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영 칼럼] 슬픈 마음 있는 사람

나는 음악을 어머니께 배웠다. 내가 아는 음악은 어머니가 들려주신 찬송가가 전부다.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찬송을 부르는데 가사 한절 한절이 마음에 와 닿는다.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이름 믿으면 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1절부터 4절까지 눈을 감고 부르는데 가사도 선명하다. 600곡 넘는 찬송을 책을 펴지 않고도 […]

[송준기 칼럼] 네가 이겨야 나도 이긴다

송준기 목사는 ‘교회와 선교는 하나’라는 주장을 이론만이 아닌, 선교적 교회 개척 실행의 순종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그동안 그같은 생각과 순종의 여정을 저서 <끝까지 가라> 등 10권의 책에 담아냈다. 이 칼럼은 그의 저서 발췌와 집필을 통해 선교적 교회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한다. <편집자>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

[TGC 칼럼] 존 파이퍼_치유 사역과 복음의 관계

요한복음 5장 14절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여기서 이 치유 사건의 주된 사안은 무엇인가요? 이 치유 사건의 주된 사안은 거룩입니다. ‘내가 너를 낫게 했는데 이제 그 목적을 말하려 한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겁니다. 이건 정말로 중요합니다. 여기엔 여러분이 알아야 […]

[이아침 칼럼] 믿음은 마음을 꺼내서 주님께 드리는 행위

우리는 기뻐하려고 합니다. 기쁨을 통해서만 참된 만족이 있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면 ‘예, 주님! 옳습니다’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주님은 늘 기쁨으로 끝나게 만드십니다. 사랑도 기쁨으로 귀결됩니다. 진리입니다. 인생은 기쁨에 대한 근본적인 목마름이 있습니다. 기쁨에 대한 목마름을 채울 수 없는 이유를 오늘 말씀을 통해 볼 것입니다. 왜 원천적으로 기쁨이 충족되지 않는지를 […]

[GTK 칼럼] 다음세대를 위한 설교의 과제 (1)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19-20)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

[특별기획] 마침내 아군 포로가 되다

[정전협정 70주년 특별기획]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22) 저녁노을이 짙어갈 무렵, 이미 국군은 인제 시내까지 진출한 상태였다. 길 옆 방공호에 숨어 동태를 살펴보니 미군 선발대 4~5명이 철모에 수류탄을 넣고 의심스러운 곳에 수류탄의 ‘핀’을 뽑아 무조건 집어던지는 것이다. 그들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다급하게 뛰쳐나와 양손을 높이 들고 투항하는 자세를 취했다. 미군은 양손을 뒤통수에 대라는 시늉을 했다. […]

[정성구 칼럼] 대인(大人)이 필요하다

대인(大人)은 말 그대로 큰 사람이다. 큰 사람은 키 큰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대인이란 <그릇이 큰 사람>을 의미한다. 장차 다가올 총선을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승리를 위해서 인물란에 허덕이고 있다. 여당은 새롭고 젊은 지도자가 비대위원장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야권은 전직 당 대표가 감옥에 가도 그 흔해 빠진 <유감>이라는 말도 없었다. 기존의 정치 지도자 중에는 […]

[TGC 칼럼] 문화 참여에 필요한 네 가지 ‘R’

Mere Orthodoxy에 실린 브래드 이스트(Brad East)의 에세이 “한 번 더, 교회와 문화”는 올해 나온 글 중에서 가장 통찰력이 번뜩인다.  이 글은 기독교왕국(Christendom, “사회, 문화, 법률, 예술, 가족, 정치 및 예배가 교회의 영향력으로 포화되고 교회의 권위에 의해 정의될 때 기독교 문명에 부여하는 이름”)의 흥망성쇠에 대한 고찰로 시작한다. 그리고 1951년에 처음 출판된 리처드 니버의 고전 ‘그리스도와 문화’를 […]

[박태양 칼럼] 기독교적 신비와 비기독교적 신비주의

눈먼 기독교(56) 기독교는 하나님의 내재성과 초월성이 함께 있는 종교이므로 당연히 그 속성 가운데 신(神)적인 신비로움이 존재한다. 신구약 성경에서 보여주듯이 수많은 이적은 물론 꿈과 환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셨다. 신비로운 현상은 과거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이 시대에도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아직 일제 식민지로 있던 1939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후에 한국의 엘리야라는 별명을 얻은) 의사 박관준 장로는 […]

[원정하 칼럼] 결혼 잔치와 빈민식사

지난 12월 17에 인도의 극과 극이라 할 만한 두 번의 식사 자리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봄베이 빈민 자선 식당에서의 가난한 이들과의 소박한 식사였고, 또 한번은 그 빈민 식당 주인 아들(무스타파)의 결혼식이었습니다. 주인 아들의 결혼식 때문에 원래 밤 11시까지 하는 빈민 식당은 일곱 시에 닫았고, 종일 땀내 나는 누더기를 입고 덥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일하던 빈민 식당 스태프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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