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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부르심에 순종, 열방에서 다음세대를 섬긴다”

주님의 사랑으로 순종하는 김영돈 선교사 (레바논)

김영돈 선교사(레바논)

281호 / 사람풍경

모태신앙으로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났으나, 오랫동안 하나님을 몰랐다. 그러다 인생의 고비를 겪으며 주님을 만나고 선교사역에 동참하게 됐다. 이제는 선교지에서 젊은 다음세대 선교사와 함께 공동체를 이뤄, 현장을 섬길 꿈을 품게 됐다.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아비들은 꿈을 꾸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김영돈 선교사의 삶으로 초대한다.

–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목회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옛날엔 목사님들이 참 가난했어요. 어머니가 5남매를 키우시느라 어렵게 사셨습니다. 어머니가 일을 하시면서 집안 형편이 많이 좋아졌어요.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님이 일을 하시는 바람에 혼자 목회를 하셨어요. 저도 지금은 혼자 선교지에 있고 아내는 사업을 하고 있죠. 아버지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네요.”

– 모태신앙에서 주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신 사건이 있으시겠지요?

“어려서 교회를 열심히 잘 다녔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를 안나갔어요. 세상친구들과 어울리다 23살에 결혼을 하고 이듬해에 파라과이로 이민을 갔습니다. 다시 미국으로 옮기긴 했지만 그때는 불신자처럼 살면서도 교회는 계속 출석했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의류 사업을 38년 동안 했어요. 처음에는 의류 커팅공장을 6년간 운영하다가 사업을 확장해서 공장을 운영했어요. 그렇게 옷을 디자인해서 미국 체인스토어와 백화점에 20년 넘게 납품을 했어요. 그러다 중국, 과테말라, 베트남 등에서 옷을 만들어와 납품하기도 했죠. 꽤 오랫동안 사업이 순조롭게 잘 됐는데, 어려움이 찾아오더군요. 회사가 매우 어려웠어요. 그런 힘든 상황에서 드디어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1996년이었죠. 그때 하나님을 만나고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게 됐습니다.”

–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

“저는 그때까지 새벽예배를 나가본 적 없었습니다.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을 때, 어머님이 새벽에 저를 깨우셨어요. 힘들고 어려운데 기도하자고 권유하셨어요. 저는 “어머니, 무슨 기돕니까? 좀 있다가 일 나가야 되는데.”라며 대꾸도 안했어요. 그런데 며칠 동안 계속 깨우시는 거예요. ‘그래. 어머니 소원인데 한 번 가자.’는 마음으로 교회에 갔어요. 말씀을 듣고 앉아있는데, 머릿속은 걱정으로 가득했죠. 그 이후에도 어머니는 계속 강권했어요. 그렇게 교회에 갔던 어느 날이었어요. 설교가 끝나고 기도하는 시간이 됐어요. 그러다 눈을 떴어요. 5분, 10분밖에 안 된 줄 알았는데 2시간이 지났더군요. 제 옷은 다 젖어 있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그때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신다면 술, 담배 끊고 세상일을 정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거 보여주시면 제가 순종하겠다고요. 나중에 보니 술, 담배가 끊어져 있더군요.”

새벽기도에 참석했다 주님을 만났어요

– 하나님의 은혜네요. 그 이후 신앙생활이 궁금합니다.

“한 집사님이 뜨레스디아스를 권했어요. 그곳에서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했어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고 나니 제가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들에게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그렇게 6개월 동안 용서를 구하고 다녔어요. 그때부터 제 삶의 변화가 시작된 것 같아요. 당시 교회에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하셨는데, 그때 선교에 대한 비전을 제가 처음 보게 됐어요. 1998년도에 우크라이나로 처음 선교 사역을 가게 됐어요. 그곳에서 하나님이 선교에 대한 마음을 주시더군요. 이후 교회 선교부에서 15년 넘게 섬겼어요. 선교 사역을 하면서 선교라는 게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됐고, 이후 단기선교를 많이 다녔어요. 또 전도폭발 사역도 15년 정도 하게 됐어요.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았어요. 제가 주님의 일을 하면 내 일은 주님이 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사업을 하고 있으니까 시간 조절이 용이했죠.”

– 신앙인으로서 사회 생활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회사에서 사장인 제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생산 날짜가 차질이 생기면 거래처들과 만나서 조율을 해야 하는데, 이런 일정이 선교 일정과 매번 겹쳤어요. 그럴 때면 회사를 그만둘 각오를 하고 선교 일정을 선택했죠. 그런데 그렇게 선교를 갔다 오면 더 주문이 많이 들어와 있더군요. 저는 당시에 수입의 십일조만 가지고 생활했어요. 나머지는 헌금하고요. 그러다 1997년에 회사가 어려운 상황을 맞고, 그때 주님은 제가 믿음을 쓸 수 있게 하셨어요. 직원 월급도 못 줄 정도가 됐는데도,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십일조를 먼저 냈죠. 그때는 무모하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에 걸맞게 주님이 은혜를 주시더군요. 감사하게도 회사는 2000년도에 다시 회복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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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바논의 지체들과 함께. 제공: 김영돈 선교사

– 말로는 짧게 정리되지만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20여 년 동안 열심히 사역했는데, 신앙의 한계가 왔습니다. 그러다 지인의 권유로 2009년에 복음학교에 참석하게 됐어요. 그리고 나에게 실제가 된 복음이 아니면 내게 복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로 다시 교회를 열심히 섬겼습니다. 당시 교회에서 섬기던 목사님 한 분이 개척을 하게 되면서, 제가 그 교회로 파송 받아 새로운 교회를 섬기게 됐습니다. 그때는 미전도종족 선교를 하고 있던 때여서, 10년 동안 인도나 라오스 등지를 섬겼습니다. 그렇게 7~8년을 섬겼을 때, 다시 갈급함이 생기더군요. 제 존재적인 음란의 문제도 해결이 안되고, 회개하고 금식해도 안됐어요. 급기야 제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는데, 이거 하나 해결 안 되는 게 뭘까 고민했어요. 그때 서재에서 복음학교 때 필기했던 노트를 꺼내 보게 됐어요. 첫 페이지를 펼쳤는데, 순회선교단에서 하는 중보기도학교, 선교관학교, 복음사관학교 소개가 있더군요. 그때가 복음학교 하고 10년이 지났을 때였어요. 복음사관학교를 언제 들어갈 수 있는지 메일을 보냈어요. 답장을 받고 35년 동안 미국에서 하던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한국으로 왔어요.”

신앙의 한계를 느끼며 다시 복음 앞에 서다

– 쉽지 않은 결정을 하셨네요. 훈련은 어떠셨어요?

“훈련소에 입소한 첫날, 하나님께 집중하라면서 대화를 못하게 하더군요. 같은 이유로 핸드폰도 반납했어요. 순간 잘못 왔다고 생각이 들어 돌아가야겠다며 짐을 쌌어요. 그래도 어차피 이곳에 왔으니, 기도라도 한 번 하고 가자는 마음으로 기도실로 들어갔어요. 기도하는데 주님이 바로 ‘내가 너 부른거야.’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내가 있을 자리가 여기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6개월간 훈련을 받았어요. 훈련 마치고 미국에 돌아와 순회선교단 미주지부에서 운영하는 중보기도학교를 섬겼어요. 그때는 이제 복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열망으로 뜨거웠어요. 우리 교회가 작은 규모였는데, 제가 중보기도 모임도 만들고 말씀기도 모임도 만들고 교인들을 초대했어요.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이 오면서, 집에서 혼자 살아내야 하는 시간이 왔어요. 6개월은 잘 버텼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혼자 있는 게 힘들더군요. 그때, 한국에 있는 요셉의창고미니스트리라는 곳에 대해 듣게 됐고, 그곳에서 지내면서 합숙훈련을 받고 싶었어요. 상황이 여의치 않았는데, 주님의 은혜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 온전한 믿음에 대한 갈망이 무척 컸던가 봅니다. 공동체 훈련이 어떤 유익이 있었나요?

“처음에는 하나님이 저에게 예수 사랑에 대해 알게 해주셨어요. 작은 방에 4명이 함께 생활했어요. 20대, 30대, 40대와 60대인 제가 함께 생활했어요. 공동체 생활이라는 게 쉽지 않더군요. 그런데 새벽에 예배실에 가서 기도하면, 주님이 사랑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그동안 교회에서 장로로 심방 다니고 교인들과 은혜 나누고 어려움이 있으면 기도해주고 그러면서 제가 사랑이 많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주님이 그때 내가 사랑한 건 예수의 사랑이 아니란 걸 깨닫게 해주셨어요. 그때 많이 울었어요. 내가 사랑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 다음부터 지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워졌는지 몰라요. 나중에는 정말 주님이 일하시는 시간이었어요. 저는 나이가 많으니 보내는 선교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주님은 중동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과 교제할 기회를 주시고, 또 레바논에서 의료 선교하시는 분을 만나게 하시면서 현장 선교에 대한 부담감을 갖게 하셨어요. 새벽에 기도하는데 레바논으로 선교에 헌신할 마음을 주시면서 약속의 말씀을 주셨어요. ‘주님 아닌 거 아시잖아요. 제가 인도도 가고, 미전도종족 선교하겠다고 했는데요.’ 그러나 주님이 말씀을 주시는데 알겠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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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의창고미니스트리 지체들과 함께. 제공: 김영돈 선교사

공동체 생활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배우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아 8:6)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 그러면 곧바로 레바논으로 떠나셨나요?

“현지에서 사역하고 계신 선교사님과 연결됐어요. 마침 헤브론원형학교 졸업생들이 단기선교를 와 있더군요. 그리고 몇 가지 준비과정을 거친 이후, 레바논에서 학생들의 가디언 선교사로 섬기게 됐어요. 주님이 필요한 것들을 미리 만나게 해주시고 일을 하나씩 진행하게 해주셨어요. 집을 얻는 것도 주님이 인도해주셨고, 학생들이 침을 맞아야 되면, 침 놓는 분이 바로 연결됐어요. 이발을 해야 됐는데, 다음날 이발하시는 분을 만나고, 김치를 싸 주시는 선생님도 만났죠. 하나님의 완벽한 인도하심이었어요.”

– 실버 선교사로 현장에 갔을 때 어려움이나 유익한 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나이가 있다 보니 언어적 능력도, 기억력도 떨어지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했는데, 그 나름의 역할이 있더군요. 우선은 기도하는 거예요. 허락된 자리에서 기도하고, 선교사들 만나서 교제하고, 선교사에게 힘을 주는 것이죠. 다른 분들 사역 도와주고 기도하는 게 일이 더 많았어요. 사랑을 받는 것 보다 주는 게 행복한 것이라는 것과 섬김으로 행복과 기쁨이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 레바논을 위한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레바논은 부족사회에요. 그래서 자기 부족만 잘 살면 돼죠. 무슬림도, 기독교도, 가톨릭도 자기 부족 위주여서 연합이 잘 안돼요. 이 때문에 대통령도 못 세우고 있는 실정이에요. 믿음이 있는 크리스천 대통령이 나와서 연합을 시키고 정치, 경제가 회복됐으면 좋겠어요. IMF에서도 도와주려고 해도, 연합이 안되니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NGO도 손을 거의 뗀 상태고, 그나마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그곳에 쏠려 있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보여줄 수 있는 대통령이 세워지길 기도하고 있어요. 레바논의 분위기는 사실 삭막해요. 나라가 무너졌으니까요. 3년 전만 해도 멀쩡했는데, 지금은 공무원 임금이 100불 정도고 관공서에는 사람이 없어요. 신호등도 없고, 주차장도 없죠. 군인들은 시리아나 요르단 용병으로 나가는 실정이에요. 군인 월급도 60불 정도거든요. 레바논 청년들은 나라에 소망이 없으니 다른 나라로 떠나고 있어요. 이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재 많은 선교사들이 시리아 난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영어를 잘하는 레바논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이들이 오히려 시리아 난민들에게 아랍어로 복음을 전하는 데 관심이 있어요.”

– 끝으로 기도제목 말씀해주세요.

“레바논 청년들을 대상으로 영어학원을 하고 싶어요. 영어를 무상으로 가르쳐주면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길 거예요. 그래서 미국에서 영어를 가르쳐 줄 사람들을 찾고 있어요. 레바논 청년들은 미국 사람에게 영어를 배우는 게 꿈이거든요. 마침 아내가 미국에서 영어 학원을 여러 개 운영 중인데, 함께 선교 사역에 동참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아랍어를 배워서 복음을 전하는 건 힘들지만 영어로 하면 복음을 전하기가 쉽죠. 그리고 또 한가지는 김용의 선교사님을 초청해서 이곳 선교사님들을 대상으로 복음 사경회를 열고 싶어요. 이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복음기도신문]

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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