을 순종함으로 밀알이 되셨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열매)이 되셨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사는 삶은 성령이 도우신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열매들로 맺게 하신다. 이것이 주님이 찾으시는 믿음이지 않을까?

오직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고 의를 시냇물이 마르지 않고 흐르는 것처럼 항상 흐르게 하라(아모스 5:24) [복음기도신문]

고정희 선교사 | 2011년 4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족이 일본으로 떠나 2014년 일본 속에 있는 재일 조선인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우리학교 아이들을 처음 만나, 이들을 섬기고 있다. 저서로 재일 조선인 선교 간증인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었다'(도서출판 나침반, 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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