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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인도차이나 통신] 한 선교사 부부의 이야기

ⓒ 오후경

서남아시아 지역을 섬기고 있는 한 선교사 부부를 만났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지금 아름다운 들꽃 향기를 물씬 피우는 한 인생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 다음은 본인의 고백을 1인칭으로 소개한다.  

80년 광주사태를 경험하며 사회정의 눈 떠 

나는 1970년, 가부장 분위기의 질서있는 집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부모님 말씀 잘 들었다. 부모님이 농사일도 마치고 집에 돌아오시면 시장하실 것을 염려하여 먼저 뛰어들어와 저녁 준비하여 부모와 형제를 챙기던 착한 딸이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잠자던 형제들 깨워서 훈시하시고 다른 형제들은 슬슬 자리를 피해도 아버지가 말씀하시다가 잠드실 때 까지 무릎꿇고 꼼짝 않던 딸이었다. 공부도 곧잘 하고 부모님 일을 도울 뿐 아니라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챙기다 보니 부모님의 전적인 신뢰를 얻던 딸이었다. 

그런 내 삶에 1980년대 광주사태에서 총알이 난무하고 주위에서 시체도 보고 최루탄 냄새, 깨어진 도로를 보는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됐다. 그런 환경 속에서 대학교 의대에 들어갔으나, 공부보다는 사회정의와 인권 노동 운동에 빠졌다.

친구, 선후배는 남녀가 아니라 운동권 동지들이었을 뿐이고 사랑이나 우정보다도 동지애를 느끼며 술, 담배에 쩔어 살았다. 졸업 후 서울 근교 큰 도시의 공장에 들어가 노동 인권 운동하던 때, 직장 내에 돈 도난 사고가 발생하고 그 의혹의 피의자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나름 의로운 삶과 숭고한 뜻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좀도둑, 파렴치범으로 오해받고 오해를 풀 수 없는 가운데 이상하게 바라보는 눈길의 중심에 있으니 죽음으로라도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 마음을 품고 새벽 시간 인천 월미도 안개 자욱한 제방을 거닐며 내려갈 곳을 찾고 있을 때, 한 군인을 보았다. 무심한 듯 그 군인 옆을 지나가며 곁눈질로 유심히 바라봤다. 축대에 걸쳐 눈물 흘리며 쪼그리고 앉은 그 남자. 그 남자는 무슨 사연이 있기에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남자가 찌질하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극단적 선택하러 그 시간, 그 장소에 나온 자기와 같이 극단적 선택 실행에 앞서 인생을 생각하는 ‘젊은 베르테르’라고 직감했다. 찌질한 것이 아니라, 불쌍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며 결국 나 역시 불쌍하고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이 퍼뜩 들었다. 고결한 척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멍청하고 깨워야 할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내가 바로 ‘죽음을 도피처로 생각하는 세상에서 제일 나약한 패배자의 모습’이 깨달아졌다.

깨달아지긴 했지만 실제로는 억울함을 풀 길도 없었다. 그것 외에 인생에는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을 아는데 인생길의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능력이 없는 초라한 자신을 또 발견했다. 어떻게 하든 인생 패배자로 마치지는 않으리라는 결심하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노동운동 현장에서 좀도둑으로 몰리다 

속으로는 슬픔과 절망감을 품고 일상 속에 들어와 고민하던 차에,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동생의 초대를 받았다. 그녀는 똑똑하고 착해서 운동권의 높은 이상으로 끌어들이려고 포섭중이던 동생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동생은 오히려 내가 불쌍하고 안타까워 기도하던 중이었다고 했다.

외롭던 차에 기꺼이 금요일 낮에 방문, 동생의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도 했다. 자고 가라는 얘기도 듣고 그 평안과 소소한 행복을 더 누리고 싶어 자고 하룻밤을 묵고 가기로 했다. 그날 밤, 동생은 가족들과 함께 교회를 가야하니, 혼자 집에 있으라고 한다.

“언니는 그냥 집에서 쉬고 계세요, 다녀올게요” 

그러나 주인없는 집에 홀로 있기는 싫었다. 게다가 도난 사건의 아픈 기억도 있어, 평생 가본 적이 없는 금요 예배에 따라 나서기로 했다. 들어가는데 낯선 사람이 들어오고 동생이 아는 언니라고 소개했다. 담임 목사님은 처음 보는 내게 말을 건넸다.

“어디서 방황하다가 이제야 오셨나요?”  

당황했지만, 그 말이 지금도 하나님의 책망과 사랑으로 기억난다. 예배 중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설교와 찬양 들으며 까닭 모를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지만, 그러면서도 행복했다. 하룻밤을 자고, 토요일 오전에 동생이 말했다.  

“언니, 교회에서 청년 모임이 있어 나가는데 같이 가볼래요?”

그래서 전날 밤 좋은 기억도 있어 같이 참석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간 그 자리에 청년들이 과자 봉지 앞에 두고 둘러앉아 있었다. 그 첫 인상에 기대감이 왕창 무너졌다. 나는 지금껏 술 담배도 하며 인생과 진리,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들이 과자나 우물거리고 젖 안땐 사람들 같은 모습에 한심하게 느껴졌다. 체면과 예의때문에 가까스로 버티다가 귀가했다. 노동 운동하던 때는 술 담배를 입에 달고 살았고 그런 인생에 여전히 긍지를 갖고 있었다. 사회를 변화시킬 사람으로서의 투쟁과 고민하는 의식있는 젊은 세대. 직장 다니면서는 계단 근처에 모여서 담배 피우는 남자 동료들의 옆을 지나며 담배 냄새가 너무 좋아 냄새라도 실컷 들이키고 싶지만 동지가 아닌 사람들 앞에서 맞담배 피울 상황은 아니라서 냄새 맡고 나면 더욱 못 참던 내가 아닌가. 그래서 교회는 다시 가지 않았지만 동생 가정의 따뜻했던 분위기와 눈물흘렸던 금요일의 기억은 좋았다.

처음 참석한 예배에서 눈물 흘리다 

어느 주말에 조용히 쉬고 싶었는데 일거리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내일은 교회에 갈거야” 나도 모르게 핑계를 대고 빠져나왔다. 내가 한 말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일요일에 동생이 다니는 교회에 참석했다.  설교 말씀 듣는데 깨달음이 왔다.  

‘아!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세상에는 하나님의 질서가 있구나.’ 

‘부모님께 순종 잘하던 내가 하나님 아버지 말씀은 안들었구나’ 불효한 딸로서 회개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면서 어릴 때 잘 하던 부모님에 대한 효도와 앞장서서 배려하고 섬기던 옛날의 기억이 생각나서 성실하게 예배에 참석하고 새벽 예배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끊기 힘들었던 술 담배도 끊게 되고 동지가 아닌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결혼도 꿈꾸게 되고, 그러면서 작정 및 서원 기도도 했다. 어느 날 동생이 ‘하나님을 잘 모르면서 마음대로 서원 기도하는 것은 죄가 될 수도 있다’고 하여 회개 기도하고 대신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제 삶을 인도해 주세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가서 불쌍한 사람들을 섬기며 살겠습니다. 그런 삶을 같이 살아갈 남편을 주세요. 하나님의 질서대로 남편을 섬기며 살겠습니다”

짧은 한두달 사이에 삶이 달라졌고 회사 내의 복잡한 문제도 풀어지고 퇴직하며 퇴직금을 교회에 무명으로 헌금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단했다. 그리고 21일간 금식 기도를 했다. 금식 기도가 끝난 그해 1994년도에 교회에서 해외 선교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목사님 저도 가면 안될까요?” 신청하고 허락받아서 일주일간 해외에 나갔다. 특별한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 전체 기간이 너무나 꿈 같아서 목사님께 요청했다. 

“목사님, 저 귀국 안하고 여기에 살면 안될까요. 허락해 주세요”  

“안돼, 넌 좀 더 훈련받아야 해.” 목사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순종하고 귀국한 이후, 빨리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어 열심히 교회 생활하며 모든 예배와 권유받은 훈련은 다 받았다. 1년 후 다시 그 나라에 가서, 그곳을 찾는 단기 훈련팀을 맞고 섬기는 일을 했다. 아직 현지 언어를 잘 모르고, 현지의 사람들 사이에서 막내였던 나는 섬기고 기도하는 일을 많이 했다. 새벽에 기도하는 때가 제일 행복했다.

단기선교 이후 선교훈련에 참여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기도 중에 어떤 남자의 이름이 툭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남자를 나의 신랑감으로 주었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들어본 이름인데 누군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신기하다 생각하고 기억을 되살리려는 중, 며칠 후 고향의 아는 여동생의 연락을 받았다. 대화 중 알게된 것은 그 남자는 그 후배가 다니는 신학교의 선배였고 해외에 있을 때 내가 살던 지역에 단기 선교 훈련으로 왔던 사람이었다. 궁금하던 참이라 기회가 되어 귀국하고 일부러 여 동생을 만나러 갔다. 핑계거리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그 남자에 대해 물어보니 그 남자는 마침 오토바이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몇번 더 방문하며 서로의 생각을 알게 되었다. 그 남자는 자기의 신앙과 가정 배경을 얘기했고, 선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기도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기도하는 중 주님이 주신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내 인생과 꿈, 하나님 안에서의 소망이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음성을 들려주셨다. 기도해 보시고 같은 마음이 들면 하나님이 맺어주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당신을 평생 내조하는 아내로 살겠습니다. 받아주시오’ 그런 다소 황당하지만 내 이야기를 담은 길고 두툼한 내용이었다.

다음날 새벽기도 가는 중에 전날 밤 온 마음을 담은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면서 마음이 홀가분했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편지를 보낸 것이었기에 마음을 비우고 평안 가운데 기도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우리는 신혼여행을 함께 갔다. 그리고 현재는 가난하고 어두운 곳, 서남 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선교사로 삶을 살아온지 20년이 넘었다. 1남2녀 중 아들은 2021년 10월 15일 논산 연무대로 입대했다. 한동대에 재학중인 딸은 예쁜 신앙을 가졌다.

기도제목의 배우자를 만나다 

그렇게 그녀의 기막히고 놀라운 삶을 듣고난 이후, 이번에는 그녀의 남편 이야기도 듣게 됐다.  

그는 가난하고 폭력적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어린 시절 한 때 거칠게 살았던 적이 있었으나 일찌감치 교회로 인도되어 말씀을 배우며 선교사의 꿈을 품고 달려왔다.  

아내를 처음 만나 병원에 입원했던 때는 신학교 다니며 학비 때문에 배달 일을 하다가 오토바이 사고로 발톱이 꺾인 사고 때문이었다. 당시 걸음이 어려워, 입원하게 됐다. 그 때가 기도하고 편히 쉴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현재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결국 결혼과 현재의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신학교 들어가고 자신의 배우자에 대해 이렇게 기도했다.

(1) 행복한 가정이 그리웠기에 같은 신앙의 안정적인 심성의 아내  (2) 선교사로 같이 나갈 아내  (3) 자식 잘 키울 가정적이고 예쁜 아내  (4) 의료 기술이 있는 아내. 이런 아내를 주세요. 

아내는 의대를 졸업했지만 졸업만 하고 자격증은 없었다. 나중에 사역지로 나가서 마저 준비하여 자격을 구비해, 4개의 기도제목을 다 갖춘 사람을 만나 결혼 기도제목 모두 응답받았다. 

향기 나는 삶 

자기가 생각하는 정의로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70년생 모범 소녀가 인생 투쟁에서 슬픔과 한계를 느낄 때 언니를 돕고 싶던 동생의 사랑과 기도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방향 전환이 이뤄졌다. 그렇게 자기 생각을 버리고 섬기는 작은 일부터 다시 시작하여 20여년이 흘렀다.    

그의 삶 이야기를 몇 사람이 모여 예배드리고 말씀나누고 기도제목 나누는 중 자연스럽게 듣게 됐다. 숨겨진 한 여성의 진솔한 삶에서 나온 얘기에서 은혜와 향기와 감동을 발견한 동시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전해듣고 그 삶의 주인공도 잠시 은혜와 행복에 잠겼다. 내 삶도 남에게 기쁨을 줄 수 있구나. 

그는 자기 삶이 향기라 생각지 않았고 큰 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 by Nathanel Hawthorne(1804-1864)을 한번 본 후 잊지 않고 계속 따라갔을 뿐이다. 향기 없는 자기 삶을 볼 때 마다 괴로와 하며 가고자 원했던 길,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세월에 깎이고 깎이면서 애통해 하던 시간이 더 많았다.  

향기는 향품을 사서 밖에 바르는게 아니라 향을 가진 나무가 깎이면서 안에서 뿜어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배운다.   

어떻게 하면 단 한번 뿐인 인생을 잘 살아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럽지 않을까 기도하고 아내된 나, 어머니된 나, 여자로서 할 도리와 성경에서 가르치는 섬김을 실천했을 뿐이다. 섬김의 인생은 고통스럽고 인내가 필요하다. 하고 싶은 말, 외치고 싶은 탄식을 억누르며 깎여나간 인생이 20년이 넘었다. 길게 보였던 시간이었지만 뒤를 돌아보니 너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아직 해피 엔딩도 아니다. 인생이 끝나지 않았기에 열매 딸 때도 되지 않았고 사람에게는 올리지 못하는 슬픔과 고통의 얘기도 있을 것이다.  

그가 끝까지 갈 수 있도록 축복한다. 또한 그의 작은 향기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리고 내 삶의 끝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지 우리 모두 남은 날 동안 준비하시기를 기대한다.      

(고후 2:14-16)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또 어느 곳에서나 우리를 통하여 그 분에 관한 지식의 향기를 나타내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 15 이는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나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이기 때문이라. 16 정녕 이 사람들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사망의 향기이나 저 사람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생명의 향기라. 누가 이런 일들을 원만히 감당하겠느냐?  

(요 12:2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복음기도신문]

이바나바 |인도차이나반도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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