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인 표현이나 문장은 아니었지만 선교의 중요한 원리를 포함한 경우가 있다. 오늘 그런 말을 들었다. 그것은 선교지에서의 오랜 과제 중 하나인 자립에 관한 것이다.
“먼저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이 한 문장안에는 현지교회의 자립에 대한 중요한 원리가 담겨 있다. 신학교 바로 옆에 있는 ‘러꺼뽀(탄남팁) 교회’ ‘차투’목회자의 말이다.
2020년 1월 26일 러꺼뽀(탄남팁)교회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교회 헌당식을 했다. 그 예배에도 참석을 하였고 원로목사를 통해 건축 과정의 내용을 일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히 알고 싶어서 ‘차투’목회자를 만났다. 그를 통하여 건축에 관하여 더 자세히 듣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이 꼭 들어야 할 방향을 듣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건축 과정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 후에 한 이야기가 나의 머리에 꽉 박힌다.
“먼저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은혜 안에는 교인들의 분에 넘치는 헌신이 있었다. 그것은 그는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한다고 표현하였다.
2020년 1월 헌당예배를 드릴 때 세례 교인이 94명이었다. 실제적으로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교인은 약 50여명이었다. 나머지는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였거나 비정기적으로 출석을 한다. 교회건축을 위하여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신실하게 참여한 교인들은 약 60여명이라고 한다. 전체 예산이 800만 받(26만 달러)인데, 교인들의 헌금은 650만 받이다. 헌신적인 교인들은 평균 거의 10만받(3300달러)을 했다. 이것은 노동력을 제외한 것이므로 노동력을 합산하면 더욱 커진다. 교인들은 태국 사회에서 서민층이나 하류층에 속한다. 부자가 없다. 7년 동안 평균적으로 1년치 수입을 한 것이다. 엄청난 헌신이다.
2013년 건축을 결정한 이후 2014년부터 2015년까지 200만 받을 모금했다. 이것을 기본으로 시작했지만 여러가지 해결해야 할 어려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지역은 국립공원지역이기 때문에 삼림청에서 특별 허가가 나와야 한다. 2016년에 산림청에서 허락을 받고 시작했다. 그렇지만 곧바로 재정적인 어려움이 찾아왔다. 산림청 책임자가 바뀌면서 중단하라고 통지가 왔던 것.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과정을 오히려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인도하셨다.
모아 놓은 재정은 다 쓰고 일부 외부지원을 받았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것을 그들은 ‘기적’이라고 부른다. 2016년부터 매년 2020년 1월 헌당하기까지 450만 받을 헌금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때 그들은 자신들을 보게됐다. 외부의 도움을 의지하거나 바라보기 전에 그들이 먼저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됐다.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계속 이 말을 강조했다.
이 표현을 한 두 번 한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매우 대조적인 건축을 설명하였다. 그가 속한 치앙마이 지방회의 가나안 회의실 건축에 관한 것이었다.
“그 건축은 시작부터 자신을 보지 않고 밖을 보았습니다.”
2012년경 치앙마이에 있는 한 한국 선교사는 치앙마이 지방회의 땅에 건축을 위해 모금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방회에서는 그 선교사의 약속을 믿고 건축하기로 결정했다. 건축을 끝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그 선교사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급하게 교단에서 융자를 받아 공사비를 처리했다. 스스로 헌금한 것이 거의 없었으므로 거의 전체를 융자받았다. 600만받(19만 달러) 정도인데, 현재까지 지방회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아직도 20% 정도 남았는데 매우 대조적이다. ‘러꺼뽀’교회를 위하여서는 100명도 안되는 교인들이 20만 달러 이상을 헌금했다. 그런데 지방회 회의실을 위해서 3천여 명의 지방회 교인들이 지금도 마무리 짓지 못하였다. 그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지도자들은 교인들이 스스로 보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우리 교회 건축은 우리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인으로 역할을 한 것입니다. 지방회 회의실 건축은 우리가 주인으로서 하지 못하였고 외부지원을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헌신을 통하여 스스로 건축한 ‘러꺼뽀’교회 건축에서 선교사의 역할은 미미했다.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보았고 헌신했기 때문이다. 반면 가나안 지방회 회의실 건축에서 선교사는 지원약속을 통하여 현지인들이 자신을 보지 못하게 된 결과를 가져왔다. 현재 그 회의실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 안에 사무실에 상근하는 직원도 없다. 건축내용도 부실하여 관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건축의 출발, 과정, 마무리와 사후 관리까지 돌아볼 내용들이 적지 않다.
스리랑카의 아지쓰 퍼르난도(Ajith Fernando) 라는 국제적으로 저명한 성경강사는 본인 아버지의 경험을 나누었다. 그의 아버지는 평신도 지도자로서 젊은 지도자들을 도전하여 미전도 지역에서 개척사역을 활발히 하도록 했다. 그런데 외부의 지원 단체로부터 외국후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 사역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외부단체의 지원이 교회개척 사역의 동력을 오히려 약화시킨 것이다. 지원을 선교 파트너십이 작동할 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차투’ 목회자는 선교학 공부를 해 본적이 없다. 그런데 그는 선교계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자립의 중요한 원리를 깨닫고 실천하고 있다. “우리 자신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라는 문장 속에 흐르고 있다. 한국 선교사들은 선교관련 공부를 많이 한다. 박사학위도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선교사들의 여러 사역의 현장은 ‘러꺼뽀’교회와 사뭇 다르다. 현지인 자신을 보기 보다는 선교사를 보는 것 같다.
모든 선교사들은 선교지에 교회가 자립하기를 갈망한다. 교회건물을 스스로 세우는 것을 원한다. 그런데 여전히 여러 곳의 한국 선교사들은 그들의 목표와 대조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그들 자신을 보게 하기보다는 선교사를 보게 한다. 이미 현지에는 그들 안에 주신 하나님의 자원을 보고 분에 넘치는 헌신을 하는 교회들이 적지 않다. ‘러꺼뽀’교회가 그런 대표적인 교회이다.
나에게 질문한다. 현지 교회들로 하여금 자신을 보게 하는가? 아니면 선교사를 보게 하는가? 내 자신이라고 해서 이런 질문에 대하여 자유롭지 않음을 안다. 좋은 의도로 지원하고 훌륭한 사역의 결과처럼 보인다고 해서 모두 건실한 결실로 종결되는 것이 아님이 엄연한 선교역사와 현실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을 먼저 보고 헌신을 실천하고 있는 ‘러꺼뽀’교회가 더욱 귀하고 자랑스럽다. 그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그 교회의 경험과 은혜를 배우고자 하는 선교사들은 얼마나 될까? 현지 교회로부터 겸손히 배우고 경청해야 할 때임을 다시 생각한다. [복음기도신문]
오영철 선교사 | 1995년 GMS 선교사로 태국에 파송된 뒤, 현지 신학교에서 학생과 목회자를위한 교수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곳에서 소수부족인 카렌족교회가 주민족인 타이족을 위한 선교적 교회를 세우는데 관심을 갖고 이들을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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