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호 / 인터뷰]
지난 어느 봄날, 긴급한 기도 제목이 들어왔다. 시에라리온에서 사역하던 한 선교사가 말라리아로 위급하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은 긴급기도로 중보기도자들에게 전달됐다. 얼마 후 선교사는 병세가 조금 호전되어 3국에서 요양을 하고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입국했다. 몸이 아픈 와중에도 본지와의 만남을 허락한 그는 약도, 의사의 처방도 아닌 후원자들의 중보기도로 살아났다고 고백했다. 아픔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섬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안드레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고생하셨습니다. 몸은 회복되셨나요?
“제가 말라리아에 걸려서 급하게 한국에 나오게 됐어요. 2월 말에 걸렸죠. 그때 저와 함께 사는 형제 이브라임(19)이 계속 밥을 해서 날랐어요. 저는 함께 사는 현지인 아이들과 동일한 식단으로 먹어요. 당근, 감자, 양파, 한국에서 가져간 멸치, 김. 그러다보니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는 게 이상하죠. 한번 병에 걸리면 몸이 축나요. 저는 이번에 세 번째 말라리아를 앓았는데요, 이 병은 별다른 치료법이 없어 몸이 스스로 이겨내는 걸 기다려야 해요. 말라리아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충(蟲)’이에요. 말라리아는 면역이 생기는 게 아니라 한번 걸리면 더 쉽게 걸리죠. 충이 몸 안에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양분을 다 먹어요. 그래서 말라리아는 몸이 급격하게 나빠져서 죽는 병이죠. 그 충을 죽이려고 먹는 약은 모든 병균을 죽이는 독한 약이라 간과 비장을 다 상하게 해요.”
– 정말 위험한 상황을 넘기셨군요.
“아프리카에선 모두가 그렇게 살아요. 10억 인구의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 년에 800만 명이 말라리아로 죽어요. 신약개발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빨리 개발이 되지 않고 있어요. 크리스천 청년들이 취업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영혼에게 정말 필요한 이런 일들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또 최근에는 허리가 많이 안 좋아서 지팡이를 짚고 다녔어요. 단기 팀을 받아야 할 때였는데 못 받을 상황이었죠. 그때도 약과 처방이 아닌 저를 기도로 후원해주시는 분들의 기도로 일어났어요. 그곳에서 살아가는 것은 기도의 능력이에요.”
질병이 일상인 곳에서
정말 필요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
– 말라리아가 일상인 그곳에 어떻게 가게 되셨나요?
“2002년에 단기선교로 처음 갔었죠. 신학을 하지도 않았지만, 도움이 필요한 땅이라 생각해서 무작정 갔어요. 그 당시가 전쟁이 끝난 뒤라 너무 상황이 안 좋았어요. 4살 된 아이가 집에서 일을 해야 했고, 하루에 한 끼 먹으면 많이 먹는 것이었죠. 그런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정말 아팠어요.
몸은 말도 못하게 힘들었어요. 말라리아, 장티푸스… 3개월 만에 15kg이 빠질 정도로 너무 안 좋아져서, 1년을 예상하고 나간 단기선교를 4개월 만에 마쳐야 했어요. 돌아와서 2년 동안 교회에서 아프리카 선교팀도 만들고, 기도모임도 시작하고, 단기선교도 보내고, 이렇게 열심히 섬겼어요. 사실 4개월 만에 나올 땐 ‘다시는 여기 안 온다.’는 마음이었어요. 너무 힘들었거든요. 생활도 불편했어요. 전기도 없고 물도 없고. 사람들도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면서 ‘뭐 얻을 것 있을까?’하고 항상 외국인을 주시하니까요. 처음 그런 사람들을 겪으며 다시는 안가겠다고 했었죠.”
– 그런데 어떻게 다시 가게 되었나요?
“시에라리온에서 찍은 사진들을 인화해서 보던 중, 제가 머물던 곳 근처의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조성한 난민 캠프에서 찍은 사진을 보게 됐어요. 2만 명 넘게 사는 난민 텐트촌이었어요. 공황 활주로 근처에 있는 곳이라, 비행기에서 내리면 200~300명씩 몰려들어요. 외국인이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기대하기도 하겠죠. 몰려든 아이들을 위에서 찍은 사진을 보는데, 한 명도 신발을 안 신고 있더라고요. 그때 당시 슬리퍼가 한국 돈으로 300원 정도 했거든요. 200명 해봤자 6만 원인데. 그게 너무 속상했어요. 다 사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잖아요. 마음이 조금씩 변해갔어요. 결정적으로 2004년 말에 송구영신예배 메시지를 통해 다시 한 번 선교사로 헌신했어요. 옥한흠 목사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행복한 나그네 인생길을 가야한다. 우리의 목적지는 천국이지 세상이 아니니까, 돈주머니 찰 생각하지 말고 살아라.’고 하시는데, 그 메시지에서 제 자신도 선교지로 안 나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회개하고 나갈 것을 결단하고 3개월 만인 2005년 3월 9일, 시에라리온 땅을 밟았어요.”
그리스도인들은 행복한 나그네 인생길을 가야한다
– 주고 싶은 것이 많으셨겠어요.
“사역을 하면서 항상 고민이 됐던 부분은 ‘빵이 우선인가, 복음이 우선인가.’였어요. 상황이 너무 좋지 못하니까 빵을 줘야 살 것이고, 살면 그 다음에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죠. 결론적으로는 복음이 우선이에요. 제가 빵 없이도 살았으니까요. 복음이 없이는 빵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처음 갔을 때는 후원이 없었고, 10개월 뒤에 매달 친구 두 명이 보내 준 3만원으로 2년을 살았어요. 다른 선교사님께 얹혀살기도 하고, 현지인과 동일한 조건의 집에서 살다가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나오기도 했죠. 그러나 저를 부르신 주님이 주신 소명은 흔들리지 않았어요. 그러다 몸이 아파 사역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미국으로 신학 공부를 하러 갈 기회가 있었어요. 공부를 마치고 주님은 제게 시에라리온으로 돌아갈 것을 말씀해주셨고 저는 기쁘게 순종했어요.”
– 시에라리온에서는 어떤 사역을 하고 계신가요?
“저는 시에라리온 수도에서 7시간 떨어진 K마을에서 10대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국경인근지역 도시인데 5만 명의 인구 중에 80%가 무슬림인 마을이에요. 교회가 37개가 있지만 제일 큰 교회의 인원은 200~300명 정도에요.
제 사역 대상은 가난한 사람이긴 하지만 제한을 두지는 않아요. 늘 열려 있어요. 아픈데 약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제가 가져간 한국 약을 주는데요, 그런 도움을 받는 무슬림들 중에서 부유한 사람도 있어요. 가난한 사람들도 약을 받으러 많이 오지만 무조건 주지는 않아요. 저는 약을 줄 때 분명한 목적을 갖고 나눠요. 복음 전파. 약을 주면서 항상 기도해요. 교회에 나오라는 얘기는 안하지만, ‘오늘 나랑 기도하자. 나는 널 위해 항상 기도한다. 하나님이 너를 지켜보고 계신다.’고 말하며 기도하고 줘요. 이게 사실 무슬림 전도방법이에요. 목적은 있어야 하지만 급하게 다가가지는 않아요.”
– 그렇군요. 기도를 하면 거부반응은 없나요?
“네, 4~6개월 정도 약을 준 집은 제가 계란 사러가는 집 주인의 작은 엄마에요. 5명의 아내 중 둘째 부인인거죠. 부인들이 다 같이 모여 사는 그 집에 한번은 식사초대를 받아 갔는데 셋째 부인의 다리가 코끼리 다리만큼 부어 있었어요. 약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약으로 할 수 없다. 지금 너를 위해 기도해주겠다.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치료해 주실 거다.’라고 말하며 함께 기도했어요.”
– 아이들과 함께 사시는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세요.
“저는 산 중턱에 살아요. 저희 집에서 내려다보면 50가구가 보이는데 불을 밝힌 집이 하나도 없어요. 전기는 물론이고 발전기도 없는 상태죠. 저희 집만 발전기가 있어서 저녁에 잠깐 불을 밝혀요. 발전기도 기름으로 돌리니 때문에 하루 종일 쓸 수 없으니까요. 그 곳은 정말 앞길이 보이지 않는 가난함이 가득한 곳이에요. 작년에는 6명이 저희 집에 왔었는데요, 지금은 3명의 아이들과 살아요. 조니(19), 모하멧(22), 이브라임(19). 모두 남자 아이들이에요. 그리고 바로 옆집의 모시마(16)라는 여자아이도 양육하고 있어요. 시에라리온에서는 시골에서 도시로 아이를 공부시키러 보낼 때 참 대책 없이 보내요. 자기 마을에 있다가 도시로 나온 사람한테 무턱대고 보내요. 사전에 논의도 없이요. 그렇게 올라온 아이들은 눈칫밥 먹으면서 알아서 생존해야 해요. 부모가 생활비를 주는 것도 없어서, 자진해서 집안일 하고 밥을 안주면 못 먹어요. 이 아이들에게는 뭐가 되고 싶다는 미래가 없어요. 일단 먹고 살아야 하죠. 사기를 치든 도둑질을 하든 부자가 되면 좋지만 안 되면 만다는 생각이에요. 제가 10대 애들을 데리고 살게 된 이유는 아이가 성인이 되어 똑같이 반복되는 가난에 사는 게 안타까웠죠. 제발 저에게서 조금이나마 무언가를 배워가서 그걸 동기 삼아서 자립했으면 하는 바람에 아이들과 살게 됐어요.”
“이 나라 책임지는 지도자 양육 소망”
– 아이들과 함께 사는 삶은 어떠신가요?
“쉽지는 않아요. 애들이 우리 집에 오는 조건은 딱 하나였어요. 거짓말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않는 것. 그런데 그걸 못해요. 심부름 보내면 그 돈으로 뭐 사먹고 가로채고 거짓말하죠. 여러 번 봐줘요. 그런데도 작년에는 도저히 안돼서 5명을 내보내기도 했어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인식의 전환인데, 그게 참 어려워요.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이 사람에게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당장 눈앞의 돈 때문에 사람을 속여요. 지금은 볼펜 하나를 얻으려고 속이지만, 5년이 지나면 핸드폰, 10년 뒤에는 더 큰 것을 위해 속이죠. 부자가 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시에라리온 부자들은 이렇게 부자가 됐어요. 저는 아이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시켜서 그 아이들이 나중에 이 나라를 정직과 소망으로 이끄는 정치지도자가 되길 바라고 있어요. ‘하나님이 나의 유일한 신이시고, 구원이시고, 그분이 아니면 나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요. 삶을 그렇게 사는 그리스도인이요. ‘하나님이 내 삶을 바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 한 명을 위해 사역하고 있어요.”
– 같이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가르치나요?
“우리 아이들은 다 무슬림이에요. 그러나 새벽에 일어나 학교가기 전에 말씀보고 기도해요. 주에 한 번씩 성경공부도 해요. 아이들이 비록 무슬림이지만 성경공부에 대한 거부감도 별로 없어요. 이슬람에 대해 잘 모르는거죠. 그래서 더욱 변화되기 힘들어요. 그냥 자신이 필요한 상황에 맞출 뿐, 진심으로 믿지를 않아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죠. 같이 사는 모하멧이 목사가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 이유는 하나,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이에요. 이 땅의 목회자들은 헌금을 속여서 보고하고 횡령하는 실정이에요. 진정 복음으로 선 교회가 없다고 할 정도에요. 그걸 말하는 거죠.
말씨름을 많이 해요. 진짜 한 명이라도 ‘내가 하나님으로 인해 만족합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기를 바라요. 정말 눈물로 기도하고 있어요. 우리 어머니가 날 위해 기도하셨던 것처럼 말이죠. 지금의 성도들은 누군가의 눈물의 기도와 성령의 인도하심 없으면 지금 현재 있을 수 없죠. 그렇듯이 제가 그들에게 그 한 명이 되고 싶어요. 도와주고 동역하고. 앞으로도 눈에 보이는 사역들은 할 마음이 없어요. 이 사람 몇 명으로 20년, 30년 뒤에 나라를 책임지는 지도자로 세우고 싶어요.” [복음기도신문]
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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