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1)
“쾅!쾅! 쾅쾅쾅!”
대문이 부서져라 계속 문을 두드린다. 옆집 대문인 줄 알았다. 캄캄한 시간인데 세 명의 현지청년들이 급하게 우리를 찾았다.
“선생님, 빨리 피해야 합니다! 탈레반이 B시에 들어왔어요. 지금 이곳에 있는 외국인은 선생님 가정 밖에 없어요. 금방 잡으러 올 거에요!”
그 밤에 우리는 급히 현지청년들과 트럭으로 한 시간 넘게 산 속으로 들어간 곳에서 대피를 했다. 하지만 인터넷도 전화도 되지 않아 상황을 파악할 수 없어서, 일단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전부터 본부에서 가까운 이웃나라로 임시철수를 권고했다. B시와 수도를 차로 오가던 길들은 탈레반이 점령했거나, 전쟁 중이어서 다 막혔다. 민항기는 지난 봄부터 운행을 안하고 있었다. UN 항공편이나 비정부기구(NGO) 항공편 외에는 수도 카불로 나갈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NGO 소속이 아니어서 방법은 없었다. 근데 현지인 친구 NGO에서 도움을 주어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전날 밤 B시의 많은 사람들은 피난을 떠났다. 피난 가는 자동차 소리에 밤새도록 시끄러웠다. 특히 여성과 아이들을 먼저 피신을 시킨다고 했다.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나가니, 중무장한 장갑차와 군인들이 B시 공항을 둘러 싸고 있었다. 수도의 공항 인근에서 폭탄이 터졌고 날씨도 안좋아 항공편이 취소됐다.
“내일도 비행기가 오지 못하면, 그냥 떠나지 않고 B시에 남겠습니다.”라고 속으로 주님께 아뢰었다.
밖에서, 우리 둘째 아들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선포하는 소리가 들렸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구름은 떠나갈 찌어다! 비행기는 뜰찌어다!”
새벽에 누구인지 비어있는 옆집의 담을 넘어 약탈을 해갔다. 다음날, B시 거리는 한산하였고 남자들만 간간히 보였다. 아직 떠나지 못한 자들이 차들 지붕에 보따리와 짐들을 싣고 피난을 떠나는 모습이 간간이 보였다.
6명 내외가 타는 프로펠러 경비행기는 짐을 다 실을 수 없었다. 여름옷 몇 가지만 쟁겨 나왔다. 카불에 도착한 날은 코로나 검사를 하고, 다음날 인접국으로 가는 항공편을 타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당시의 카불의 분위기는 전쟁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였다. 전혀 분위기가 달라 깜짝 놀랐다.
여러 지방도시에서는 전쟁으로 피난 가고 난리가 났지만, 카불은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었다. 전쟁이 나도 카불은 어느 정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 보였다. 큰 결혼식장에서는 여전히 성대한 결혼식을 하고 있었고, 시내의 음식점에는 젊은 사람들이 즐기며 노는 모습도 보였다. 전쟁을 별로 감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카불 함락 한 달 전의 그런 모습을 보며 떠났다.
현지인 사역자를 파송하다- 철수 2주 전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롬 1:8)
B시를 떠나기 바로 2주 전, 훈련이 끝난 두 명의 현지 청년을 현지인 사역자로 중앙아시아로 파송했다. 두 명의 청 년, 페트루쓰(가명)와 폴루쓰(가명)를 파송할 때까지만 해도, 1주 후에 두 나라 간의 국경이 닫히고, 2주 후에는 이웃나라로 임시철수 권고를 받게 될지 몰랐다.
페트루쓰와 폴루쓰는 서아시아 A와 서아시아 B에서 파송된 청년들과 함께 중앙아시아에서 연합하여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언어를 배우며 매일 복음을 전하며 교회개척과 중앙아시아 청년부흥을 간구하며 사역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뒤, 모국의 전쟁, 함락의 소식과 가족의 위험한 상황을 전해 듣게 되었을 때, 두 현지인 사역자는 서로 다른 결정을 하게 되었다.
페트루쓰 형제는 “제가 돌아간다 할지라도, 가족과 같이 있어주는 것 말고는 지금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주님이 제게 맡겨주신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서아시아 B 파송 형제들과 중앙아시아 사역을 열심히 하고 있다.
폴루쓰 형제는 “저는 모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현지 사역자로서 사역을 조기종료하고 전쟁중인 모국으로 복귀했다. 탈레반에 의해 점령된 고국, 고향 땅에 돌아온 폴루쓰 형제는 지난 한달 사이에 대가족인 자신의 가족들 모두에게 복음을 나눴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가족들은 확신에 찬 그로부터 성경말씀을 듣기 시작했고, 가족들 모두가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소식을 짧게 전해왔다. 지금 그곳에서 가족들을 성경 말씀과 믿음으로 단단히 하고 있다. 전쟁 가운데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신은 자신들을 버렸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수백 년간 그들이 믿어왔던 신은 그들을 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죄 때문에 자신을 버리신 우리 주님은 그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신다.
학교 사역을 시작하다- 철수 7주 전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 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사 55:5)
이곳에서 임시로 철수하기 7주 전에 B시에서 현지인 학교를 오픈했다. B시 내 한 대학교와 또다른 사립고등학교 안에서 OOO 과목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몇 주 후에 이 땅에서 철수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못했다. 이 일을 위해 미주에서 세 분의 시니어 선교사가 도착했다.
B시의 청소년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매일 OOO 과목을 가르쳤다. 처음에 250여 명의 학생들이 등록을 했다.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7개의 클래스를 열고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첫 3주간은 학교 셋업과 학생들의 기초 교육을 가르치는데, 엄청나게 힘든 일정을 세 분 선생님들이 잘 감당해 주셨다.
4주차 때에 현지에서 델타 변이로 인해 휴교가 결정됐다. 하지만 학생들은 페르시아 비전센터로 몰려왔다. OOO 과목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또다른 문을 열어 주셨다.
그리고 이곳에서 현지언어로 복음을 전한다. 2단계는 구원과 예수님에 대한 성경공부를 저희들과 함께 배운다. 3단계는 회개와 성령 인카운터 시간을 갖는다.
이 민족 특성상, 한 명만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고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를 한다. 매일 매일 영접하는 이들과 성령을 받는 자들이 나왔다. 3주 동안을 하루도 쉬지 않고 시니어 선생님들이 후회없이 오전과 오후로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셨다. 그리고 성령 받는 일들이 계속됐다.
F 형제는 함께 회개기도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지며 온 몸을 떨었다. 나중에 깨어나서 고백했다.
“나는 여기 있지 않았어요. 하늘에 있었어요. 거기서 하얀 옷을 입고 계신 예수님을 만났어요. 너무 빛나고 눈이 부셨어요. 그리고 내 죄를 사해주셨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다시 감사기도를 드릴 때, 이 형제는 방언을 받았다. 기도할 때마다 계속 울고 또 울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며 말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몸이 너무 떨리는데 제 몸에 이상합니다. 살아계신 분을 확실히 만났고 믿어집니다. 이제 저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그렇게 하나님께서 회개와 간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쏟아 부어주셨다. 수고하신 시니어 선생님들이 귀국하신 후, 일주일이 채 안되어 B시와 수도 간의 육로가 다 막혔다. B지역 둘레를 탈레반이 장악했다.<계속> [복음기도신문]
아프간= D선교사
[아프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2)] “저는 아프간에서 파송한 첫번째 선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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