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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칼럼] 수양산 아래 첫마을 나의 살던 고향은 (1)

▲ 1960년대 필자 고향 옆동네 갈전리 교회를 방문한 뉴스마(한국이름 유수만)선교사가 치과의 수련의 및 간호사들과 함께 무료치과진료봉사를 하는 모습. 사진: 필자 제공.

오랫만에 추석을 맞이해 아내와 함께 작은 형의 차를 타고 내가 태어나 자란 나의 시골 고향을 방문했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전라남도 담양의 수양산 꼭대기 영산강의 수원이 시작되는 까까산중 두메산골이다. 비록 마을은 작지만 아주 아담하고 멋있는 마을이다.

~따 아직 12시도 안됬는디!”

“아따 너는 왜 그리 아침밥도 안묵고 세수도 안혀? 꼭 아프리카 깜둥이 맹키로 얼굴은 시커머까꼬~”

“아~따 아직 12시도 안됬는디~”

어린 시절 매일 아침 형들과 나와의 실랑이하는 모습이다. 아버지는 남의 집 일 다니고, 어머니는 동트기 전에 읍내로 걸어가 생선을 뗘다가 머리에 이고 이 마을 저 마을로 장사를 하고 낮 12시 차를 타고 마을로 돌아왔다. 나는 마을 어귀 주막집 뒤의 언덕 큰 바위 위에 올라 저기 멀리서 흙 먼지 사이로 달려오는 버스를 발견하고는 냅다 달려 내려간다. 나는 어머니를 보고서야 아침밥도 먹고 세수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내 얼굴은 까맣다. 아주.^°^

“울지마. 울면 호랭이가 콱 물어가 붕께…”

흉년으로 마을에서 먹을 것이 부족하자 마을의 아낙네들은 일거리를 찾아 광주로, 서울로 떠나야 했다. 우리 엄마도 동네 다른 아낙들과 함께 젖먹이 동생을 업고 서울로 떠났다. 얼마 후 큰 형 또한 엄마가 일하러 갈 때 어린 동생을 봐줘야해서 서울로 떠나야 했다. 엄마와 형, 동생이 보고 싶어 울때면 아버지와 작은 형은 나를 이렇게 어르곤 하였다.

“시째야, 자꾸 울지 마랑께~ 고러케 계속 울어싸면 저 뒷산에서 호랭이가 내려와 콱 물어가붕께~ 울면 안되 잉~”

당산 나무 아래 우리 집

모든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마을에서 제일 오래된 당산나무 아래에 모여 당산제를 올렸다. 당산나무 맞은편엔 무당 할머니 옥산댁이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가족들이 아프거나 마을에 특별한 일들이 있을 때 이 옥산댁 무당 할머니를 불러 굿을 하곤 했다. 이 할머니는 아주 용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우리 집도 내가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교회를 나가기 전까지는 이 할머니를 불러 집에서 굿을 하곤 했다.

우리 집은 당산나무 바로 밑의 시냇가 바로 옆에 있었다. 산 아래의 시냇가 물은 아주 맑고 깨끗해 가재가 살고 있었다. 우리는 시냇가의 맑은 모레를 손에 묻혀 이빨을 닦곤 했다. 우리가 살던 집은 진즉에 없어졌으며 무성한 잡초와 남아있는 일부 돌담벽 만이 ‘왜 이제야 왔냐’는 듯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우리 시째 손가락을 잘라불면 절~대 안되지라~…”

어릴 적 나는 당산나무 아래서 동네 친구들과 놀곤 했다. 어느 날 당산나무 맞은편 무당 할머니 집의 돌무더기로 쌓아 올린 담벼락에 올라가 친구들과 놀다 돌이 굴러 떨어져 손가락 하나를 크게 다쳤다. 논에서 일하다 이 소식을 듣고 일하던 어머니는 호미를 던져두고 부리나케 오셔서 헝겁데기로 피나는 손가락을 감싸 동여매 주었다. 곧이어 옆집에서 닭 두 마리를 빌려 잡아메고는 나를 업고 반나절 거리를 한걸음에 냅다 달려 읍내 약방으로 달려갔다. 약방 아저씨는 내 손가락이 많이 덜렁 거리고 흑허게 뼈까지 비쳐보이자 덜렁거리는 손가락을 그냥 잘라내버리자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화급하게 말했다.

“우리 시째 손가락을 잘라부면 절~대 안되지라~. 손가락 잘라불면 안 손가락 병신 되불쟌소~. 일단 꿰메가꼬 붙여 봅시다. 야~”

어머니는 약방 주인아저씨를 겨우 설득해 손가락을 꿰메게했다. 마취도 없이 한빰 한빰 여러 방울을 꿰멜 때마다 나는 자지러지게 죽어라 소리를 질러댔다. 사실 마취제가 있긴 있었다. 그건은 바로 동네에서는 보기 힘든 과자 한 봉지였다. 나는 그 손가락을 꿰매는 내내 다른 한 손은 가자 봉지를 꼭 쥐고 있었다. 혹시라도 귀하디 귀한 그 과자 봉지를 놓칠세라~

어머니는 이후 내가 커서도 나를 볼 때마다 나의 손을 부여잡고는 제일 먼저 손가락을 보셨다.

“아수쿠~ 아가 손가락이 많이 아팠제~”

옆 마을 시골 갈전(칡밭)교회목사님 가정

우리보다 조금 큰 옆 마을 ‘갈전(칡밭)’의 ‘갈전교회’에 10여 년 전 한 목사님 가정이 새로 부임해 들어와 섬기고 계신다. 교회 앞에 텃밭에 채소를 손수 가꾸어 심고 손이 모자란 농번기에는 동네 주민들과 함께 모도 심고, 김도 메고, 가을 수확철에는 나락도 같이 베며 농촌 일을 도와주신다.

과거 우리네 형들이 다니던 ‘상갈리’ 국민학교가 없어진지 이미 오래다. 목사님은 아침에 차로 멀리 읍내까지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데려오신다. 우리 가족이 간혹 한국에 들어와 이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외국에서 봉사활동 하느라 수고 많다며 오히려 우리를 격려 주시고 기도해 주신다.

연로하신 큰어머니께서도 몇 년 전부터 아들인 사촌 동생의 전도를 통해 예수님을 믿고 지금은 이 교회를 다니신다. 사촌 동생은 먼 도시에 살면서도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주말에 차를 몰고와 이 시골교회로 모시고 다녔었다.

목사님은 매주일 자신의 차로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모시고 교회로 모시고 와서 함께 예배드리고 음식을 같이 나눈다.<계속>

안도현 | 아시아권 의료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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