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를 보며 까레이스키를 떠올리다

▲ 1909년 무렵, 포사잇 선교사와 동역한 최흥종 목사가 기증한 부지에 세워진 광주 봉선동 시절의 나환자촌. 출처: monthly.chosun.com 캡처

최근 아제르바이잔과 국경 분쟁을 벌이고 있는 아르메니아란 나라가 있다. 남 캅카스 지역에 위치, 한국과는 특별한 관계가 없는 나라다. 하지만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전쟁으로 양국에서 1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 중 유독 아르메니아라는 나라가 필자의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은 그동안 열방을 위한 기도시간에 보아왔던 이 민족의 지난날 역사적 사건 때문이다. AD 301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아르메니아는 종교적 이유 때문에 주변 이슬람 국가들에 의해 오랫동안 외침(外侵)을 받아 왔다. 지난 역사에서 최악의 사건은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직후인 1915년부터 1년여 동안 터키 땅에서 150만 명에 이르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집단 유배와 집단 학살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고통을 겪으며, 죽임을 당한 일이다. 이와 관련, 터키는 집단 유배가 진행되는 가운데 발생한 불행한 일이라고 일축하면서 학살 사건에 대해서는 함구해 왔다. 이들의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 이후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소련)이 이 지역을 다스리던 시절, 그들은 학살사건을 입에 올릴 수도 없었다. 아르메니아 집단 학살 사건을 언급하는 사람은 반 소비에트 민족주의자로 규정돼 시베리아 등으로 유배를 가거나 처형당했다. 참으로 기구한 수난사를 갖고 있는 민족이다.

이들의 이러한 고통이 낯설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우리 민족 역시 20세기 초 이와 유사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소련 공산화 이후, 연해주 등 러시아의 극동지역에 있던 한인들은 스탈린의 소수민족 분산 배치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 각지로 강제 이주과정에서 처참하게 죽어갔다. 그들은 지금 중앙아시아 지역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의 지역으로 이주되면서 고려인(까레이스키)이 됐다.

이들 외에도 많은 한인들이 일제 식민지를 거치면서 징용, 이주 등의 이유로 조국을 떠나야 했다. 그중 만주 일대에서 일제 시대에 조선 독립군의 활동이 극심해지자 일본군은 한인 독립군에 의해 피해를 입은 만큼 만주 지역의 한인들을 공격했다. 그러자 독립군은 동포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불가피하게 중국 땅을 떠나, 러시아 영토로 집단 이주했다. 그러나 그들이 이주한 러시아의 스보보드니(자유시)에서 소련의 배신으로 한인 독립군은 무장해제 당한채 무참하게 학살을 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제 시대 독립군의 활동은 사실상 중단됐다. 이른바 스보보드니 참변이다. 사건 하나 하나를 되새겨보면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무능한 권력자를 둔 민족의 고통과 나라를 잃은 설움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 겪게 된 아픔들이다.

▲ 원동에서 우슈토베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초기 정착지를 알리는 비석. 출처: diverseasia.snu.ac.kr 캡처

그런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로서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이런 아픈 역사들을 들추어내며 그 책임을 추궁하고 설혹 가해 당사자로부터 용서를 받아내면 문제가 해결될까? 분명히 왜곡되거나 잘못 정리된 지난날의 역사는 올바로 정리되고 기술되어야 한다. 올바른 이해는 동일한 실수를 범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 민족 역시 특정 집단에게 가해자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단지 제국주의가 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조건과 상황만 허락되면 어떤 잔혹한 범죄도 저지를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우리나라 노비는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다. 한때 전 국민의 40%가 노비였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 시대 양반들은 이들 노비와 백정 등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말만 한민족이지 노비와 백정은 자신들을 압제하던 양반들을 한평생 원망하며 살았다.

이토록 철저한 계급사회였던 우리나라에 반차의 구분이 사라지고 사람과 사람이 천부 인권을 지닌 존재로 인식하게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정확하게 복음의 불모지인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난 이후부터다. 20세기 초 3만 명에 이르던 백정과 1만 5000명의 문둥이로 불리던 나환자, 결핵환자. 이들을 누가 돌보고 품어주었을까?

1909년 미국 남장로회 포사잇 선교사로부터 시작된 나환자에 대한 관심은 윌슨, 쉐핑, 토플, 카딩턴 선교사로 이어지며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렸다. 장로교 총회는 1924년 ‘문둥병위원회’를 조직, 각 노회별로 헌금을 모아 병원 사업을 시행하고 32년에는 ‘문둥병 선교주일’을 제정, 전국 교회가 헌금하고 이들을 섬겼다.

20세기 초반 정부가 115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나환자병원을 만들 때, 선교회가 만든 나환자를 위한 병원 시설은 무려 1700명의 환자들을 보살폈다.

사람으로 살기를 포기한 채 숨어 살아야 했던 이들이 복음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문둥이도 사람으로 살아갈 희망이 있음을 알려준 유일한 공동체는 이 땅에 십자가 정신으로 들어온 선교사들과 이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적폐로부터 형성된 구조적인 모순의 해결을 위한 제도개선과 잘못에 대한 개선방안의 도출에서 나오지 않는다. 법과 제도는 또 다른 모순과 허점을 만들어낼 뿐이다. 이 땅의 아픔과 고통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인간을 위해 이 땅을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밖에 없다.

사도 바울은 그 십자가 사랑의 놀라움과 경이를 로마서 5장 8절에서 보듯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선포하고 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인생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이 땅의 모든 막힌 담을 허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밖에 없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 이외에 어떤 것도 인간의 갈등과 분쟁, 대립을 막아낼 주체는 없다. [복음기도신문]

김갈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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