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통신] 카렌 난민 소녀, 학생회장 되다

완이화 가족과 함께(본지 통신원 제공)

아동기는 삶에서 매우 역동적인 기간이다. 이 기간에 아이들은 특정한 문화의 양식과 규칙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몸에 익힌다. 이것을 ‘문화화’또는 ‘사회화’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평생 사용할 언어는 물론 자기의 이해, 가치의 기준, 국가관 등등도 자연스럽게 체득한다. 단일민족이었던 한국의 아이들은 부모와 친구들 그리고 교사들의 영향을 통하여 이런 과정을 지나왔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과정을 자연스럽게 체득하지 않는다. 오늘 만난 카렌 난민 소녀 ‘완이화’는 그런 경우이다.

오늘 이화네 가족을 만난 것은 어떤 목적이 있었다. 이화라는 아이가 노래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이전부터 들었는데 그의 가족을 만나서 의논하고 싶었다. 카렌 난민을 돕는 FNC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난민 어린이 중에 재능 있는 아이를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지 5년이 된 초등학교 6학년인 ‘완이화’는 놀라울 정도로 한국말을 잘한다. 뿐만 아니라 밝은 모습에서 나오는 한국적인 예의나 태도는 몸에 배여 있어서 놀라울 정도이다. 그녀의 배경을 살펴보면 예사스럽지 않다.

이화는 태국의 서북부에 위치한‘매솓’에서 태어났다. 아시아하이웨이 1번 도로가 연결되는 그곳은 현재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무역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도시이다. 특이하게 약 20만 명 버마인 인구가 태국인보다 더 많은 다민족 경제도시이다. 국제 정치관계에서도 중요한 지역이다. 1988년 미얀마 군사정부의 민주화 항쟁을 진압한 이후 미얀마 민주화 세력의 중요한 피신처였다. 뿐만 아니라 1998년에 카렌과 버마의 투쟁과정에서 발생한 난민을 다루는 유엔고등판무관(UNHCR) 지역사무실이 설립되었다. 버마민주화 운동가, 카렌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사업가들과 이주민 노동자들, 국제구호기관 직원들과 연구가들, 태국의 국경을 관리하는 군인과 관료들이 상주한다.

이화는 복잡한 매솓의 정치, 사회적 상황이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집안에서 태어났다. 태국에서 태어났고, 태국 국적 소유자이다. 그렇지만 한국정부에 난민자격을 허락 받았기에 앞으로 한국시민이 될 것이다. 방송에서는 카렌족이라고 하지 않고 미얀마 사람이라고 한다. 카렌족이지만 집안에서는 식구들끼리는 태국어를 사용한다. 그녀는 단일한 문화와 환경 속에서 ‘사회화’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다. 서로 충돌될 수 있는 요소들이 겹치기도 했고 때로는 긴박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부모와 조부모는 버마인을 싫어하고 싸우기도 했지만 버마인들은 그녀를 좋아한다.

“너는 누구라고 생각하니?”
자신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는지 궁금하여 질문을 한다.
“저는 큰누나이고, 큰딸이며, 엄마가 기대하는 딸입니다.”
엄마가 기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니 나름 적지 않은 부담이 있는 것 같다. 다른 질문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했다.
“태국 왕은 누구라고 생각하니?”
“네. 태국 왕은 착한 분이고,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나라를 발전시켰고, 국민을 사랑하며 배울 점이 많은 분이십니다.”

그의 대답은 태국의 일반적인 학생들과 동일하게 대답한다. 태국을 떠난 지 5년이 되었다. 앞으로 태국과 관련된 것은 없을 것이다. 민족도 카렌이고, 앞으로 그의 미래를 펼치게 될 곳도 아니다. 그래도 그 안에 태국 왕을 사랑하는 태국 국민에 대한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솔직히 카렌족은 잘 모르겠습니다. 카렌 역사 교육을 받지 못하였고 어려움을 직접 겪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버마군으로부터 핍박당한 일을 들었다. 할아버지는 버마군과 전투를 했던 카렌 군인이었다. 그렇지만 이화는 그녀의 조부모는 물론이고 어머니와도 다른 관점으로 미얀마와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 그녀가 직접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문화충격을 여러 번 경험하였던 것 같다. 자기가 누구인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당혹스러운 순간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정리가 안된 부분들이 보인다. 대조적인 국가정체성과 민족정체성이 묘하게 얽혀있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역할과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나눈다.
“이화는 힘들 수도 있지만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위치가 될 수 있단다.”
“한국 사람과 카렌 사람 그리고 버마 사람들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어 그러기 위해서는 이화가 스스로 다양하고 건강한 자기 정체성을 가져야 한단다.”
“카렌인과 버마인으로 그리고 한국인으로 자부심이 있어야 한단다.”
“부모나 할아버지세대에는 서로 싸웠던 버마인들도 포용하고 사랑해야 하는데 십자가의 사랑으로 가능할 것이란다.”

이화가 나의 이런 의견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는지 모른다. 다양한 요소들이 실타래처럼 꼬인 이화의 상황 속에서 뭔가 특별한 징조를 본다. 첫째 징조는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나누는 그의 밝은 모습을 통해서 이다.

“오늘 제가 학교에서 학생회장이 되었습니다”
100명 정도의 대안학교인데 오늘 학생회장 선거에서 학생회장으로 뽑혔다는 것이다.
“출마하면서 무슨 공약 같은 것을 했니”
질문을 하니 생각보다 훨씬 깊은 내용의 공약을 했었다.
“첫째는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둘째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힘들어 하는 친구들이 잘 지낼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셋째는 모두가 기쁘게 학교생활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화는 이미 그 안에 다양하고 긍정적인 정체성이 잘 자리 잡고 있었다. 상호모순적인 상황들이 있었지만 나름 잘 소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징조는 이화와 가족을 위해 성심으로 돕는 분이 있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음악을 업으로 하는 분이시다. 그녀는 그녀의 은사와 형편을 따라 가족처럼 돌보고 있다. 이화의 개인 교습, 곡 선정, 지방 방문 동행, 방송 출연 등을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다. 나오미와 룻을 위하여 예비한 보아스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때론 너무 어렵다. 상충적인 요소들이 복잡하고 얽혀 있는 경우가 그렇다. 초등학생이라고 해서 쉬운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는 묘하게 관계한다. 이화를 둘러싼 복잡한 요소들은 우연한 일은 아니다. 하나님은 이화에게 남들과 다른 아동기의 상황을 허락했다. 그가 경험하는 ‘사회화’의 과정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예상 못할 사람들과 사건들을 준비하여 놓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이화는 뚜벅뚜벅 걷고 있다. 화해와 평화가 필요한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의 스토리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피어날 수 있다. 우리의 예상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역동으로 이화가 그 평화와 화해의 중심에 서기를 소망한다. <무익종(본지 통신원)>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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