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호 / 선교 통신
주일 예배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온 피난민 가정을 만났습니다. 한 남성이 2주간 정부 허가를 받아 아내와 아이를 피난지에 보내기 위해 크로아티아까지 온 것입니다. 그는 다시 아내와 아이를 이곳에 남겨둔 채 우크라이나로 돌아가야 합니다. 현장에서 목격하는 그들의 삶과 고난, 가족의 이별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평화와 상생의 땅이라고 여겼던 유럽의 가치들이 무너지고 서서히 이념과 체제 진영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유럽 땅에 참된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길 원합니다. 나의 평안이 당연한 것이 아니며, 오직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차가 고장나면 입고하여 수리하듯, 육신의 약함은 나를 삶과 사역에서 많은 부분을 중지시키고, 영혼의 공업사로 입고케 했습니다. 활동이 줄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말씀과 기도의 시간도 늘었습니다. 주께선 행함이 아닌 거함의 장소로 인도하셨습니다. ‘자아의 행함이 아닌 주 안에 거함’으로 살아야 함은 알면서도, 정작 실제 삶에선 거함보다 행함에 따라 좌우된 내 모습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용서와 주의 위로를 누렸습니다. 최선은 좋은 것이나, 마른 우물 바닥을 긁어대는 최선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먼저 우물에 물이 들어오길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묵상과 기도의 시간이 영혼의 우물에 물이 고이게 합니다.
지난 기간 동안, 저의 사역은 한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 중심이었습니다. 가르칠수록 복음은 세상의 지식이 아니라 영원한 지혜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청중의 귀가 열려야 한다는 것, 그 귀는 들음에서 시작된다는 것, 들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며, 그렇기에 말씀을 가르치는 이 시간과 기회가 얼마나 복된지 깊이 느낍니다. 유일하게 이 땅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복된 기회입니다. 들을 수 없고, 듣지 못하는 수십 수백 명의 무리보다 들을 귀가 있는, 듣고 싶어하는 적은 무리의 소중함을 압니다. 수가 적으면, 주눅이 들고 낙심하고, 스스로가 무능력한 것 같은 세상의 식견을 거부합니다.
믿음은 모든 자의 것이 아니라는 성경의 진리를 믿습니다. 바른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언제나 선명한 영적 국경이 그어지고, 의의 길과 불의의 경계에서 의에 속한 자가 상대적으로 무척 적음을 알게 됩니다. 바른 지식은 낙심하지 않게 하고 다만 내가 주 안에 바로 서 있는지를 성찰하게 합니다. 사람이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인데, 육신의 출생도 개인의 주권밖의 일이라면,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도 개인의 주권밖의 일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적 은혜요, 그의 주권 아래 있으며, 선교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순종함으로 이를 믿고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경읽기 수업에 새롭게 참여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말씀에 귀가 열리고 복음을 깨닫길 원합니다. 말씀에 사모함이 있지만, 복음에 대한 이해가 윤리 도덕적인 학생도 있습니다. 가톨릭의 영향을 받은 전형적인 경향입니다. 인간의 의지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전적으로 깨닫도록 기도해주십시오. [복음기도신문]
크로아티아 자그레브=김경근·문정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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