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두렵지만, 주님의 사랑으로 이기고 있어요”

주님 사랑으로 충분한 김상용, 전진희 집사 부부(게르교회)

경기도 광주의 가파른 골목을 올라 김상용 집사의 집에 도착했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모습치고는 매우 건강해 보였다. 자신은 인터뷰할 자격이 안 되는 것 같다며 밝은 얼굴로 나눠주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죽음을 삼킨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보였다. 주님과 함께 하는 김 집사 부부의 행복한 암투병기를 들어봤다.

– 암이 언제 처음 발병된 거죠?

김상용(이하 김): “작년 7월에 처음 암 진단을 받았어요. 한 달여 동안 휴직을 준비하고 인수인계를 마쳤어요. 병원에서는 치료를 위한 검사를 받고 있었고, 만성이기 때문에 급성처럼 당장 치료가 필요한 건 아니었어요. 그러나 병원에서는 언제 급성으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만성일 때 조혈모세포 이식수술을 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러나 우리는 ‘아직 만성이다. 주님께 엎드리겠다.’며 보존적 치료만 하겠다고 했어요. 주님께 엎어지기 위해서 8월 말에 휴직계를 냈어요. 그리고 9월 초에 복음학교 섬김이를 지원했어요. 그동안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복음학교에 가는 일이었거든요.”

작년 7월, 암 진단을 받다

– 예상 밖인데요. 보통 암에 걸리면 병원에 입원부터 할 것 같은데요.

김: “그때는 의학의 발전과 한계를 동시에 발견했기 때문에 의학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나를 고치실 것을 믿었어요. 그래서 그동안 시간이 없어 참여하지 못했던 복음학교 섬김이와 중보기도학교 훈련을 받기로 한 것이죠. 주님께 엎어지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전진희(이하 전): “남편 직장이 바빠서 쉬는 시간이 없었어요. 주님이 이렇게 쉬는 시간을 주셨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복음학교를 한 주 마치고 나서 암이 급성으로 바뀌었어요. 병원에서는 급하게 골수검사 날짜를 잡아줬어요. 이렇게 빨리 검사 일정이 잡히기 드문 일이라며 우리에게 운이 좋다고 말씀 하셨죠. 그런데 그게 하필 중보기도학교가 개강하는 날이었어요.”

김: “치료를 받을 것이냐, 아니면 중보기도학교 훈련을 받을 것이냐를 택해야 했어요. 주님이 부르신 곳에 가기로 하고 훈련을 받기로 했어요.”

전: “이후에 3곳의 병원을 방문하여 항암치료가 바로 진행되지 않고 학교훈련을 받으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선택하게 됐어요. 덕분에 중보기도학교 훈련을 마칠 수 있었지요. 학교훈련과 모임이 월요일과 목요일에 있었고, 병원 진료도 월요일과 목요일이었어요. 진료가 있는 날에는 수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훈련과 모임을 위해 다음 날 수혈을 받기도 했지요. 그런데 남편 아웃리치 기간에 이식수술 일정이 잡혔어요. 남편은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며 기도했어요. 저는 주님이 부르셨는데, 아픈 몸이지만 이식 일정을 변경해서라도 가야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믿음의 걸음을 한발 또 내딛었는데, 주님이 건강하게 다녀올 수 있게 해주셨어요.”

– 의지가 매우 확고하셨네요.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김: “병원에서 왜 일정을 바꾸냐고 좋아하지 않았지만,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생각났어요. 병원에 맞출 것이냐. 하나님 편에 맞출 것이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을 할 순 없으니 당연히 하나님 편을 택해야죠. 병원하고는 일정 때문에 계속 마찰이 있었어요. 병원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주님이 원하신다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 순회선교단 중보기도학교 훈련 아웃리치 팀원들과 함께. 제공: 김상용 집사

수술 대신 기도 아웃리치를 선택

– 죽음이 두렵지 않으셨나요?

김: “순간적으로 죽음의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해요. 그러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돼요. 내가 주님 보시기에 어떤 사람일까. 죽음을 통해 비로소 그런 것들을 구체화 시켜보기 시작한 것 같아요. 입원하고 나서 내 주변에 있던 환자들이 한두 명씩 사라졌어요. 밤에 잘 때는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를 들어요. 이제 살고 싶지 않으니 죽여 달라고 비명을 지르기도 해요. 그러다 어느 날은 죽여 달라고 소리치던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제발 살려달라고도 하죠. 그들이 흘리는 눈물과 죽어 나가는 영혼을 볼 때, 저 죽음을 내가 맞는다면 ‘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남겨준 건 뭘까? 주님께는 내 삶을 뭘 드렸지?’ 생각해보게 돼요. 몸이 연약해지거나 마음이 연약해지면 두려움도 찾아와요.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면 나는 남은 시간에 뭘 해야 할까? 고민해요. 그때마다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준 건 아내의 기도에요. 말씀과 주변 사람들의 기도가 내가 약할 때마다 건져줬던 것 같아요.”

– 그때 주셨던 말씀이 있나요?

김: “이번 투병생활 중에 받은 말씀이 있어요. 로마서 8장 37~39절 말씀이에요.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랑하시는 이로 넉넉히 이긴다는 말씀이 우리를 붙잡아 주셨어요. 암에 걸려 기쁨이 없는 삶을 살 수도 있지만 주님이 이미 이기셨다는 것을 믿게 해주세요. 저에겐 아직 사명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주님이 아직 구원받지 못한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 같아요.”

– 아직 믿지 않는 가족이 있는 모양이군요?

전: “어느 날 함께 훈련받았던 전도사님이 집에 오셨다가 남편에게 ‘치료만 받다가 병상에서 주님나라 갈 거냐. 복음을 전하다 복음을 위해 죽으라고,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도전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도련님과 부모님을 저희 집에 초대해 치료 과정 중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나누고 남편이 만난 복음을 나눴어요. 남편은 ‘나는 지금 주님이 부르시면 기쁘게 갈 수 있다. 같이 천국에 가야 되지 않겠냐.’며 담대히 복음을 전했고 결혼 14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이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함께 기도했어요.”

– 감격적인 시간이셨겠네요.

김: “형이 은둔형 외톨이로 30년 넘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형을 바라보며 주님이 지금 제게 주신 사명을 생각하게 돼요. 38년 된 병자도 주님이 일으켜 주셨으니 형도 일으켜 달라고 기도해요. 가족 구원을 놓고 기도해왔는데 30년이 넘도록 형은 그대로고, 저까지 암에 걸려서 가족들 마음이 매우 힘들 거예요. 그러나 우리 가족이 살 길은 오직 주님뿐이에요. 30년뿐 아니라 이보다 더 시간이 걸려도 나를 통해 우리 가족을 모두 구원하신다면 그것처럼 기쁜 일은 없을 것 같아요.”

– 가족도 김 집사님도 속히 회복이 되길 바랍니다.

전: “오늘 아침에도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예배를 드리면서 나눴어요. 신명기 34장에 모세가 눈이 어두워지지도 않고 쇠하지도 않았는데 주님이 데려가셨죠. 그것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은 병들고 나이 들어 죽는 게 아니구나. 사명자는 사명이 다해야만 데려가신다는 것을 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우리의 사명은 열방을 구하는 거라고 다시 한 번 확증했어요. 올해 4월 조혈모세포 이식수술을 받았는데 경과가 좋지 않아, 어제 병원에서 수혈 등의 보존적 치료를 할때 시한부 6개월 남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마지막 치료방법은 조혈모세포 림프구 주입술인데요, 성공확률이 10%라고 했어요. 잠깐 마음이 낙심이 됐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힘차게 일어나게 해주신 게 너무 감사해요. 지금까지 고비도 여럿 있었어요. 인도하실 주님을 믿을 뿐이에요.”

가족에게 복음을 나누며

– 고비가 또 있으셨군요.

전: “작년 12월 3일부터 8일간의 고용량 항암치료 이후에 이식이 예정되어 있었어요. 그때 남편 아웃리치가 12월 9일 출발이었고, 아웃리치를 위해 계속 기도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11월 22일부터 갑작스런 고열로 응급실로 입원하게 됐어요. 간의 농양으로 고열이 났다고 했어요. 고열로 인해 급성으로 진행됐던 암세포 수치가 뚝 떨어지고, 각종 약들로 염증수치가 어느 정도 줄었어요. 회진교수님은 염증수치를 살피며 바로 이식수술을 진행할 계획이셨어요. 그때 전공의 선생님이 오셔서 남편에게 이대로 이식은 위험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저희는 이식을 미루고 퇴원했죠. 덕분에 남편은 아웃리치를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어요. 아웃리치 출발 일에 오전 일찍 외래 진료를 받았는데 외래주치의 교수님이 CT사진을 보며 ‘이것은 신의 뜻’이라면서 이대로 이식을 진행했으면 100% 사망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간부터 치료한 다음에 이식 일정을 다시 정하겠다고 하셨죠. 부르심 따라, 말씀 따라 가는 길이 가장 안전한 길이고 행복한 길인 것을 다시금 경험하게 됐죠.”

– 주님의 은혜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네요. 병간호가 힘들진 않으세요?

전: “다른 사람들은 투병 중에 몸이 힘들어 짜증도 내고 그러는데, 남편에게 너무 고마운 건 아파도 참고 인내하면서 짜증 한번 내지 않아요. 그게 신기해요. 말씀을 붙들면서 고통을 참아내는 것 같아요. 병원에서 절망적인 소식을 들어도 ‘여보! 쫄지 마.’ 한마디 하면 그때마다 ‘아멘. 아멘.’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고마워요.”

<이상 235호에 게재>

김: “저도 아내가 고맙죠. 암 병동에 있으면 많은 보호자들의 모습을 봐요. 보호자들의 말이 시간이 갈수록 험해져요. 환자나 보호자가 서로 짜증내죠. 그런데 아내는 1년 동안 함께 투병해오면서 낙심할 때면 손잡고 기도해주면서 위로자가 되어줬어요. 저는 면역력 수치가 매우 낮아 식사가 까다로워요. 끓인 것만 먹어야 되고 매일 세끼를 식단을 달리해가면서 양도 조금씩 해야 되고, 식기들도 매번 소독을 해야 되는데, 이렇게 섬겨줘서 너무 감사해요. 평생을 믿음의 반려자로 같이 있어 준다는 게 주님이 제게 주신 가장 큰 축복 같아요.”

– 끝으로 기도제목 나눠주세요.

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주님 부르실 그 날까지 살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여태까지 그렇게 못 살았거든요. 내 가족의 구원뿐만 아니라 열방을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전: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매일 새벽에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잠들기 전 기도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해요.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복음기도신문]

Y.K.

▲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제공: 김상용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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