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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가정을 복음으로 세우는 일에 쓰임받고 싶어요”

매일 복음 앞에 서는 바양산 톨 전도사 (몽골)

바양산 톨 전도사(몽골)

279호 / 사람풍경

몽골은 20세기 초 사회주의 국가로 수립되어 소련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근대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1992년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이원집정부제 헌법을 채택하고 정치, 경제 개혁을 단행했다. 이후로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와 지방에 교회가 세워졌고, 한국 선교사들이 몽골로 들어갔다. 선교의 물결이 몽골로 흘러들어가던 그 때, 소녀 바양산 톨이 은혜의 물결에 몸을 실었다. 비록 무너진 가정의 모양으로 아픔을 겪었지만, 지금은 몽골의 무너진 가정을 복음으로 세우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서울 고속터미널 근처 커피숍에서 만난 톨 전도사의 한국말은 유창했다. 한국엔 복음집회 통역차 방문했다고 했다. 그날은 한국에 와 있는 몽골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고. 고속버스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눴다.

– 언제 어떻게 복음을 듣게 되셨나요?

“몽골에 복음이 전파된 지는 34년 됐습니다. 몽골은 공산주의 국가였다가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1990년대부터 외국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저도 그때 예수님을 만났어요. 당시 19살이었어요. 하루는 친구가 좋은 곳이 있다면서 저를 데리고 갔어요. 한국 선교사님이 세우신 교회더군요. 당시 저는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집에 있던 때였어요. 마음이 어려울 때 가게 된 교회가 너무 좋았어요. 그곳에서 친구들도 사귀게 되고, 청년들과 활동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당시에 복음을 들었지만,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지는 못했어요. 그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죠. 수요예배, 금요예배, 성가대, 중고등부 교사도 하면서 신앙의 훈련을 받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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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톨 전도사

한국 선교사님을 통해 복음을 듣게 됐어요

– 몽골에 복음이 들어간 초창기에 교회를 다니셨군요. 당시 교회 모습을 기억하세요?

“그때 우리에게 성경책이 없었어요. 몽골에는 번역된 신약 성경만 있었기 때문에 당시 선교사님들이 성경공부도 가르치고 번역도 하면서 수고가 많았어요. 당시 몽골에는 한국어 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어요. 다만 몽골은 북한과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국립대학에는 조선어학과만 있었죠. 그나마도 북한어를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요. 교회를 다닌 지 1년 정도 됐을 때, 목사님이 한국어 강좌를 시작하셨어요. 목사님도 당시에는 몽골어가 능숙하지 않아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때 저는 대학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2년이 됐을 때, 한국어 강좌는 한국 목사님들이 운영하시는 정식 대학교가 됐어요. 지금의 국제울란바토르대학교의 기초가 됐죠. 저는 1회 졸업생으로 97년도에 졸업했어요.”

그렇게 한국어를 배운 톨 전도사는 2008년에 순회선교단이 몽골에서 가진 복음학교에서 통역으로 섬기며 복음의 통로가 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통역을 하다 최근 십수 년 만에 다시 복음집회에서 통역으로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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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어느 지역의 가정상담 훈련과정에서 강의하고 있는 톨 전도사. 제공: 톨 전도사

– 통역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한국어를 배운지 2년 됐을 때, 목사님을 통해 한 개척교회를 소개받았어요. 한국 목사님께서 개척한 교회였기 때문에 통역자가 필요했는데, 그때 제가 사전도 없고, 설교 용어도 잘 몰라서 번역하는 데 애를 먹었어요. 설교문을 미리 받고 단어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이 저를 공부시키셨던 것 같아요. 당시 목사님께서 기아대책 기구에서 사역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3년 동안 기아대책기구에서 통역자로 섬겼어요. 이후 한국으로 유학을 오게 됐어요.”

– 한국 생활은 어떠셨어요?

“26살에 한국에 왔어요. 그때 너무 좋았어요. 몽골은 가난했지만, 한국은 다른 세계였어요. 처음에는 너무 좋았지만, 집을 떠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곧 가족이 보고 싶었죠.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그때 몽골 사람들이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많이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몽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에서 통역을 하게 됐어요. 저도 한국에서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만나게 됐어요. 그러다 불법체류자였던 한 유부남을 만나게 됐고, 임신을 하게 됐어요. 당시 저는 논문만 남겨 놓은 상태였어요. 힘들었어요. 교회를 다니고 주일에는 교회에서 통역도 했는데, 양심이 찔려서 너무 어려웠어요. 게다가 비자가 연장이 안되면서 몽골로 돌아가야 했어요. 몽골에 돌아와 출산을 했어요. 감사하게도 가족들이 따뜻하게 보살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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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과정을 마친 수료자들과 함께. 제공: 톨 전도사

한국에 유학 오며 어려운 시간을 갖게 됐어요

– 어려운 시간이셨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오셨나요?

“2005년도에 참석한 복음학교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됐어요. 그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어요. 복음 앞에 서면서 저의 죄인 된 실체를 알게 됐어요. 복음을 만나기 전에는 제가 그런 죄를 지었다는 것이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어요. 착하게 살려고 했기 때문에 저를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됐죠. 임신을 한 채, 몽골에 들어와서 아이를 혼자 키우겠다고 결정했던 과정들이 많이 힘들었어요. 혼자였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부모님이 저를 많이 이해해주시고 도와주셨죠. 그리고 하나님이 저를 도와주셨어요. 스무 살이 된 아들은 이제 선교사가 되겠다며 의과대학에서 공부 중이에요. 또 주님의 은혜였던 건, 복음학교 내용을 통역하면서 제가 많이 회복됐어요. 아이를 홀로 키우면서 늘 생각했던 것은 하나님도 저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복음의 내용을 통역하면서 그 내용이 제 영혼을 강타했고, 참 자유를 얻게 했죠. 아마 그때 복음학교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어두운 인생을 살았을 거예요.”

– 복음의 빛 앞에서 회복이 일어났군요. 이후엔 어떤 시간들을 보내셨어요?

“복음학교 이후 새로운 삶이 시작됐어요. 몽골은 무너진 가정이 많이 있어요. 먼저는 저도 이런 아픔이 있고,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어서 가정사역을 시작하게 됐어요. 지금까지 19년 동안 사역을 하면서 지금은 상담사를 세우는 일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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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도 몽골에서 열린 복음학교에서 섬김이들과 함께. 제공: 톨 전도사

– 몽골 가정의 일반적인 상황이 어떤가요?

“옛날엔 가정에 대한 개념이 몽골인들에게 올바로 세워졌던 것 같아요. 공산주의 국가였을 때는 부부가 결혼하면 이혼하는 게 어렵고 안되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가 되면서부터는 민주주의를 잘못 인식해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 같아요. 가정에 대한 개념도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가정이 있는데도 외도를 하게 되고, 자녀들은 아파하는 일들이 벌어졌어요. 또 몽골은 아직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외국에 의존을 많이 해요. 한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오는 이주민들만 5만 명이라고 하는데, 거기에는 가정을 두고 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새로운 사람이 생기고, 몽골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새로운 사람이 생기는 경우가 있어요.”

– 어려운 상황이네요. 많은 혼란과 문제들이 발생하겠군요.

“국가적으로도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면서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가정에 대한 교육을 시도하며 개혁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도 상담을 하면서 가정에 대해 가르쳐주면 사람들이 잘 적용하고 따라와요. 성경적인 가정이 뭔지 잘 몰랐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죠. 사실 몽골 가정에는 좋은 풍습이 있었어요. 부부가 서로를 부를 때, ‘당신’이라는 호칭을 썼어요. 그리고 서로에 대해 욕하지 않았어요.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공산국가가 되면서부터는 이런 좋은 풍습이 사라지고, 지금은 언어폭력이 매우 심해졌어요.”

–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제목을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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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을 하고 있는 톨 전도사. 제공: 톨 전도사

“지금 저는 몽골의 가정을 세우는 일에 전문적으로 섬기고 싶어서 심리학 석사 과정 중에 있어요. 또, 몽골에 있는 목회자들이나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상담 사역을 하려고 해요. 지금까지 상담 사역을 해오면서, 목회자들나 지도자들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들었어요. 또 목회자들도 나름 어려움과 상처가 있죠. 이분들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과정들을 만들고 싶어요. 어떤 식으로 할지는 잘 모르지만, 먼저 이 일을 하려면 내가 먼저 준비돼야 하고, 복음 앞에 내가 잘 세워져야 되고, 매일 복음 앞에서 사는 것이 필요해요. 이것 때문에 순회선교단과 협력해서 몽골에서 복음 캠프를 진행하려고 해요. 몽골에 있는 가정들이 복음 앞에서 회복되고, 거기서 마음에 있는 상처들이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또, 몽골과 몽골 교회들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만 영화롭게 되고 복음의 능력으로 사는 그날이 빨리 오도록 기도 부탁합니다.”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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