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임 수틴(Chaïm Soutine)은 리투아니아계 유대인으로, 1913년 프랑스로 건너와 활동하였다. 표현주의의 선구자 수틴은 화가 아데메오 모딜리아니의 친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모딜리아니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이었던 수틴 또한 유대인 격리 구역 게토에서 자랐으며, 폭력과 차별에 시달렸다. 특히 양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독일뿐 아니라, 유럽 곳곳에 팽배했던 반유대주의의 트라우마로 인해 우울증이 악화되었고, 작품도 한층 비극적이고 강렬하게 전개되었다. 한편, 이디시어를 구사할 줄 아는 정통파 유대교 가정에서 자란 그는 성경 이야기에 관련된 비유를 묵시록적인 작품으로 그려냈다. 그러나, 형상적인 작품을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 전통 때문에, 그의 작품은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반항적인, 프랑스인의 눈에는 낯설고 투박한,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과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삶에서 형성된 어둡고 강렬하며, 비극적인 정서는 그의 작품들에서 고스란히 배어난다.
이처럼 주변인이었던 수틴은 파리의 에꼴 데 보자르에서 공부하였으나, 실질적인 스승은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작품들이었다. 특히, 고야, 틴토레토, 렘브란트 등의 작품을 깊이 연구했다. 그의 <도축된 소> 또한, 렘브란트가 반복적으로 다뤘던 소재를 수틴이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렘브란트의 <도축된 소>는 십자가 책형을 비유적으로 그린 작품인데, 이에 비해 수틴의 작품은 십자가의 피 흘림, 고통, 수치가 강렬한 색과 거친 붓질에 의해 한층 더 격렬하게 표현되었다. 원래 도축된 소는 ‘돌아온 탕자’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벌이며 잡은 살진 소와 짐승을 둘로 쪼개어 맺은 고대 중동의 계약식 모두를 가리킨다. 이는 ‘쪼개어 맺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언약(카라트 베리트)’이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 즉 구원의 약속임을 상기시키는 대상이기도 하다. 유대인이었던 수틴은 아마 도축된 소에 이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무려 열 번 이상 이 주제를 그릴 정도로 여기에 몰입해 있었으니 말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수치와 모욕으로 얼룩진 자기 삶의 투영일까, 탕자를 향한 아버지의 조건 없는 용서와 사랑일까, 아니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하나님의 대속제물로 내어주신 예수님의 깊고 뜨거운 사랑일까. [복음기도신문]
이상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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