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호 / 뷰즈 인 아트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주실 때
르네상스 거장 다빈치 <모나리자>의 신문 사진을 30번 반복한 이 작품은 미국의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Andy Warhol)의 것이다. 워홀은 반복을 통해 대량생산 시스템을 언급했다.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만든 물건들은 같을 수 없고 차이가 나기 마련이지만, 기계로 생산된 물건은 외양이나 품질이 전부 동일하다. 물건이 대량으로 복제되는 셈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대량복제 시스템에 감격했던 시기가 있었다. 1920년대 소련과 1960년대 말의 서독이다.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부르주아가 독점한 예술은 대량생산과 복제 시스템을 통해 민중에게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을 꿈꾸었다. 대표적인 것이 영화다. 1960년대 말 학생운동이 한창이었던 서독에서는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반복하는 팝아트가 부르주아의 전유물이었던 미술을 모두에게 돌려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대는 곧 좌절로 바뀌었다. 워홀은 처음부터 미술을 대중에게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 캠벨 수프, 마릴린 먼로, 모나리자 등, 대중 매체가 생산하는 이미지를 몇 번이고 반복한 워홀의 작품은 정교하고 견고한 미국의 생산 시스템을 언급만 할 뿐, 비판은 하지 않았다. 또한, 팝아트 역시 다른 회화와 똑같이 희소성을 띈 채, 신전 같은 미술관에서, 거액의 몸값을 자랑하는 위치에 올랐다.
팝아트 중에서도 최고가를 자랑하는 워홀의 <서른은 하나보다 낫다>는 모순되었다. 중요한 한 가지가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가진 아우라(aura)이다. 아우라란, 단 하나의 원본만이 가지는 힘이다. <모나리자>를 촬영한 흑백 사진의 밋밋함에서는 느낄 수 없는, 복제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의 시각도 이와 같지 않을까. 여럿 중 하나가 아닌, 유일무이하고 복제될 수 없는 특별함으로 우리를 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나를 지명하여 이름을 불러주신다. 여럿 중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나를 부르셔서 당신의 꽃이 되게 하신다. [복음기도신문]
이상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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