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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식 칼럼] 인생

▲ 노숙자의 아픈 무릎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사진: 프레이포유 제공

​1955년 11월26일에 태어나고, 지금 병환 속에 있는 저는 죽음의 시간만 기다리고 있다는 마음만 듭니다.​

저의 기억속에는 여섯 살까지 저의 옆에는 한 사람이 빠진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머님 한 분과 생활한 기억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부터 아버님이 없다는것을 알았지만, 저의 아버지가 어디에 있냐고 어머니에게 물어 볼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 행동에 어머니는 늘 반감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쯤 아버님과 어머님은 이혼했습니다. 저는 어머님을 따라 대만에 있는 집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이틀 지내고 삼 일 뒤에 저를 다시 데리러 온다고 하신 어머님께서는 긴 시간 동안 오지 않았습니다. 어린 저는 어쩔수 없이 대만에서 3년을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중에서 인생의 희, 노, 애, 락을 맛보게 되었고 저의 마음도 시간이 지날수록 냉정하게 변한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 받기를 싫어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한 저에게 언제나 고독과 불안함이 따라다녔습니다. 똑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과는 뭔가 좀 없다는 생각은 저를 소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성장 과정에서 제 자신을 숨기게 되고, 또한 저에게는 왜 안정한 가정이 없냐는 자괴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어떻게 하면 한국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을지? 어떻게 어머님을 찾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만 하다가 편지 한 통을 할머니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도움으로 저는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였습니다. 한국에 와서 그나마 할머니 품 속에서 생활한 그 시간이 저에게는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았습니다.

​우연한 시간에 저는 어머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어머님에게서 그때 저의 입양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은 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은 새로운 가정를 만들었고 예전의 아버지와 함께 생활할 때 보다는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비록 어머님은 변했지만 저는 어머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이해하게 되고, 동정하고, 행복을 축원하였습니다.

​그 후 저는 큰 아버지를 찾아가 학교를 다시 다니게 되었습니다. 아마 고등학교 2학년 쯤 저는 마음의 변화로 인하여 학업을 포기하고 사회에 나와서 돈벌 생각만 하였습니다. 일 년, 또 일 년 이렇게 저의 청춘 절반은 흘러갔고, 우연한 만남으로 한 여인을 알게됐는데 그녀는 저의 이상형 이었습니다. 그 여인을 위하여 저의 모든 것을 걸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만남 속에서 또 일 년 반은 흘러갔고, 어떻게 보면 어머님 외에 그녀는 유일하게 믿었던 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사랑이 솔직히 뭔지도 잘 몰랐고 잘못된 시간과 결정으로 인하여 그 여인을 붙잡지 못한 마음이 평생 동안 아쉬움과 후회로 남습니다. 상심, 고통, 고독, 슬픔은 저를 떠나기 아쉬워서 지금까지 저를 따라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후 이런 저런 일로 인하여 저는 아픈 몸을 가지고 용산역 거리 생활을 해야만 된다는 사실을 부딪히게 되였습니다.

​거리로 나오지 않으려고 모든 힘과 노력은 다 해보았지만 결국 싸늘한 거리로 나오게 되었고 자신의 무능함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존심도 그 원인 중 하나 입니다. 저는 거리에서 우연히 어떤 PD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께서 저의 힘든 사정과 저는 3개 국적을 가진 난민이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사연을 듣고 프레이포유 손 목사님을 저에게 소개하고 만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는 영등포에 살림공동체 3호를 세우고 저를 그 공간에서 생활할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프레이포유 손 목사님과 살림공동체 사역자 분들과 함께 다니면서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또 다른 관심을 받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소망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저의 아픈 곳의 고통을 덜어주사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께 사용 받기를 기도 드립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금 쌀쌀한 거리에서 생활하는 분들을 찾아가 하나님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 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코로나19로 인하여 힘든 시기에 목사님들과 동역자 분들과 사역자 분들이 모두 건강하기를 기원하고, 아픈 저를 이해해 주시고 받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구원위> [복음기도신문]

손은식 목사 | 2013년 말부터 서울 시내의 노숙자와 홀로 사는 어르신을 돕고 기도하는 프레이포유 사역으로 이 땅을 섬기고 있다. 이 칼럼은 손은식 목사와 프레이포유 사역을 섬기는 사역자들의 사역일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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