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성취 기도는 끝났어요. 이제는 열방을 위해 기도해요”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김문화 권사(문화교회)

[225호 / 인터뷰]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우리 어머니들의 눈물어린 기도가 있었다. 우리나라 70~80년대 기도원에는 항상 기도하는 어머니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김문화 권사도 그중 한 명이었다. 김 권사는 최근 코로나 사태로 교회에 기도를 하러 갈 수 없어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유튜브로 진행되는 매일 기도회에 참여할 수 있어 숨통이 트인다고 했다. 기도를 하며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코로나로 교회 안에 들어온 이단을 드러내시고 한국 교회에 일을 하고 계신다며 최근 기도하며 받은 은혜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세계기도정보 책을 보면서 매일 1시간씩 기도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엄청 어려웠어요. 기도정보 책 글씨도 작고요. 지금은 괜찮지만 처음에는 나라가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르고 기도정보 내용만 읽고, 생각나는 대로 기도했어요. 그렇게 몇 년을 하는데, 졸기도 하고 그랬죠. 그래도 졸더라도 그 기도시간을 지키려고 했어요. 몇 년이 지나고 나니까 하나님이 열방을 사랑하시는 마음을 부어주셨어요. 지금은 열방을 위해 기도 안하면 너무 허전해요.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왜 그 쉬운 기도를 못하나. 내가 열방에 나가서 하는 것도 아닌데요.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아요. 주님이 제 일생을 통해 알려주신 것이죠.”

하루에 한 시간씩 매일 기도의 자리를 지키다

– 그렇게 기도하신지가 얼마나 되셨나요?

“한 15년 됐네요. 복음을 알고 나서 기도가 바뀌었어요. 내 공로로 천국 가는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죽으셨기에 믿음으로 갈 수 있다는 게 믿어지면서, 내가 바라던 우상도 없어지고 그때부터는 소원성취 기도도 끝났어요. 이제는 열방을 위해 기도해요. 열방을 위해 기도하려고 자리에 앉으면 나보다도 하나님이 먼저 기뻐하신다는 마음을 주세요. 그 나라를 품고 기도하다 보면, 그 나라를 위해 기도 못 했던 것이 죄송해요.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기도를 안 할 수 없어요. 이 일이 너무 중요한 일이죠.”

– 많은 사연이 있을 것 같네요. 어떻게 복음을 알게 되셨나요?

“결혼하기 전에는 예수님을 안 믿었어요. 우리 큰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냈는데, 지나고보니 기독교 학교였어요. 학부모 모임에 가면 늘 예배를 드렸어요. 절기마다 학교 모임에 가면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를 믿어야 되겠구나 생각하게 됐죠. 그렇게 교회를 나가게 됐어요. 생각해보면 우리 친정어머니가 예수를 믿고 권사로 교회를 섬기다 돌아가셨는데, 아마도 어머니의 기도로 이렇게 된 것 같네요. 지금 교회 나간 지 40년 됐어요. 처음에는 그냥 왔다 갔다 했어요. 그때는 우리 아이들을 좋은 환경에서 교육시키고 싶어서 강남 8학군으로 옮겨와서 학교를 다니게 했어요. 그러면서 새벽기도를 했어요. 대학을 가야되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쓸데없는 짓인데, 그때는 자녀가 서울대 가서 직장 얻는 게 큰 복인 줄 알았어요.”

– 맹자 어머니가 생각나네요.

“저에게 두 아들이 모두 우상이었어요. 친정과 시댁 모두 딸부자였는데, 제가 아들 둘을 낳았으니, 세상이 다 내것 같았어요. 그래서 두 아들을 위해서만 평생을 살았던 것 같아요. 첫 아들은 원하는 학교에 못 들어가서 둘째에게 기대를 걸었죠. 아이들의 삶이 나보다는 나아야 되지 않겠나 생각해서 열심히 기도원에 다녔어요. 그때는 평화시장에서 장사를 할 때였는데, 장사 끝나고 밤 12시에 기도원에 들어가서 새벽 4시에 돌아왔어요. 70일씩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네 번 했어요. 280일을 연속 기도한 셈이죠. 70일을 하는 동안 하루라도 빠지면 다시 시작했어요. 그럴 정도로 오직 우리 아이들 일류 대학 입학과 성공을 위해서 기도했죠. 그때는 잠도 2~3시간만 잤어요. 그렇게 수십 년을 했어요.”

자식 위해 기도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우상이었다

– 대단한 열정이시네요. 아드님은 원하는 대학에 갔나요?

“아니요. 작은 아들은 엄마가 원하는 서울대 간다고 재수했는데, 결국은 다른 학교를 갔어요. 근데 대학생이 되고 나서 방학 때는 중국에서 탈북자를 섬겼어요. 한번 가면 방학 끝날 때까지 연락이 안됐어요. 그러면 기도밖에 할 수 없어서 기도원에 가서 밤새 우는 거예요. 아들이 떠날 때는 자기 옷을 가방에 잔뜩 가져갔다가 돌아올 때는 허름한 가방에 속옷만 가지고 돌아왔어요. 옷이 없는 탈북자들에게 다 주고 왔다는 거예요. 그리고 성경공부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하기 때문에 연락이 안 된다고 했죠. 그때는 그게 선교하는 것인 줄도 몰랐어요. 그런데 아들은 그때부터 선교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 그렇게 애지중지 하던 아들이 선교를 한다고 할 때 어떠셨어요?

“반대했죠. 저는 아들을 떼어 놓고는 못 살았어요. 사실 두 아들이 6개월 사이로 군대에 갔는데, 아들에게 고기를 먹이고 싶어서 거리도 먼데 한 달에 한 번씩 고기를 싸가지고 갔죠. 한번은 대장이 이제 그만 오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면회 가서 하루라도 데리고 나오면 보초 서는 것도 덜하게 될까봐 매달 갔어요. 둘째 아들은 복학하고 어학연수도 다녀왔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어요. 그러니 선교사 한다고 할 때 제가 얼마나 반대했겠어요. 선교사 할 거면 신학을 해서 목사를 해라. 교회에 선교사님들이 한 번씩 와서 설교하는 것 보면 너무 안됐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건 절대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서 금식기도원으로 들어갔죠.”

– 기도하고 응답은 받으셨어요?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아들에게 선교사 하라는 말씀을 주셨으면 나에게도 말씀해 주셔야 아들을 보내지 않겠냐면서 계속 기도했어요. 근데 옛날 일이 문득 생각났어요. 사실은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교회 수련회 때, 강사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면서 아들이 둘 있는 사람은 하나를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죠. 그래서 제가 아멘했죠. 둘째가 3살 때였는데, 근데 그걸 잊어버리고 살다가 그날 생각이 난 거예요. 주님이 ‘둘째를 나한테 바친다고 하지 않았냐. 승용이는 내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내가 한다고 해놓고 못한다고 하면 되겠나 하고 짐을 싸서 내려왔어요. 내가 하나님한테 약속을 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보내야겠다 생각했어요.”

– 그래도 주님께 드린 약속대로 순종하셨네요.

“그렇게 내려왔는데도 보내는 건 너무 어려웠어요. 아들한테 어릴 때 선교사로 바치기로 했었다는 얘기도 안 해줬어요. 그 말에 더 선교사 한다고 할까 봐요. 이 얘기는 아직까지도 아들이 몰라요(웃음). 하나님한테 약속한 건 있고, 얼마나 골방에 앉아 기도했는지 몰라요. 기도만 하면 눈물이 한없이 나왔어요. 왜 장로님 아들들도 많고 목사님 아들도 많은데, 왜 믿음도 없는 저 같은 사람의 아들이 선교사를 해야 하는지, 울다가 고맙다고 하기도 했다가 그랬어요. 나중에는 주님이 ‘너 근심 걱정 말아라’는 찬송을 주셨어요. 다시 기도원에 들어가서 기도를 했어요. 기도원 권사님께 아들이 선교를 한다는데 내 맘이 안 편하다고 하니 기도하라고 해서 또 70일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하루에 100번씩 불렀어요.”

자식을 기쁨으로 선교사로 보내다

– 주님이 선교사 어머니의 마음도 이렇게 준비시켜 주셨네요.

“그러는 동안 아들은 결혼을 하고 이제 중국으로 선교를 간다면서 신혼살림도 다 정리해서 나눠주고 가방 2개만 놔두고 나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기다리는 동안 교회 청년이 소개해 준 복음학교에 다녀오더니 주님이 부르셨다면서 한 선교단체에 헌신을 했어요. 근데 훈련받는 1년 동안은 연락도 못한다는 거예요. 군대에 갔을 때도 한 달에 한 번은 봤는데 1년 동안 못 보니까 밥이 입에 들어가지를 않아요. 그때 살이 빠져서 몸무게가 43킬로까지 됐죠. 시간이 좀 지나고 아들이 저에게 복음학교를 가 보라고 했어요. ‘나는 안 간다. 너 하나로 만족한다.’고 했어요. ‘복음학교에 가야 복음이 있냐? 복음으로 여태까지 살았는데 뭘 복음학교를 가냐?’면서 안 갔죠. 그런데 계속 일정을 알려주면서 권면을 해서 결국 가긴 갔어요. 학교에서 강의시간이 꼭 저에게 하시는 말씀 같았어요. 아들 대학 보내려고 기도하는 권사 얘기, 아들이 선교사 되겠다고 하는데 막는다는 권사 얘기. 일주일 동안 내가 잘못한 것만 생각나서 회개하고 울고만 왔어요.”

– 그러셨군요. 그 과정을 통해서 복음을 새롭게 아셨나요?

“근데 강의 한번 듣는 것으로는 이해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복음학교 섬김이를 8번 했어요. 갈 때마다 분명 같은 내용인데도 처음 듣는 얘기 같았어요. 6번째 갔을 때, 비로소 이 복음이 무엇인지 알아들었어요. 내가 열심히 해서, 내 공로로 천국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으로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예수님이 그것 때문에 죽으셨다는데 왜 깨닫지 못했나.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 깨달아지면서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더군요. 그렇게 이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깨닫지 못했구나. 우리 아들이 이 말씀을 깨닫고 그렇게 선교사로 헌신했구나 이해가 됐어요. 여기에서 떨어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중보기도학교 훈련을 받고 섬김이도 했어요. 복음학교를 한두 번 해서 제가 달라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안되니까 계속 갔죠. 하나님의 말씀으로, 십자가로 사는 게 이런 거구나 깨달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며칠 있으면 옛날 습성이 나오니, 그래서 여기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거 같아요. 그렇게 오늘에 이르렀네요.” [복음기도신문]

<이상 225호에 게재>

– 그렇게 복음과 기도의 삶을 살면서 어떤 은혜가 있으신가요?

“복음을 만나고 나니까 하나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이 기뻐요. 매일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도 기쁘고요. 비록 그 말씀이 오늘 당장 이뤄지지 않아도 그런 기도가 쌓이니까 그것으로 기뻐요. 그 기도가 쌓여서 우리 아들이 선교사가 됐고요. 가문의 영광이죠. 누가 시켜서 하겠어요. 이전에는 헛된 마음으로 세상 것을 구하는 기도를 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것이 기도의 씨앗이 되어 선교사로 세우신 것 같아요. 자식이 우상이 되서 한 기도였지만, 그것을 발판으로 삼으셔서 나를 여기까지 세워주셨죠. 기도가 소중하다는 것도 알게 되고 기도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도 감사해요. 돌에다 대고 기도할 수도 있는데 왕이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게 가장 귀한 축복이죠. 그런 복을 주신 게 감사해요. 주님은 반드시 기도에 응답해주세요.”

십자가 복음을 만나고 기도가 바뀌다

– 네. 또 기도하시면 받은 응답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 체코 아웃리치에서(제공: 김문화 권사)

“중보기도훈련을 받으면서 해외로 아웃리치를 나갔는데 내가 기도한 게 아웃리치 하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았어요. 나는 중언부언 한 기도 같았어도 하나님이 이렇게 일하셨구나 보게 됐죠. 체코에 갔는데, 그곳에 우리나라 양화진처럼 선교사 묘원이 있었어요. 지금도 그곳엔 많은 선교사님들이 일하고 있고요. 그것을 보는데 그 나라에서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게 내 눈으로 보이는 거예요. 나는 그 일을 위해 적은 기도를 드렸지만 주님은 백 배, 만 배 일하고 계신 것을 보았어요. 나의 작은 기도로 주님이 하신 선교사역은 어마어마했어요. 이 맛으로 선교사를 하는거구나 생각했어요. 이런 기쁨이 없으면 어떻게 선교사 하겠어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모르니까 선교사를 못 하는 거였구나. 이래서 선교사로 나갔구나 생각했어요.”

– 기도하는 한국 어머니의 참 모습이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기도하시면 받은 특별한 은혜가 있으신지요?

“고난주간에 집에서 기도하며 많은 은혜가 있었어요.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열방을 사랑하는 그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거구나 확실하게 깨닫게 됐어요. 예수님이 하나님한테 불평 한마디 없이 십자가를 지셨구나 생각하면 순종 못할게 없지요. 지금은 교회에 못나가고 집에서 이렇게 예배드리고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기쁘고 감사해요. 이 땅에서 육신으로 살지만 너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거 같아요. 주님이 함께 하시니까요. 아침에 일어나면 말씀을 붙들어요. 그 말씀 하루의 일과가 끝날 때까지 삶에서 다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 내 마음을 하나님께 순복하며 살아가는 게 행복해요. 최근에는 주님이 큰 은혜도 주셨어요.”

– 조금 더 설명해주세요.

“12월 2일이었는데, 교회 가는 길에 심장이 답답하면서 갑자기 숨을 못 쉬겠는 거예요. 계속 심장 약을 먹고 있었는데 그날은 좀 안 좋은가 생각하고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 해서 겨우 예배를 드리고 왔어요. 약을 먹고 잠이 들었는데 밤에 갑자기 숨이 막혔어요. 119를 불러서 병원에 가서 다음날 시술을 하라고 하는데, 다른 수술도 많이 해봤지만 심장은 두려웠어요.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숨을 못 쉬니까 금방 죽을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숨을 못 쉬는 걸 통해서 주님이 말씀해주셨어요. 숨 쉬는 것이 내가 쉬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었어요. 그동안 하나님의 허락하심 없이는 새끼손가락 하나도 들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누누이 들어왔으면서도 잊고 있었어요. 그동안 움직이고 살게 하신게 다 하나님의 은혜였는데 깨닫지 못했던 것을 회개했어요. 시술 전날 기도했어요. 시술하다가 하나님 품으로 가도 충분하다고요. 그날은 기도하면서 밤을 새웠어요.”

– 생명으로 주님을 만나신 밤이었네요. 시술하는 시간동안 어떠셨어요?

“이번 시술을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해주실 말씀을 들려달라고 기도했어요. 근데 얼마나 아픈지. ‘하나님 너무 아파요.’ 하면서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게 하시면 좋겠다고 계속 기도했어요. 근데 주님이 ‘네 고통이 내 고통만하냐.’는 마음을 주셨어요. ‘이미 그 고통은 내가 다 해결했다.’고요. 그 말이 마음에 와 닿는데 펑펑 울었어요. 아파서 운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함께 해주시는데 십자가만 생각하면 아프다고 투정하는 내 자신이 하나님께 죄송해서 울었어요. 그리고 아픈 게 싹 없어졌어요. 수술하고 나왔는데도 날아갈 것 같았어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데 더 바랄게 뭐있나. 오늘 당장 주님이 저를 불러가도 더 바랄게 없습니다.’ 병실에 와서 얼마나 울면서 기도했는지 몰라요.”

– 고난의 시간에 주님을 깊이 만나셨네요.

“이 감격을 너무 나누고 싶은데 이 말이 통할 사람이 선교사 아들밖에 없었어요. ‘이 말을 어디에도 할 수 없는데, 참을 수 없어서 전화했다.’며 전화를 걸었죠. 내가 이 수술을 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서 감사하다며 나눴는데, 아들이 울더라고요. 저도 함께 울었어요.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사랑하시는 확신을 주시려고 아픔을 주셨나보다고 했어요. 맞아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확실하게 알아진 것이 너무 감사해요.”

– 마지막으로 권사님의 개인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십자가를 떠나서는 살 수 없으니까 거기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도록 기도해주세요.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주님 나라 위해 살다가 하나님 품에 안겨야죠. 내일 당장 불러도 너무 감사하고요. 이렇게 좋은 하나님을 내 입으로 증거 하지 못하고 사는 게 너무 죄송스러워요.”<끝>

Y.K.

▶ 체코 아웃리치를 통해 기도 응답으로 체코의 전도자들을 만났다.(제공: 김문화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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