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동 ‘토브 말씀의 터’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교회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관심’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관심이 온통 주님이기를 원하십니다. 살아갈 때 관심사가 생깁니다. 세상의 많은 것이 마음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때 분별할 기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별의 기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중산동 교회를 하나님의 요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엔 잘 분별하지 못했지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의미를 선명하게 경험했습니다.
중산동 교회 바로 옆에 있는 교회 목사님이 이사한 새 교회로 찾아오셔서 교제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우리 교회가 눈치를 주지 않아서 고마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같은 교단이면 일정 거리 안에서 새로 교회를 세울 수 없는 규정이 있는데, 그 교회가 이전해 올 때 우리 교회가 허락해줘서 고마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느냐고, 저는 오히려 친구 목사님이 되어 주셔서 더 고마웠다고 답해 드렸습니다.
그때 그리스도의 몸을 주님이 세우신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입니다. 교회를 세운다는 말은 교회를 회복시킨다는 뜻입니다. 우리 교회와 옆 교회가 이전하기 전, 두 교회는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교회의 회복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교회가 평화로 마침표 찍는 것도 허락하셨습니다.
교회를 세운다는 말은 교회의 회복이다
주님께서 지난 몇 년간 우리 교회를 하나님의 요새로 숨겨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토브 말씀의 터에서는 교회를 드러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드러나기에는 준비가 안된 것 같은데 주님께서는 드러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이끌어가는 가치와 힘이 있습니다. ‘이것이 있어야 당당하고, 이것이 있어야 힘이 되고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세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의 손길 중에 무엇이 드러나기를 원하실까요? 교회를 드러내시겠다는 말씀은 우리 삶을 통해 예수님이 드러나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 광야에서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아론과 훌이 산 위에서 모세의 기도를 돕습니다. 여호수아가 싸우고 있고 모세가 기도하는데, 모세의 손이 하늘로 올라가면 이기고 내려가면 집니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칼로 전쟁을 이긴 것이 아니라 모세의 손을 통해 이긴 것입니다. 기도의 손이 이깁니다. 세상의 칼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의지가 이깁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이 실재라는 것 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왕하 2:1)
세상을 이끌어가는 힘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힘이라는 것을 알려면 하나님의 움직임에 민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움직임에 민감해질수록 ‘하나님이 인도하시는구나, 하나님이 이것을 하시고자 하는구나’ 하는 것이 더욱 실감납니다. 느낌이나 감정 따라가지 않고 진리로 결론 내리기 때문에 언약이 주어지면 눈치 보지 않고 말씀이 이끌어가는 길로 따라가게 됩니다.
16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16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감한 사람 오십 명이 있으니 청하건대 그들이 가서 당신의 주인을 찾게 하소서 염려하건대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 가 이르되 보내지 말라 하나 (왕하 2:15-16)
하나님의 움직임에 민감해야 말씀의 힘을 안다
엘리사와 엘리사의 제자들이 목격했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에 의해 들림 받았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옷 조각을 취하여 하나님의 능력도 드러냅니다. 제자들은 그때 엘리사를 주목합니다. 그리고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엘리사에게, 당신의 주인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들고 가다 혹시 떨어뜨렸을지도 모르니 가서 50명의 정예부대를 데리고 찾아보자고 말합니다. 엘리사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들림 받은 이후에는 엉뚱한 이야기를 합니다. 제자들이 의심하는구나, 믿음이 작구나,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를 말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압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창조주라는 사실도 압니다. 그런데 그 하늘의 역사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마음이 대부분입니다. 우리 관심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믿지만, 관심은 이 땅에 있는 것입니다. 이 신앙을 경계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실제로 만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70명이 전도할 때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어둠의 세력이 떠나갔습니다.(눅 10장) 70명의 제자들은 기뻐했습니다. 예수님께 돌아와 자기들이 가는 곳마다 귀신들이 항복한다며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귀신이 떠나가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관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전을 건축하면서도 마음을 주님께 드리려고 애썼습니다. 주님께서 드라마처럼 이끌어가셨습니다. 그렇기에 기쁜 제 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마음이 흐뭇해지는 것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히 압니다. 이 땅에 마음 두고, 이 땅에 마음 빼앗기면 저는 죽습니다. 내 생명은 하늘에 있습니다. 내 존재의 의미는 하늘에 있습니다. 저는 이 성전 건물에 마음 빼앗기지 않습니다. 기쁨의 근거, 기쁨의 이유는 오직 주님입니다. 주님을 노래하지만 기쁨의 근거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결코 주님을 노래하는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기삐하는, 기쁨의 근거가 바뀌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의 칼로 세상을 이긴 것이 아니라 모세의 손으로 이긴 것처럼 세상의 힘 가운데 살면서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야 합니다.
무리가 그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그들이 오십 명을 보냈더니 사흘 동안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왕하 2:17)
무리가 강청했습니다. 엘리사가 부끄러워할 정도로 강청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보내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승천하는 것을 직접 봤지만, 제자들이 혹시 엘리야가 떨어졌을지도 모르니 찾아보자고 강청하자 그것을 승낙했습니다. 두려울 정도로 실감나는 말씀입니다. 오직 주님이 길이라는 것을 아는데, 부끄러워질 정도로 무리가 강청하면 변할 수 있는 존재가 저의 실존이기 때문입니다.
“힘들어도 주님의 뜻이야. 어려워도 주님의 뜻이야. 고통스러워도 주님의 뜻이지.” 이렇게 말은 하지만 주변에서 다른 말이 들립니다.
“그래도 이것은 한번 해봐! 이건 시도해 봐야지! 그 사람은 한 번 만나보는 게 좋지 않아?” 주변에서 이렇게 계속 말하면 결국 그 말에 넘어갑니다.
“아니, 꼭 그렇게만 믿어야 돼요? 이 사람은 만나봐야죠! 이렇게는 한번 해봐야지요!” 저를 숱하게 넘어지게 했던 말들입니다. 가슴을 치며 후회하게 했던 말들입니다.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6-17)
세상의 가치로부터 탈출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복음입니다. 복음만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기쁨의 근거가 바뀌어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분위기 가운데 자라 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도 주님을 바라봐야 한다
성전 건축 막바지에 이르니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계획대로 안되면 불편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주님 앞에서 불편함의 근거를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일정이 틀어지면, 준공이 안 되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습니다. 다시 기도했습니다.
‘모든 일정이 어그러져서 저 교회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나 봐’ 그런 소리를 듣는다 해도, 제 믿음은 흔들릴 수 없습니다! 주님, 저는 그때에도 주님만을 신뢰합니다!
자녀가 명문대 가면 자랑스럽고, 그렇지 않으면 아닙니까? 사업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낙망합니까? 안 되고 망하는 그때에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관심, 내 마음이 바라보는 것, 내 마음에 담고 싶은 것, 내 마음이 가고자 하는 곳, 내 마음을 두고자 하는 곳!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무 희망이 없고 붙잡을 끈 하나 없을 때에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주님 바라봐야 합니다. 바로 그때 그 일은 주님의 일이 되고 그 문제는 주님의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십니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협력해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일상에서 그 주님의 일하심을 보며 마음에서 1등 되신 주님을 노래하는 순종의 전문가가 되어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복음기도신문]
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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