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국 칼럼] ‘하나님의 선을 행하는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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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들이여, 육신의 주인에게 순종하기를 두려움과 떨림과 성실한 마음으로 주께 하듯 하십시오. 사람을 즐겁게 하는 사람들처럼 눈가림만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성실히 섬기되 주를 섬기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마십시오. 이는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든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면 주께로부터 다시 이것을 받을 줄 알기 때문입니다. (엡 6:5~8, 우리말성경)

종이 종처럼 사는 것을 종은 과연 기뻐할 수 있는가?

대다수 현대사회 사람들의 인식은 ‘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현대사회는 ‘세속적 인본주의 교육’으로 말미암은 ‘개인주의’라는 깊은 바다 속에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철저히 개인주의를 위해 존재하는 공교육의 열매들이 지금 현대사회 속에서 이 사회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종’이라는 단어는 금기시하는 시대속에 우리가 산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 뿐만 아니라 모든 삶에 있어서 ‘종’의 마음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주인은 오직 한 분 ‘주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종’이 되기를 자처하며 그것으로 종의 신분을 확증 받는다. 내가 종으로 사는 것이 싫은 것은 아직 ‘종의 자유’를 얻지 못한 것이다. ‘십자가 복음’으로 다시 얻게 된 생명은 모든 삶에 있어서 ‘종의 자유’를 누리게 하시는 시작이지만 이것을 누려 보지 못한 것이다.

세상은 ‘종’이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

세상은 항상 모든일에 있어서 ‘으뜸’이 되라고 말한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는 적대적이다. 세상에서 으뜸이 되어야 하는 것을 주님은 이렇게 가르치셨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4)

즉, 주님의 가르침에서 으뜸이 되는 자리에 서는 방법은 세상과 정반대로 ‘종’의 자리에 서는 것이다.

이러하듯이 ‘종’이 종 다워야 하는데 지금 대다수 종과 상전의 상황은 ‘종이 상전’이 되어 버린 것 같은 상황들이 만연하고 있다. 물론 권위적인 관계가 이러한 변화를 통하여 좀더 인격적인 관계 개선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궁긍적으로 종이 종 다울 때 회사는 질서있게 세워져 가게 될 것이다. 종의 인권이 무너졌거나, 권리를 강탈 당했다면 마땅히 종의 권리와 인격을 회복해야 하지만 그 이상을 바라는 마음은 월권이며 종 다운 모습이 아니다. 종의 욕심일 뿐이다.

이러한 ‘세상의 가치’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은 경제상업영역의 ‘종’들에게 부여 되어 있다.

비즈니스영역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종’다운 삶을 살아냄으로 인하여 세상에 ‘빛’을 드러낼 수 있다. 세상의 가치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은 용기와 결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상황이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비즈니스 영역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편에 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기 바라며 기도한다.

그리스도인 종이 종 답게 생활하는 것은 ‘육체의 상전에게 두려움을 갖고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는 것’이며 아래의 세가지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마음으로 일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종’

‘사람을 즐겁게 하는 사람들처럼 눈가림만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엡 6:6)

나는 일을 할때 ‘눈 가림’만 하는 사람들을 볼 때가 종종 있다. 윗사람의 눈에 나지 않도록 처신하는 사람이다. 또 모든 일을 감사함이 아닌 해야하는 당위성에서 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눈가림’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회사를 운영하며 지나온 세월 속에서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들에겐 종의 참된 자유는 너무 멀리 있는 이상이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말하지만 그들은 육체의 상전에게 하는 순종이 곧 그리스도께 하는 순종임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모두의 상전이 ‘주님’이시라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 처신이다. 이들은 처세술에 능통하나 종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다.

‘성실히 주를 섬기듯 일하는 종’

‘성실히 섬기되 주를 섬기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마십시오’ (엡 6:7)

회사에서는 성실한 사람과 성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구분되어진다. 이런 부류는 세상말로 ‘시간 때우는 사람’이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때에 따라 주를 섬기는가?’ 아니면 내게 허락하신 모든 시간 속에서 ‘주를 섬기는가?’에 대한 질문에 종들은 반드시 답을 해야한다. 종의 답은 후자여야 한다. 내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어진 이 하루는 온 종일 주를 섬길수 있는 시간을 주신것으로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이 성실히 주를 섬기듯 일하는 그리스도인이다. 이 기쁨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와서 시간만 때우다 돌아갈 뿐이며 그러한 인생에 ‘그리스도를 섬기는 진정한 기쁨’은 없다.

‘선을 행하는 종’

이는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든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면 주께로부터 다시 이것을 받을 줄 알기 때문입니다. (엡 6:8)

종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종은 ‘선’을 행할 수도 아닐수도 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선’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을 의미한다. 세상에 있지만 종은 그가 하나님의 선을 행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자유의지’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을 행함에는 대가지불이 따를 수 있다.

예를 들면, 술자리 회식에 불참하는 것으로서 받아야 할 사내에서의 ‘왕따’ 되기를 선택하는 것이며, 직장안에서 어떠한 유혹과 강압적인 상황이 찾아와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별되는 선택’을 서슴치 않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반드시 ‘회사에서 퇴출’되거나 사람들에게서 구분되는 ‘핍박’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선뜻 이 길을 선택하지 않고 ‘타협하거나 눈 한번 질끈 감아 버리는 악순환의 연속’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수하다.

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먼저 천국으로 떠난 형제이다. 그가 죽기 직전 내게 해준 이야기는 자신이 후회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회사 상사가 권유 했던 가짜 프로젝트에 대한 부분이었다. 실제로는 수십억 짜리 프로젝트였는데 상사의 진급을 위해서 수백억짜리 프로젝트인 것처럼 부풀려야 하는 중심에 자신의 선택을 두고 나누어준 이야기다.

형제는 이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어 교회 담임목자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때 목자는 세상의 권세자들에게도 순종해야할 것을 말씀하셔서 그도 그 말씀에 순종해서 수백억짜리 가짜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고 했다. 그리고 형제는 죽기 직전까지 이 일에 대한 후회를 나와의 교제 속에서 전했다. 그 때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마음 안에서도 분명하게 다짐했던 것은 ‘하나님의 선을 행하기 위해 악을 버려야’한다는 결론이었다.

물론 이 일이 물리적으로 내게 주어질 피해를 생각한다는 것은 죽음과 같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의 결과적 책임은 그 누구가 아닌 ‘본인’에게 있다는 것을 친구는 뒤늦게 깨달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내게 나누어 준 것이다.

만약 내게도 이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나 또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은 ‘선을 행해야 한다’는 진리는 분명하다. 이 진리를 선택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편에 선 그리스도인이다. 결과적으로 상사의 뜻을 거부하고 회사를 그만 둔다하여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을 행한 친구의 삶을 하나님은 당신이 친히 먹이시고 인도하여 주셨을 것이다.

마지막 선을 행하는 종, 나는 비즈니스 영역안에서 어떤 선을 행하고 있는가 생각한다. 하나님의 선인가? 아니면 세상이 말하는 선을 행하는 사람인가? 비즈니스 영역 안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 기록된 ‘종’에 대한 본문을 깊히 숙고하여 삶으로 드러내야 할 책임과 권리가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 다운 삶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간다.

그것은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 내가 섬기는 이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드러내는 행함으로 말미암아 내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그리고 내가 그분의 종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축복의 기회를 모든 경제상업영역의 그리스도인들이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선택으로 주님을 높일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선택을 거침없이 해야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경제상업영역의 그리스도인은 그런 선을 행하는 사람들이 계속하여 더욱 많아지기를 기도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슥 8:23)

다시 오실 주님의 그 날까지 우리는 이 영역 속에서 ‘하나님의 선’을 행하며 ‘구별된 성도의 삶’을 함께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복음기도신문]

조상국 | 1997년부터 ‘mission’이라는 의류 유통업을 운영해 오고 있다. 2017년에는 oikonomos mission 단체를 설립하고 비즈니스 영역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청지기’를 세우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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