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원, 정준영 선교사 부부를 만났다. 양 선교사는 한 사건을 떠올렸다. 선천성 질환으로 거동이 점점 불편해진 양 선교사는 치료차 고향인 제주도에서 1년여의 시간을 갖고 다시 사역현장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은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동료들은 사역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전처럼 사역할 수 없다는 사실이 와닿는 순간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10여 년 동안 주님이 맺혀주신 열매가 있었음에도 지금은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가야 했기에 주님의 뜻이 필요했다. ‘주님. 여기서 답을 주지 않으시면 저는 이 문밖을 나갈 수 없어요. 제가 선교사로서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간절한 기도에 주님이 알아듣도록 내면에 생생히 말씀해주셨다. ‘내가 너를 알고 불렀다.’ 그것이 다였지만, 평생 살아갈 충분한 답이 되었다. 이 대답이 자신을 붙들어 주는 힘이 됐다며 많은 이들에게도 이러한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는 이들 부부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너를 알고 불렀다”
– 어떻게 순회선교사가 되셨나요?
양동원(이하 양): “같은 교회에 다니던 주일학교 선생님이 선교사로 헌신한 이후 오랜만에 만나게 됐어요. 그분과의 만남이 순회선교단과의 만남으로 이어지게 됐네요. 그때가 20대 후반이었는데,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해외선교에 대한 마음도 있던 차였어요. 그분이 선교사로 헌신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주님께 삶을 다 드리고 순회선교사로 사는 게 어떠냐고 물었어요. 대수롭지 않게 ‘그러면 감사하죠.’라고 했는데, 얼마 후 연락이 왔어요. 왜 선교사 접수를 안했냐고요. 가게 된다면 대학도 졸업하고 충분히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결정하려고 했었는데 당황스러웠어요. 그때 그분을 통해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6개월 후에 부르신다면 그때 말씀하시겠지만, 만약 주님이 지금 부르신다면 순종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어요. 그때 기도하면서 말씀해 주시면 순종하겠다면서 말씀을 구했어요. 고린도후서 10장 5절이었어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다른 모든 것은 주님의 이름을 빙자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면,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복종하라는 이 말씀은 순회선교단으로 부르시는 주님께 대한 순종이라는 확신을 주셨어요. 그렇게 결정하고 선교단체에 들어오게 됐어요.”
정준영(이하 정): “고등학교 때 주님을 만나고 선교사가 되겠다고 헌신했어요. 막연히 아이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에 기독교교육학과를 들어갔어요. 대학교 3학년 때 설교할 기회가 생겨서 ‘죽어야 산다.’는 내용으로 설교를 했어요. 사실 그 당시에만 해도 저에게는 실제가 안 된 설교였어요. 신학생으로 살지만, 내가 한 말처럼 삶이 따라주지 않는 제 모습을 보았어요. 목회자 자녀로 살면서 목회자들의 현실도 보게 되고, ‘믿음의 삶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본질이신 하나님을 붙들고 싶었어요.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싶다는 목마름이 생겼고, 이대로 학교 다니면 안 되겠다 싶어서 휴학을 했어요. 이후 2002년에 선교한국 대회에 가게 됐는데, 그때 김용의 선교사님의 메시지를 처음 듣게 됐어요. 순회선교단 부스도 방문하면서 교제가 시작됐고, 선교사님들을 만나면서 선교사가 되고 싶어도 준비된 게 없어 선교사를 할 용기가 없는 저에게 준비가 아니라 오히려 다 비우고 오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선교사로 훈련만 시켜주신다면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선교사 훈련을 받았어요. 그때가 20대 초반이었네요.”
– 훈련 받으면서 어떠셨어요?
정: “2002년 처음 복음학교를 하면서 내가 왜 목마름이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됐어요. 거듭남이라는 단어조차 몰랐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말씀이 제 고백으로 다가왔죠. 내게 예수님과 함께 죽고 살았다는 이 거듭남이 없었구나 알게 됐어요. 낮은 자존감에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없었던 저를 십자가 앞에 세워주시는 시간이었어요. 선교사 훈련을 받으며 아프리카로 아웃리치를 가게 됐는데, 그곳에서 제가 이전에 꿈꿔 왔던 학교를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교의 현장을 봤어요. 그러나 주님은 그 자리에서 제가 꿈꿔 왔던 선교의 모습을 내려놓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이라는 더 근본적인 부르심을 보게 하셨어요.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실제 되는 1년의 시간을 허락하셨어요. 제가 미련을 두었던 관계, 가족, 사역, 교육, 미래 모든 영역에서 복음이 아니면 소망이 없음을 철저히 보게 하셨고, 순회선교단에 전 삶을 드리게 하셨죠.”
“복음 아니면 소망없다”… 선교사 헌신
– 순회선교단에 들어오고 나서는 어떤 시간을 보내셨어요?
양: “2004년에 단체에 들어왔는데, 들어와 보니 선교사님들이 돌아가며 금식을 하고 있었어요. 센터 이전을 놓고 새로운 장소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더군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기도하며 그해 12월에 인천에 신도라는 섬으로 이사를 가게 됐어요. 그때 행정팀으로 배치를 받았어요. 새로 이사 들어간 곳이 폐교였기 때문에 공사도 많았어요. 저의 주된 업무는 전화 업무와 운전 그리고 보조로 시설을 돌아보는 일이었어요. 당시만해도 6개월마다 사역을 재배치한다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행정팀에서 이런 일을 평생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건 내가 바라고 기대했던 선교사의 삶이 아니었어요. 그 때문에 내면의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다 선교사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있었어요.”
– 그게 뭐였죠?
양: “전화 받고, 공사하고, 운전으로 섬기는 1년의 훈련기간 동안 제가 할 줄 아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한마디로 무능력자인 셈이죠. 그렇게 1년의 선교사 훈련을 마치면서 훈련 사역팀으로 배치를 받았는데, 그때 여러 잔일들과 공사 보조만 했던 1년의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어요. 훈련 사역의 경험도 전무한 제가 훈련 사역의 책임을 맡는 상황이 되면서, 그동안 주님이 저에게 한 가지 준비를 시켜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주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 ‘순종’할 준비였어요. 어차피 능력이 없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해주신 것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다, 없다. 내가 익숙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다. 모르기 때문에 못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저 주님이 하실 수 있게 순종하는 게 제 몫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어요.”
– 순종할 수 있는 준비를 시켜주셨다는 것을 좀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양: “순종이 무엇인지 배우는 시간이 또 있었어요. 어느 큰 집회에서 몸으로 워십을 하게 됐는데, 제가 아무리 연습을 해도 워십이 안 되는 사람이거든요. 어떻게 해도 동작이 다 외워지지가 않아서 잠을 자려고 누워서도, 화장실에서도 동작을 생각하고 연습했어요. 결국 집회 당일까지도 안됐죠. 그때 김용의 선교사님이 집회 메시지를 섬기셨는데, 강대상 옆에서 보니 3000명 정도가 예배당 계단까지 꽉 차게 앉아 있었어요. 메시지 중간에 워십을 하게 됐죠. 워십을 하는 동안 메시지에서 받았던 은혜와 함께 하나님께 몸으로 예배하고 싶은 마음에 눈을 감고 율동을 했어요. 물론 뒤로 빠져야 하는데 빠지지 못하고 어떨 땐 반박자 늦게 돌기도 하면서 우스꽝스럽게 끝났죠. 진땀나고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지만, 큰 깨달음이 왔어요. 하나님은 나의 좋은 모습, 내가 잘하는 것만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게 아니라 내 모습 전부, 나의 전 존재로 높임을 받으시길 원하신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러니 주님이 받으실 만한 것을 취사선택해서 드리는 게 아니었어요. 내 연약함까지도 사용하셔서 주님이 일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이 두 사건을 통해서 선교사로서 살아가야 할 중요한 가치를 배우게 됐어요.”
연약함까지도 사용하시는 주님 만나
– 정 선교사님은 선교단체의 삶이 어떠셨어요?
정: “20대 초반에 들어와 공동체 삶을 살다 보니, 밥 하나, 반찬 하나도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섬으로 들어가 목회를 하셨기 때문에 그때부터 혼자 지내며 챙겨 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죠. 그래서 주방에서 식사를 섬기는 게 참 어려웠어요. 많은 음식을 먹어 보거나, 잘 차려진 음식을 먹어본 것도 아니고, 후식으로 과일 먹는 것도 흔치 않았기 때문에 사과 하나 깎는 것도 서툴렀어요. 나름 한다고 하는데도 잘 안 되다 보니 온몸으로 뛰어들지 못했던 거 같아요. 그런 시간을 지나며 못 섬기는 나를 인정하게 하시고, 실수를 통해 잘하는 모습만 드러내고 싶었던 내 모습을 드러나게 해주셨어요. 실수하면 ‘실수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잘 못하는데요, 가르쳐주세요. 주님 의지하며 하겠습니다.’ 하면 되는데도, 실수할까봐 두려워서 주저앉으려고 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어려웠어요.”
– 연약함을 직면하시는 시간이었군요. 이후엔 어떠셨어요?
정: “선교사로 헌신하고 복음팀과 기도24·365본부를 섬기면서 주님이 저를 복음과 기도로 세우시는 시간이 가장 큰 은혜였던 것 같아요. 익숙한 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매순간 주님의 생명으로 인도해 주셨는데, 거기가 기도의 자리였어요. 내게 원래 담아 두신 원형의 생명을 보는 것 같은 기쁨이 있었어요. 항상 낮은 자존감에 움츠러들었고, ‘나는 여기까지야.’ 생각하며 날개를 펼치지 못했었는데, 기도의 자리에서 말씀이 살아 움직인다는 게 뭔지 알게 하시고, 더 깊은 은혜의 바다로 나가게 하셨던 것 같아요. 그 이후에 결혼을 통해 사랑에 대한 오해나, 어그러졌던 정서들을 회복시켜주셨어요. 내가 온전히 용납 받고 있구나 깨달으면서, 그리스도가 신부된 나를 용납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품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누리게 됐어요.”
– 사역과 결혼, 모든 영역을 통해서 회복하시고 하나님을 누리게 하셨네요.
정: “네, 엄마가 되면서 아이들에게 음식을 해주면서 모든 것이 사랑이면 가능하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됐어요. 우리 아이들은 내가 해준 음식만 먹고 자랐으니까 제 음식이 최고라고 해요. 잘 하고, 못 하는 것이 아니었죠.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을 뛰어넘게 해주시는 시간 됐어요. 그렇게 순회선교단 지부를 섬기면서도 동역자 모임을 위해 음식을 준비할 때도 감사하게 섬길 수 있었어요. 지금도 다른 부분보다는 일단 함께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잘 듣고, 마음을 함께하면서, 영혼을 섬긴다는 것이 뭔지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아요. 주님이 이런 시간을 통해 연합과 섬김을 할 수 있는 선교사로, 영혼을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세워가셨던 것 같네요.”
<이상 254호에 게재>
– 두 분 모두 겸손하게 솔직하게 각자의 연약함을 나눠주시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양: “이런 우리의 연약한 모습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주님이 말씀하실 때 순종 못했을 수도 있겠네요. 주님을 붙들 수 있었던 것도 연약함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아니라 남과 다른 특별함이나 세상적인 화려함을 가지고 있었다면, 주님 말씀하실 때 듣지도 않았겠죠. 연약함이 오히려 진짜 기뻐할 이유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고, 주님을 붙들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고 있다는 게 복이 아닌가 싶어요.”
정: “우리 둘 다 일찍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어요. 우리 아이들을 복음으로 가르치고 싶은데, 어린 시걸 부모님에게서 받았던 모습대로 익숙하게 반응이 나왔어요. 품어주고 연합하면서 복음의 온전한 사랑으로 가르치고 싶은데, 그게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나오지 않아서 많은 씨름이 있었어요. 가정에서도 믿음을 적용하고 익숙한 대로 하지 않고, 매순간 주님께 물으면서 십자가로 가지 않으면, 내 본성이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혹독한 시간을 지나면서, 남편도 아프기 시작하고, 저와 아이들도 모두 몸이 약해지면서 주님이 마음을 낮추시고, 더욱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세워가셨어요. 하루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더 가난해야 합당하게 설 수 있냐고 생각하면서 기도했는데, 남편이 ‘어디까지 낮아져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바닥에 있던 존재’라고 말해주더군요. 원하는 모양과 그림이 있을 때는 여유가 없었어요. 그러나 잃어보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큼도 감사한지 알게 되죠. 건강을 잃어보니,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감사하게 되니까, 품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난한 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건강 잃어보니 옆에만 있어도 감사”
– 지금 건강은 어떤 상태이신가요?
양: “저는 유전성 강직성 하반신마비라는, 시간이 지날수록 운동기능을 잃어버리는 병이에요. 아내는 하시모토 갑상선이에요. 갑상선 항진과 저하가 함께 있는 병이죠. 그러나 육체의 연약한 시간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돌보고 계시는지,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사람의 도움보다 더 실제적으로 돕는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고 있어요. 이전에도 주님 없이 살 수 없다고 고백을 많이 했는데요, 지금의 고백은 그때와는 또 다른 거 같아요. 주님 없이 살 수 없고, 주님 떠나 살 수 없어요. 지금 그렇게 돌봐주고 계시니까요. 다 표현할 수 없지만, 병이 이 고백을 가능하게 했고, 또 몇 년 전에 있었던 교통사고의 시간들을 통해서도 이 고백을 더 가능하게 하셨어요.”
–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양: “최근에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여러 훈련학교들을 섬기면서 십자가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고 있어요. 십자가 떠나면 나는 언제나 넘어질 수밖에 없고, 어제 잘 살았다 해도 십자가 떠나면 언제든지 역증인의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게 ‘나’라는 걸 인정하게 됐어요. 이전에는 내가 믿음으로 어떤 영역에서 십자가 앞에 서서 어떤 부분을 돌파해 내야한다는 게 익숙하게 드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증인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온 세상의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한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가 ‘나’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언제나 필요한 게 십자가가 되죠. 돌파를 위해 필요한 게 아니라, 물고기에겐 물이 필요하듯이 죄인이기 때문에 십자가가 필요한 것이죠.”
– 그렇죠. 십자가는 죄인에게 필요한 거죠.
양: “한 때 옳고 그름 때문에 스스로 힘들어했던 적이 있었어요.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해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면서 힘들었는데, 이제 삶의 원리에 대해 정답을 찾은 것 같아요. 모든 문제의 핵심은 내가 오늘 십자가 앞에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언제든 높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존재적 죄인이기 때문에, 제가 약한 게 안전장치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주님이 원하시는 건, 주님 없으면 살 수 없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가 십자가 복음과 말씀과 기도만 온전히 붙들어도 모든 영역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속히 임하겠다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성경을 소지하기만 해도 불법이 되는 세상이 올 때, 그때를 위해 코로나 상황과 같은 지금의 시간을 허락하신 게 아닐까도 생각해요. 기도의 골방이 회복되고 오직 말씀으로 살아가는 삶, 말씀을 읽고, 필사하고,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계속 주님을 붙들고, 매일 십자가 앞에 서는 게 믿음을 준비시키시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 끝으로 기도제목 나눠주세요.
양: “몸이 아프고 불편한 것이 저에겐 주님을 의지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이에요. 갈수록 서서히 몸이 안 좋아지기 때문에 가족들에게는 한편 미안한 마음이지만, 몸이 계속 이 모습 이대로여도 좋겠다고 주님께 고백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위해 세번 간절히 기도한 것처럼, 간절히 구하려 합니다. 주님 맡겨주신 부분을 감당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몸으로 붙들어주시고, 마음만큼은 주님 앞에 강건한 자로 설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정: “매일기도학교를 섬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가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무릎 꿇는 한 사람만 있어도 하나님의 일을 기도하는 사람에게 알려주실 텐데, 내가 그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와 같은 엄마들이 다음세대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생명의 통로들인데, 나를 비롯해 많은 크리스천 엄마들이 기도하는 엄마들로 주님께 드려지도록 기도해주세요. 기도 안에서 모든 문제들이 응답을 받고, 기도로 시대를 분별하고 다음세대를 하나님의 사람들로 세워가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이되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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