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12 사도 연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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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는 말
II. <대체신학 이슈와 초림 예수의 즉위 연구>에 대한 요약
III. 예수의 1차 즉위식과 12 사도
1. 예수의 1차 즉위식
2. 예수의 최초 제자들
3. 예수의 12 사도
  1) 파트타임 제자로 부르시고 풀타임 제자로 부르시기까지
 2) 풀타임 제자로 부르시고 12 사도로 임명하시기까지
 3) 예수의 12 사도 임명 의의
4) 예수의 두 번째 유월절과 12 사도
IV. 예수의 2차 즉위식과 12 사도
     1. 시몬 베드로의 고백
     2. 예수의 2차 즉위식
    3. 두 사도의 요청과 열 사도의 분개 사건

V. 예수의 3차 즉위식과 12 사도
VI. 나가는 말

       3) 예수의 열두 사도 임명 의의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열두 지파가 기초가 되어 형성되었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가 열두 사도를 기초하여 세워졌다(참조. 엡 2:20-22).[1] 예수께서 열두 사도를 세운 것은 구약의 열두 지파를 의식한 의도적 행위였음이 분명하다. 이 점에 대해 신현우의 설명을 들어 보자.

유대 문헌을 배경으로 볼 때, 열둘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지도자 역할을 위해 세워졌다고 볼 수 있다. 에스드라 1서 7:8은 열두 지파의 열두 지도자를 언급한다. 유대문헌(아브라함의 유언, 13:6;  유다의 유언 25:1-2; 베냐민 의 유언 10:7)은 열둘을 종말론적 역할과 연관 짓는다. 아브라함의 유언 13:6은 열두 지파가 만물의 심판을 담당한다고 한다. 유다의 유언 25:1-2는 열두 족장이 부활하여 열두 지파의 지도자들이 될 것이라고 한다. 베냐민의 유언 10:7도 열두 족장의 부활을 기대한다. 따라서 예수의 열두 제자도 종말에 회복되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지도자로서 역할하기로 기대된 자들로 볼 수 있다. 쿰란 공동체는 12명의 지도자를 세웠는데, 이것은 이 공동체가 자기들을 참 이스라엘로 간주한 것과 관련된다(1QS 8:1-2).[2] 이를 배경으로 볼 때 예수가 열두 제자를 세우심은 자기의 제자 집단을 참 이스라엘로 간주하려는 의도를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3]

그렇다면,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 공동체는 서로 어떤 관계인가? 개혁신학에 따르면,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 공동체는 서로 예언과 성취의 관계이다. 예수의 열두 사도 임명은 곧 그들을 통한 하나님의 새 백성의 재구성 사건이다.[4]

마이클 고힌(Michal W, Gohen)은 그의 책『교회의 소명-레슬리 뉴비긴의 선교적 교회론』에서 예수께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로 임명하신 사건에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뉴비긴이 보기에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 새로운 사회를 세우시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이스라엘을 그들의 소명으로 회복시키신다. 그분의 선교는 이스라엘을 향한 것이고, 그분은 참된 이스라엘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숫자로 열두 제자를 임명하신다….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모아지고 다시 새롭게 되고 보냄을 받는 참된 이스라엘에 통합된다. 그들은 감람나무에 접붙여진 줄기들과 같다.5)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세우셔서 그들이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갖게 하셨다(마 10:1; 막 3:14-15, 눅 6:17-18). 그런데, 예수의 축귀 사역은 사탄의 노예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해방하는 사역이다. 이는 하나님의 새 창조 사건으로서 마치 바로의 압제에서 히브리인들을 해방시켰던 것과 유사하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바로의 압제에서 히브리인들을 해방하셨던 것처럼, 이제 하나님은 예수를 통하여 사탄의 압제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해방하신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이러한 새로운 해방 사역에 참여하도록 세우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시어 하나님 백성의 모체로 삼으신 것처럼, 예수는 시몬과 열두 제자를 택하시어 하나님의 새 백성의 대표로 삼으신다.[6] 이필찬은 예수의 축귀 사역이 함의하고 있는 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축귀 사역은 곧 사탄 나라의 궤멸과 하나님 나라의 실존을 드러내는 증거다. 열두 제자에게 축귀 사역이 위임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실존적 증거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새로운 백성을 형성하는 결정적 정황을 보여준다. 사탄 나라의 궤멸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 이것이야말로 유대인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바벨론으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이요, 새 창조의 회복이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로 인간은 죄와 사망의 왕노릇에 의해 유린당해왔다. 유대인들에게는 억압의 상태가 바벨론 포로 상태로 드러난 것뿐이다. 이제 종말적 회복의 시대에 진정한 해방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었다.[7]

  4) 예수의 두 번째 유월절과 열두 사도

공관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 단 한 번의 유월절을 맞이하여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세 번의 유월절을 맞이하셨으며, 두 번째로 맞이하는 유월절이 가까워질 때 갈릴리에서 오병이어 사건을 일으키셨다(요 6:4). 사실, 열두 사도는 예수께 사람들을 마을과 촌으로 보내어 먹을 것을 얻게 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수중에 떡 두 개와 물고기 다섯 개가 있음을 확인하시고 그들을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셨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떡 다섯 개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도 그렇게 하셨다. 그리하여, 5 천명이 먹고 난 후에도 음식이 남았다. 예수께서는 그 남은 것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도록 하셨다(마 14:13-21; 막 6:30-44; 눅 9:10-17; 요 6:1-15). 그때 그들이 예수를 그들의 왕으로 삼고자 하였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을 피하셨다(요 6:15).

한편, 첫 번째로 맞이한 유월절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여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하셨다(요 2:19).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다(요 2:20). 이에 대해 요한복음 저자 요한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 2:22)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 본문의 ‘제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그들은 곧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곳인 요단강 건너편 마을 베다니로부터 예수의 첫 표적이 일어났던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를 거쳐 예루살렘까지 예수와 동행한 다섯 명으로 안드레, 요한, 시몬, 빌립, 나다나엘이었다. 그들 중에 안드레와 요한은 베다니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던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세례 요한으로부터 친히 요단강 건너편 마을 베다니에서 예수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소개받았다. 사실, 예수께서도 갈릴리에서 베다니로 가셔서 세례를 받으셨다. 그때 그의 1차 즉위식이 거행되고 40일 동안에 걸쳐 광야에서 금식하시며 기도하셨다. 금식 마지막 날에 세 번에 걸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시고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회복하셨다. 그 후에 예수께서는 베다니에서 이루어진 세례 요한과의 재회가 계기가 되어 자신의 다섯 제자를 만드셨다. 그때로부터 약 1년이 지나 두 번째로 맞이한 유월절에는 예수께서 그들로 대표되는 사도들을 데리고 오병이어 사건을 일으키셨다.

세 번째 유월절에는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하시는 가운데 성찬 예식을 제정하셨다. 이 성찬식에 대해서는 공관복음과 고린도전서에서 자세히 언급되지만(마 26:26-30; 막 14:22-26; 고전 11:23=25), 요한복음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두 번째 유월절이 가까울 때 일으키셨던 오병이어의 표적 사건을 기초로 하늘에서 온 생명의 떡에 대한 말씀을 가버나움 회당에서 아주 자세히 소개하시는데(요 6:22-59), 바로 이 말씀이 요한복음판 최후의 만찬이라고 일컬어진다.[8] 그런데,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다(요 6:66). 그러나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묻자(요 6:67), 시몬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인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라고 답하였다(요 6:68-69). 이는 곧 요한복음판 시몬 베드로의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의 고백을 받으시고,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라고 답하셨다(요 6:70). 그리고 요한복음 저자는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요 6:71)라고 설명한다. 이제 공관복음판 시몬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IV. 예수의 2차 즉위식과 12 사도

예수의 2차 즉위식은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의 세 제자 시몬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하늘로부터 온 모세와 엘리야가 참여한 가운데 예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선포하신 가운데 거행되었다.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어라”(마 17:5; 막 9:7; 눅 9:35; 벧후 1:17a). 훗날 사도 베드로는 그곳을 “거룩한 산”이라고 일컬었다(벧후 1:18). 또한, 그곳은 예수의 용모가 영광을 덧입고 그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그의 옷이 광채가 났던 관계로 변화 산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런데, 변화 산에서 거행되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2차 즉위식은 약 일주일 전에 일어났던 시몬 베드로의 고백하신 사건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께서 열두 사도 가운데 대표가 되는 시몬 베드로의 고백에 대하여 확증하시며 교회 설립에 대하여 약속의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 그 후에 예수의 3차 즉위식이 거행되기까지 여러 사건이 일어났지만, 두 사도의 욕심과 열 사도의 분개 사건 하나만을 다루고자 한다. 

1. 시몬 베드로의 고백과 예수의 교회 설립에 대한 약속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먼저 묻고 여러 답을 들으셨다(마 16:13-14). 또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다(마 16:15). 시몬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 고백하였다(마 16:16). 이에 대해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7-19).

예수께서는 시몬이 그의 신앙고백을 하게 된 연유가 혈육 때문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시몬이 예수를 처음으로 만났던 것은 그의 형제 안드레 덕분이었다. 그때 예수께서는 시몬에게 장차 “게바”라고 하겠다고 첫 번째 약속을 하셨다(요 1:42). ‘게바’는 아람어로 반석이라는 뜻이며, 헬라어로 “베드로”이다. “이 반석”(마 16:18)이 지칭하는 말이 무엇이냐에 대하여 세 가지 주장이 있다. ①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가톨릭교회의 모든 학자, 개신교의 Herman Ridderbos, F.F. Bruce, Robert Saucy 등) ② 예수 그리스도(개혁가 Martin Luther 등). ③ 예수에 대한 베드로의 신앙고백(개혁가 John Calvin 등).

① 항은 언어의 기본 법칙에 따른 해석이지만, ② 항과 ③ 항은 개혁자들이 당시 가톨릭교회의 교황권에 대항하기 위하여 언어의 기본 법칙을 무시한 신학적 주장이었다.[9] ① 항을 반박하기 위해 베드로, 즉 남성 명사 ‘페트로스’(Πέτρος)가 여성 명사 ‘페트라’(πέτρα)의 축소 명사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게바’라는 새 이름을 부여받게 된 시몬이 여성이 아니고 남성이기에 ‘페트라’(πέτρα)라는 말의 남성형인 ‘페트로스’ Πέτρος가 사용되었을 뿐이다. 헬라어에는 성의 구별로서 축소 명사가 형성되지 않는다.[10] 한편, ‘게바’라는 아람어 단어는 성 구별이 없다. 게바를 살려 번역하자면, “…너는 ‘게바’이다. 그리고(그래서) 내가 이 ‘게바’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가 된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반석)라”(마 16:18)라고 하시며 그와의 첫 약속을 성취하신 후 두 번째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 그것은 곧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라는 말씀이다.[11]

우리는 앞에서 예수께서 시몬에게 ‘게바’라는 첫 약속의 말씀을 주셨던 것은 곧 예수께서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과 일치시킨 사건으로 해석하였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사래를 아브라함과 사라로,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각각 그들의 이름을 바꾸어주셨던 것처럼, 예수께서도 시몬을 ‘게바’라 하겠다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또한, 우리는 그때 예수께서 염두에 두셨던 말씀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반석으로 삼아 이스라엘 백성을 세우셨다고 선언하시는 이사야 51장 1-2절이라고 해석하였다.[12]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시몬을 반석으로 자신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그렇게 세워진 교회가 곧 회복되는 이스라엘이요, 참 이스라엘이요, 새 이스라엘이라는 뜻이다. 이 점에 대해 이필찬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예수께서 메시아를 인식한 시몬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신 것은 곧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백성을 세우시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한 하나님의 남은 자이기도 하다. 이 교회는 곧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백성, 메시아 왕국의 백성이다. 이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취인 것이다.[13]

서론에서 자세히 밝혔듯이, 세대주의 신학에 기초한 교회 지도자들은 개혁/언약 신학을 대체 신학이라고 비판한다. 성경 예언 성취의 주인공은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의 혈통적 후손들로서 이스라엘인데,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운운하면서 이스라엘을 교회로 대체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마귀 역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필찬은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그 성취라고 주장하며,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서 그 자체로 완전했다면,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스라엘은 그러한 존재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구속 계획을 이루어가시는 과정 중에 종말적 성취의 순간을 기대하며 약속으로 주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교회에 의해 충족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구속 역사의 전체에서 보면 이스라엘 자체는 무엇인가 결핍된 상태에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목적은 교회 공동체에게 계승되고 지속되고 성취되고 충족된다고 할 수 있다.[14]

사실, 당시 베드로는 위와 같은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라고 말씀하신 후, 제자들에게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에 대하여 아직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경고하셨다(마 16:20). 그리고 그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처음으로 설명하였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 16:21)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했다(마 16:22). 그러나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하셨다(마 16:23). 그 후에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 16: 24-28). 

예수께서 그의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은 곧 약 1주일 후에 일어날 일, 즉 그가 하늘 영광을 덧입고 하늘로부터 내려온 모세와 엘리야를 맞이하신 변화산 사건이다. 그런데, 바로 이 변화산에서 예수의 2차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예수의 2차 즉위식에 대해서는 필자의 “대체신학 이슈와 초림 예수 즉위 연구”에서 다루어졌다(http://gnpnews.org/archives/86155).

2. 두 사도의 요청과 열 사도의 분개 사건(마 29:20-28; 막 10:35-4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자신이 직면하게 될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세 차례에 걸쳐 말씀하셨다(마 16:21). 처음에는 시몬 베드로의 고백을 받고 나신 후 그를 반석으로 하여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직후이었고(마 16:21), 두 번째는 갈릴리에 함께 모였을 때(마 22:21-22), 세 번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려 하실 때(마 20:17-19)였다. 그런데 예수께서 세 번째로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직면하게 될 고난과 죽음을 말씀하신 직후에 열 사도가 분개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또한, 변화산에서 진행된 예수의 2차 즉위식 때 하늘로부터 온 모세도 엘리야와 더불어 장차 예수께서 ‘별세(別世)’하실 것에 대해 말했다. ‘별세’는 헬라어로 ‘엑소도스’(Exodus)이다. 엑소도스라는 말은 모세와 그 백성의 출애굽을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되었다.[15] 모세는 자기 백성을 엑소도스하여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이 출세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였던 자였다. 바로 이 모세가 예수의 2차 즉위식에 등장하여 엘리야와 더불어 예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서 별세(엑소도스)하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한편,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 열두 사도 중에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들의 어머니랑 함께 예수께 나아 와 간청하였다. 그런데, 그 일로 인하여 나머지 열 사도가 크게 분개하였던 사건이 일어났다.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권좌에 오르실 터인데 그때 하나는 우편에 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나머지 열 사도가 그들에 대하여 분개하였던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그 둘과 똑같았고, 그들도 그 둘과 똑같은 권좌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그릇된 이해와 서로 더 높은 권좌에 오르고자 하는 욕심으로 다투고 있는 열두 제자에게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마 20:25-28; 막42-45). 그런데, ‘많은 사람’은 곧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혈통적인 후손들로 구성된 이스라엘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시작하여 아담의 모든 후손으로 확장된다. [복음기도신문]


[1]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열두 사도’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마가복음은 ‘열둘’이라고만 부른다. 한편, 요한복음은 열두 제자(6:67) 또는 열둘(6:70)이라 한다. 누가복음에는 6번, 사도행전에는 30회가 나온다.

[2] A. Y. Collins, Mark (Minneapolis: Fortress, 2007), 219.

[3] 신현우, “예수의 열두 제자 임명과 새 이스라엘 – 마가복음 3:13-19 주해”, 『신약 논단』. 제28권 제1호(2021년 봄), 78.

[4]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4), 251.

[5] Michael W. Gohen, 『교회의 소명-레슬리 뉴비긴의 선교적 교회론』, 이종헌 역, (서울: IVP, 2018), 80-81. 

[6] 신현우, “예수의 열두 제자 임명과 새 이스라엘 – 마가복음 3:13-19 주해”, 103.

[7]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254.

[8] 김세윤, 『요한복음 강해』, (서울: 두란노서원, 2011), 114.

[9] Robert Saucy, 『하나님이 계획하신 교회』 김기찬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4), 85.

[10] 영어나 아랍어 등에는 축소 명사가 있다. 영어 violin은 viola의 축소 명사이다. 그러나 세계 모든 언어에서 성의 구별만으로 축소 명사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확신이다.

[11] Herman Ridderbos, 『하나님 나라』, 오광만 역 (서울: 엠마오, 1988) 445-459 그리고 Robert Saucy, 『하나님이 계획하신 교회』 김기찬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4), 85. 그리고 F.F. Bruce, 『예수의 난해한 말씀들』 정명섭 역 (서울: 요단, 2000), 168-169를 참조하라.

[12 F.F. Bruce, 『예수의 난해한 말씀들』, 정명섭 역 (서울: 요단출판사, 1988) 168-169. 신현우, 90-91.

[13]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256.

[14]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256.

[15] D. A. Carson, Walter W. Wessell, & Walter L. Liefeld, Volume 8(Matthew, Mark, Luk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Grand Rapids: the Zondervan Corporation, 1984), 925.

정형남 | 아신대학교(ACTS) 선교대학원 교수 및 GMS 아랍권 선교사(천안장로교회 파송. since 1989). 그의 책으로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CLC, 2009)과 아랍권 및 이슬람권 선교와 관련된 여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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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풍요 속 악성 빈곤의 교육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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