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거나 복음과 타협하지 않는 한, 바울은 그의 서신을 받는 사람들의 환경에 자신을 맞추려고 했다. 우리가 지난 글에서 보았듯이 이 사실은 유대인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와 똑같은 희생적인 마음을 이방인들에게도 보여주었다. 바로 복음을 위해서 말이다.
고린도전서 9장 21절로 돌아가보자.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율법 없는 자”는 이방인을 말한다. 바울이 사용한 수식어에 주목하라. 그는 명확하게 진술하기를 그가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라고 했다. 그는 참된 의를 멸시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도덕적으로 율법 없는 자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분명히 아니었다.
그가 의식이나 제사의 측면에서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었지만, 그는 부도덕하게 생활하거나 악하게 행하지 않았다. 그는 도덕률 폐기론자들(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율법이 철폐되었다고 믿었음)에게 절대로 동의하지 않았다. “율법 없는 자”라는 말은 도덕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그가 이방인들이 그를 존경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살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세상적인 삶의 방식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그는 구약 성경의 제사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이방인들에게 사역할 때 그는 도덕과는 관계 없는 유대인의 모든 관습들을 버렸다. 이방인들과 함께 있을 때, 그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율법과 충돌하지 않는 한 이방인의 관습과 문화를 따랐다. 그는 이방인들을 불필요하게 모독하는 것을 피했다.
예를 들어, 바울이 예루살렘에 있었을 때, 그는 유대인의 종교 관습을 따랐다. 그는 축일과 안식일을 지켰으며, 유대인의 식사 규정도 지켰다. 그러나 그가 안디옥에 있었을 때, 그는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했다. 그것이 그 자신이 받은 전통과 교육을 어기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베드로가 안디옥에 왔을 때, 그 또한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했다. 그런데 그때 할례자들이 나타났고, 베드로와 그와 함께 있던 사람 몇 명이 그 자리를 떠나 물러났다(갈 2:12). 바울은 말하기를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13절) 그 때 바울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베드로를 책망했다.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한 이유를 살펴보자.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14절) 바울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모든 것이 된 이유는 복음이 그들에게 은밀하게 스며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와 정반대로, 그는 사람들에 대하여 어떤 개인적인 모욕을 피함으로써 오직 복음이 주는 모욕(공격)만이 있게 했다. 바울은 베드로의 타협적인 행위가 복음의 명확성과 영향력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를 책망한 것이었다. [복음기도신문]
존 맥아더 John MacArthur |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 교회 담임목사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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