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패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일러스트=고은선

[201호 / 믿음의 삶]

10대 청소년들이 기독교 세계관을 배우면 어떤 사고의 변화를 경험할까? 기독학교 헤브론원형학교 학생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기독교적 가치관을 학습하며 경험한 내면의 변화를 다양한 주제로 발표했다. 다음은 발표내용 요약문이다. <편집자>

온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옷을 입고, 패션(fashion)을 따른다. 옷은 우리가 입는 천과 면을 가리키고 패션은 특정한 시기에 유행하는 옷 또는 옷차림 머리 모양 따위의 일정한 형식을 말한다. 패션은 한 마디로 특정한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유행이다. 패션의 변천사는 시대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포함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패션은 일시적이다. 유명 연예인, 디자이너와 같은 사람들이 선보인 무언가를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따라한다. 사람들은 이런 유행에 뒤처지지 않고 싶어 하는데,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도 유행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물론 예쁜 옷을 입는다고 세상의 유행을 따른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옷을 입는 마음과 동기가 중요하다.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괜찮은 옷과 물건으로 자신이 높아지고자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인류 최초로 옷을 입은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 죄로 눈이 밝아졌다. 그래서 수치를 가리고자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입었지만, 금세 말라 부서졌다.(창 3:7) 하나님 앞에 나가지 못하고 두려워 떨고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생명의 피를 흘려 가죽옷을 입혀주셨다.(창 3:21) 우리에게 은혜로 옷 입혀 주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괜찮은 사람이 되어보려고 노력하며 세상을 따르던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셨고, 새로운 옷을 입혀주셨다. 새로운 옷이란 어떤 옷일까? 그리스도의 옷.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

옷을 입는다는 표현은 헬라어로 ‘엔뒤오’(ἐνδύω)이다. ‘안에, 의하여’라는 뜻의 전치사 ‘엔’(ἐν)과 ‘들어가다, 입장하다, 잠수하다’라는 뜻의 ‘뒤노’(δύνω)가 합쳐진 단어다. 옷 속으로 ‘들어가다, 스며들다’라는 말이 곧 의복을 걸치다, 입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뜻마저도 의역이 된 것이라고 한다. 직역하면 ‘옷 안으로 들어간다’이다. 결국,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옷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우리 학교는 복장에 관한 여러 규정들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평상복을 입다가 등하교 시 반드시 교복을 입는다. 특히 우리의 교복은 우리가 다음세대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확립해준다. 왜 이런 가이드가 필요할까? 가이드는 세상의 일시적인 유행으로 나를 감싸보려는 모든 시도를 막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 가이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옷 입기를 도전한다.

하교 시 터미널에서 온갖 멋을 낸 사람들 속에서 교복을 입은 내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래서 옷을 갈아입기도 하고, 가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복음과 패션’이라는 주제 앞에서 나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자라는 믿음을 얻게 됐다. 나는 누구보다 패션에 민감했다. 하지만 주님은 믿음의 결단을 원하셨고 나는 학교 규정을 어기는 옷들을 다 버렸다.

‘하나님 나 부르실 때에 내 약함도 다 아셨지만, 그 약함까지도 멸시치 않고 지혜로 바꾸셨네 하나님 나 부르심은 오직 그리스도로 온전히 옷 입히려 하심이라’ 찬양 가사처럼 하나님은 처음부터 내가 얼마나 연약한 죄인인지 알고 계셨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혀 주시기 위해 불러주신 것이었다. 난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옷 안으로 들어가 덮어졌다! 그리스도인의 패션은 바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 [복음기도신문]

맹다솔(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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