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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복음으로 회복되는 사람을 보는 것이 큰 기쁨이에요”

복음으로 에티오피아를 섬기고 있는 다니엘 선교사

현재 에티오피아에서 내전이 진행 중이다. 다니엘 선교사는 자신의 이야기보다 먼저 에티오피아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나누며 말문을 열었다.

에티오피아 내전의 본질은 오로모족과 티그라이족의 갈등

에티오피아는 현 연방정부의 집권을 지속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종족을 제거하기 위해 내전 중이다. 현재 에티오피아 총리는 2018년부터 집권한 아비 아머드다. 그러나 크리스천인 아비는 이전 민주주의 집권 세력이었던 티그라이 종족 사람들을 정치권에서 몰아내고 오로모 종족들로 채우기 시작했다. 아비 총리 역시 오로모 종족이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4월에 치렀어야 할 선거를 연기했다. 이후 아비는 화폐개혁을 단행하고 자신에 대해 반대 성향이 있는 티그라이로 가는 주정부의 예산을 끊어버렸다. 이후 티그라이족의 마지막 군장성들까지 퇴역시켰다.

티그라이족은 연방정부에서 티그라이를 공격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 외신 기자를 통해 밝힌다. 이후 티그라이족은 연방군대의 무기를 탈취하게 되고, 아비 총리는 이것을 반란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정부군과 티그라이군의 충돌이 내전 상태로 발전됐다. 그러나 아비 정권이 티그라이족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종족 자체를 제노사이드(인종말살) 하려는 정황이 서방세계에 덜미가 잡혀 미국 등으로부터 내전을 중지하라는 종용을 받는다. 그러나 아비가 이를 외면해 미국, 영국, 독일에서 원조를 중단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아비는 우방이었던 미국과 서방을 등지고 러시아, 중국, 북한으로 동맹국을 바꾸면서 정권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A.D 333년에 역사상 3번째로 기독교 국가가 됐을 만큼 신앙적 배경이 있는 나라다. 그러나 그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마지막 황제인 하일레 셀라시에 통치 때부터 정교회가 부패하기 시작해 성수를 팔았다. 이뿐 아니라 성경을 첨삭하기까지 했다. 위클리프 선교사가 개신교 성경을 만들 때 정교회 성경을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었고, 최근 번역된 NIV 성경도 그 영향을 받았다. 그 부패의 흔적이 개신교에도 영향을 주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1974년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멩기스투, 그 다음을 이어 멜레스 제나위, 그리고 지금 아비 총리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근이 10년씩 찾아왔다. 그러나 교회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크리스천인 아비가 총리로 집권하면서 크리스천들이 정부 요직에 들어왔지만 부패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다니엘 선교사는 이러한 에티오피아에서 복음만이 유일한 소망의 이유가 된다고 고백한다.

선교사들, 복지 지원 줄이고 영적 목마름 충전으로 사역 전환

– 에티오피아의 교회 상황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나요?

“이 나라에는 2200만 명의 개신교인이 있지만, 이들이 소속된 교단 절반이 부패하고 타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외국 선교단체 소속 선교사들이 그동안 이곳에 들어와 많은 재정 지원 등 복지 차원에서 필요한 것들을 섬겼어요. 그러나 이들이 지금은 이런 것들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이제는 교회 개척만 하는 추세에요. 현지인 가운데 선교사들과 성경공부도 많이 해서 성경 지식이 많은 사람도 있어요. 그러나 말로는 신앙을 확인할 수 없어요.

처음 에티오피아에 도착해 곤다르 지역으로 갔어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무작정 한 교회에 들어갔어요. 그곳에서 한 형제를 만나 인사를 하고, 제 이야기들을 나눴어요. 제가 이사를 한다고 했더니 자동차 등 필요한 것들을 빌릴 수 있는 곳을 소개시켜준다고 했어요. 그렇게 이사를 마치고 한 달 정도 후 다른 곳에 차를 빌리러 갔는데, 그때 그 형제가 말했던 것의 절반 가격을 불렀어요. 속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 형제니까 내가 많이 줘야지.’ 생각했어요.”

– 정착과정에 어려움이 많으셨군요.

“지금은 그러려니 하게 돼요. 복음을 생존 수단으로 삼으니까 이렇게 밖에 안 되겠구나 생각해요. 이곳에서 지낸 5년 동안 핸드폰을 7번 소매치기 당했어요. 일반 버스를 타면 벼룩이 많이 옮아요. 우기 때는 특히 더 그렇죠. 이런 게 어려워서 다들 차를 갖고 다니는 것 같아요. 물론 저의 짧은 경험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저는 에티오피아의 가난하고 부패한 상황과, 10년 마다 있었던 기근을 보면서 하나님이 이 민족에게 깨달으라고 말씀을 주시는데도 정말 안 바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이유 때문에 복음캠프를 열게 된 것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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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캠프는 어떻게 하셨어요?

“지난 7월 12일부터 5박 6일 동안 진행했어요. 계획 초기에는 한국의 선교사님과 연합해서 진행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갑작스러운 정부의 비자 발급 중단으로 그분은 결국 오지 못하고, 결국 저 혼자 캠프를 섬기게 됐어요. 처음에는 사역자를 대상으로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제가 초대하지 않은 평신도가 오면서 사역자 한 명과 평신도 두 명으로 복음캠프가 진행됐어요. 이것은 두 형제에게 복음을 들려주시려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었죠. 그중 한 명이 에프램이라는 형제에요. 60km 떨어진 곳에서 왔어요. 형제가 사는 마을에는 교회가 없어요. 정교회는 교인들에게 성경을 읽히지 않아요. 고어로 돼 있거든요. 설교도 고어로 해서 못 알아 들어요. 지금은 현대어로 하는 곳이 많이 생겨서 조금 달라졌어요. 그런 사람이 복음을 듣겠다고 온 거예요. 놀라운 일이죠.”

주님의 섭리로 현지인 대상 복음캠프 진행

– 그분이 복음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네요.

“그는 지금 27살이에요. 14세에 성중독에 걸려서 학교까지 포기했죠. 매일 여성이 있어야만 잠을 이룰 정도로 심각한 중독 상태의 형제였어요. 사탄이 그 영혼을 파괴한거죠. 돈을 벌어도 오직 그 일을 위해 벌었어요. 결혼을 해도 똑같았어요. 몇 명을 낙태를 했는지, 몇 명이 자기 자녀인지 모를 지경이었어요. 이런 게 이곳의 모습이죠. 어느 날 개신교인인 그의 삼촌이 집에 놀러왔다가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됐어요. 그는 복음을 듣고 자신이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러나 성중독은 끊을 수 없었어요. 참다 못해 형제의 아내가 집을 나갔어요. 복음캠프 하기 두 달 전에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살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해요. 에프램은 충격을 받고 두 달간 헤매다가 복음캠프 소식을 듣고 온 것이었어요. 그는 성중독 상태로 문란한 삶을 살면서도 천국에 간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자기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의인이라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다행히 주님이 지혜를 주셔서 잘 풀어갈 수 있었어요.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알더군요. 죄 없으신 하나님이 그렇게 죄를 짓고 있는 당신과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그때부터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하고 복음의 진리를 듣기 시작했어요.”

– 세계관을 깨뜨리는 일이 쉽지 않죠. 다른 분들은 어땠나요?

“아베라라는 형제도 메시지를 잘 듣다가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 못 듣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때가 죄에 대한 내용을 강의할 때였어요. 사탄이 장난한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단 형제를 좀 쉬게 하고 괜찮아진 이후에 강의를 이어갔어요. 실제로 에티오피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죄에 대한 설교를 한 번도 못 들어봤어요. 제가 설교할 기회가 있을 때나 죄에 대한 설교를 했죠. 이곳에서 죄는 굉장히 낯선 설교 주제에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축복 이야기들을 들을 때에야 교인들의 얼굴이 확 펴요. 교인들은 자신이 심각한 죄인이라는 것을 몰라요. 지옥 갈 인생이 예수님 때문에 건짐 받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왜 죄인인지, 진짜 어떤 죄인인지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으니, 계속 죄를 지으며 살아가요.”

– 그렇군요. 그러면 복음캠프 전에는 어떤 사역을 하셨어요?

“길거리 전도를 했어요. 현지 교회 예배에 참석하면서 사역자들과 신앙의 교제도 했어요. 제가 가르치는 위치에서 교제하면 복음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동등한 위치에서 교제를 해요. 제가 가르친다고 하면 그들에게 뭐든 줘야 해요. 가르침을 받는다는 개념 자체가 그렇게 굳어졌어요. 이들은 저에게 한국교회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잘 해달라고 해요. 재정 후원을 해달라는 이야기죠. 나를 파송한 교회는 건물도 없다고 이야기하면 거짓말인 줄 알아요. 한국은 잘 살지 않냐고 하죠. 그들이 보기엔 한국이 잘 사는 게 맞아요. 제가 형에게 물려받은 15년쯤 된 휴대용 전기 불판인 하이라이트를 가지고 갔는데, 현지인들은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이죠. 그러니 이들에게 저는 부자에요. 제 핸드폰도 한국에서는 구식이지만, 현지인들에겐 너무 좋은 것이죠. 그러니 제가 돈도 없고 평신도여서 오히려 감사해요. 내가 우위에서 가르치면서 경제적으로 주기 시작하면 제가 하는 설교를 받아들이든, 아니든, 이들은 굉장히 은혜 받은 것처럼 할 것이기 때문이에요. 이 때문에 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에요. 그래서 평신도 선교사인 것이 감사해요. 오직 저만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독특한 방법이 되는 것 같아요.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가르치는 것도 아닌, 삶으로 복음을 전하게 해주신 것 같아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이들에게 거리 전도로 사역

– 선교사로 이곳에 오기까지 과정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과거에 제 삶에서 선교사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던 영역이었요. 직장을 다니면서 성공회 신부님과 빈민사역을 같이 한 적은 있지만, 그게 다였어요. 그러다 회사를 그만두고 빈민들을 위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어요. 제가 의류회사에 있었기 때문에, 옷을 만들 수 있도록 기획하고, 디자인, 판매까지 맡아서 하고, 빈민들은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게 했어요. 그러나 1년이 좀 지나고 망했어요. 회사를 협동조합으로 운영했거든요. 모두가 사장이자 모두가 노동자에요. 월급도 똑같이 주고요. 제가 82학번으로 대학을 다닐 때 공산주의 이론을 지지했었죠. 그런데 막상 사업을 해보니 공산주의는 이론일 뿐,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모두가 사장이니까 늦게 출근하는 거예요. 점심 먹으러 나가서 제시간에 들어오질 않아요. 공장은 라인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일이 돌아가질 않거든요. 결국 거래처에 납기일을 못 지키게 되고, 회사 운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망하게 됐어요.”

<이상 255호에 게재>

– 그 이후엔 어떻게 되셨어요?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친구와 동업으로 사업을 했어요. 제 마음에 친구는 날라리 신자였고, 저는 진실한 신자였어요. 한 번은 사업자금이 모자라서 매일 회사 창고에서 기도를 했어요. 새벽마다 창고에서 ‘주님이 나를 통해서 자금을 주셔야 된다.’고 기도했는데, 안 들어주셨어요. 결국 친구를 통해 자금이 들어왔어요. 그 다음 날 창고에 가서 하나님께 항의를 했죠. 하나님이 나한테 이러시면 안 된다고 따져 묻는데, 주님이 마음에 ‘널 위해서 구했니? 날 위해서 구했니?’라고 물으시는 것 같았어요. 그때 찬물이 끼얹어지는 기분이었어요. 주님을 위해서 한 게 아니라는 건 양심이 아니까요. 참담한 마음으로 있는데, 갑자기 복음학교가 생각났어요. 사업 때문에 중국에 있을 때 만난 한 형제가 복음학교를 권한 적이 있었어요. 복음을 알고 싶다는 강한 갈망이 생겨 곧바로 복음학교에 원서를 내고 참석했어요. 마침 원서접수 마지막 날이었어요.”

오직 나를 위한 신앙생활의 한계 절감하며, 복음을 갈망

– 나에 대한 절망이 복음에 대한 갈망으로 일어났네요. 복음학교는 어떠셨어요?

“그때 죄가 무엇인지 깨달았어요.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었어요. 제대로 살아야겠다 생각하고 동업하는 형제에게 모든 것을 다 넘기고 사업을 그만뒀어요. 이후 1년 동안은 아무것도 없이 살았어요. 이렇게 믿음으로 일을 그만두면 하나님이 엄청나게 큰 걸 주실 줄 알았는데, 통장에 10원이 남을 때까지 아무것도 안주셨어요. 10원만 남으니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누구한테 손 벌릴 수도 없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제가 정말 죄인이라는 것을 보게 됐어요. 상황과 조건만 갖춰지면 저는 무슨 짓도 할 수 있는 죄인이라는 것을 주님이 가르쳐주시는 시간이었어요. 편의점 일을 하면서 생전 처음으로 도둑질했어요. 처음에는 물론 안했죠. 손님 중에 포인트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한 둘 있었어요. 처음에는 그냥 버리다가 손님들한테 내가 갖겠다고 말하고 모으기 시작했어요. 나중에는 말도 없이 내 것으로 모았어요. 어느 날 하나님이 마음에 찔림을 주셨어요. 지금 뭐하고 있나. 몇 푼 되지도 않는 건데….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열심이 얼마나 가식 같던지요.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부끄러워서 못 견디겠더군요. 그렇게 편의점을 그만뒀어요.”

– 어려운 시간을 보내셨네요.

“절망하고 있을 때 어느 날 모르는 분에게 전화가 왔어요.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장이었는데, 제가 오래전에 일자리를 얻기 위해 구직광고를 낸 것을 그 분이 보고 저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어요. 하나님께서 저를 인간 만들려고 주신 기회라고 생각돼서 열심히 일했어요. 주님을 의지하면서 잘하는 듯싶었는데, 다시 1년이 지나니까 경험으로 하기 시작했죠. 기도도 대충,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계속 일만 열심히 했어요. 시간만 나면 회사에 가고, 휴가도 안 갔어요. 하나님이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으셨는지, 회사에서 어려움이 생기면서 또다시 좌절감이 몰려왔어요. 그때 다시복음앞에 집회가 열린다는 걸 보게 됐어요. 여기 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휴가를 내고 집회에 참석했어요.”

– 그곳에서 회복이 되셨나요?

“이미 훈련을 받았던 선교단체가 주관으로 하는 대회여서 아는 선교사님들이 몇 분 계셨어요. 집회 두 번째 날인가 휴식 시간에 복도에서 한 선교사님을 만나 교제를 하다가 그 분이 저에게 해외에 복음 캠프가 열리는데 섬김이로 가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어요. 그 당시 저는 한 헤드헌터로부터 다른 회사로 오라는 콜링을 받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잠시 머뭇거렸어요. 선교사님도 “직장 다니시죠? 안되겠네요.”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에 갑자기 자존심이 상하면서 기도해본다고 대답을 하고 돌아왔어요. 그게 하나님의 작전이었어요. 그 다음날부터 말씀을 묵상하는데, 계속 가라는 마음을 주시는 거예요. 결국 가기로 약속하고 캠프를 위한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때 그 캠프가 이집트에서 열리고 기간도 2주간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전 회사 책임자이기도 하고, 그때는 국가 일도 하고 있었던 때여서 결국 캠프에 가려면 일을 그만둬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그렇게 급하게 일을 마무리하고 사직서를 내고 캠프에 참여했어요.”

해외에서 열리는 복음캠프를 섬기기 위해 사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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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 선교사가 거리 전도할 때 사용하는 전도지. ⓒ 복음기도신문

– 어려운 결정이었네요. 캠프 때 받으신 은혜가 궁금해요.

“복음캠프에서 주님이 저를 선교사로 콜링하셨어요. 내 남은 인생 뭐하면서 살까. 이 복음 전하면서 살면 행복할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에티오피아에 오게 된 것도 그곳에서 만난 한 분 때문이었어요. 캠프를 마치고 이틀 동안 이집트를 둘러봤어요. 그때 같은 숙소에 묵고 있던 에티오피아에서 온 의사 한 분을 만났어요. 코이카 단원으로 에티오피아에서 일하는 중 휴가차 이집트에 오신 거였죠. 그분과 저희 팀이 한 두시간 이야기하면서 ‘에티오피아에도 복음이 필요하다. 당신들 같은 분이 정말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뒤에 기도하는데 이집트에서 만난 의사의 말이 자꾸 생각났어요. 2년 정도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분 말이 생각난 것이 주님의 부르심이라면 말씀을 달라고 구했어요. 이사야 49장 21~23절 말씀과 함께 에티오피아에 대한 마음도 주셨죠. 이 백성이 주님께 돌아오는 게 오래 걸린다는 애타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래서 보내시려면 그 땅을 정탐하러 갈 차비를 달라고 기도했어요. 하나님이 신실하게 차비를 주셨는데, 제가 그때 실수를 했어요. 체재비도 달라는 기도를 했어야 했는데, 딱 항공료하고 조금 더 주신 거죠. 그래도 하나님이 허락해주셨으니 가는 거였어요. 지인이 제가 에티오피아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나가지 말고 순회선교단 아프리카지부 선교사님을 만나보고 나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만났어요. 에티오피아에 아는 사람 있냐고 물으셨어요. 아무도 없었죠. 그 선교사님이 3명의 에티오피아 선교사님 연락처를 주셨어요. 그렇게 연락처 3개를 받아들고 에티오피아로 떠나게 됐어요.”

– 정말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떠나신 거네요?

“도착해서 이틀 만에 돈과 핸드폰, 여권을 소매치기 당했어요. 졸지에 국제 미아가 된 거죠. 그래도 다행히 소매치기 당하기 전날 한 분의 선교사님과 연락이 닿았던 터라 그 선교사님이 머무는 집에서 신세를 질 수 있었어요. 사실 그분도 당시 다른 분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자신도 신세를 지고 있으면서 나를 더 얹혀준 거죠. 저는 그분이 머물고 있었던 집에 함께 머물면서 집 주인의 냉장고에 있는 것을 먹으면서, 아시는 선교사님이 오라고 하면 가고, 여기서 자자고 하면 자고, 계획 없는 삶을 살았어요. 그때 하나님이 콜링에 대해 확실히 가르쳐주셨어요. 부르신 대로 사는 거였어요. 여태껏 내 계획대로 살아왔는데 이제부터는 저의 계획이 없는 삶을 살라는 주님의 사인이었어요. 그렇게 40일을 에티오피아에 머물면서 북쪽과 남쪽을 돌게 됐고, 한 선교사님의 섬김을 받아 여권도 만들고 선물도 받아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분이 나를 한국으로 보내시면서 에티오피아는 비자 받기가 어렵다면서 한국에 가서 목사안수도 받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서 오라고 하시더군요.”

– 주님의 인도하심이 놀랍네요. 그러면 한국에서 여러 준비를 하게 되셨겠네요?

“아니요. 한국으로 돌아오니 마침 직장 생활할 때 알고 있던 사업가 한 분에게 동생을 통해 연락이 와 있었어요. 제가 돌아오면 만나자고요. 그분이 에티오피아에서 큰 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제게 에티오피아에서 뭘 할 거냐고 묻더군요. 홀리 워커, 즉 거룩한 일꾼으로 살 거라고 했어요. 일주일 뒤에 연락이 와서 공장을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묻더군요. 공장에 기숙사가 만들어지면 교회를 세워달라고 요청했는데 그러겠다고 했지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지 한 달 만에 다시 에티오피아에 가게 됐어요. 공장에서 지내면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종족간의 갈등도 보게 되고, 이들에게 복음이 얼마나 잘못 심겨졌는지도 보게 됐어요.”

주님 인도하심으로 에티오피아로 가는 길이 열리다

– 복음이 잘못 심겼다는 게 무슨 의미죠?

“후진국에서 발생하는 질병중 하나가 간질이에요. 영양 부족도 그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해요. 간질환자인 동료가 일하다 거품 물고 쓰러지면 주변 사람들이 일하다 말고 모두들 도망가 버려요. 귀신들렸다고 두려워하는거죠. 이러한 태도는 개신교든 정교회인이든 동일해요. 공장에서 일하던 정교회인들 중 대부분은 아프면 말없이 결근을 하고 정교회로 가서 며칠 동안 성수를 마시면서 교회에 머물러요. 그래서 좀 나으면 또 와서 일하다가 아프면 또 교회로 가죠. 이들은 국가에서 돈이 나오기 때문에 일이 힘들면 열심히 일할 생각을 못하고 그만둬요. 주민으로 등록 돼 있으면 원조를 받을 수 있거든요. 이런 삶을 깨는 것은 복음 밖에 없어요. 에베소서 6장 6절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는 말씀으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이들의 사고방식을 바꾸기가 어려워요. 일하는 시간에 일은 안하고 가스펠음악을 듣고 있어서 꾸중을 하면, 자신은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가스펠음악을 들어야한다고 말해요. 그래도 일하는 시간에 일을 하라고 하면, 일꾼 이전에 크리스천이라고 대답해요. 복음을 듣고서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모르는 이들과 복음을 나누고 싶었는데,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한정돼 있어서 결국 현지어를 배우기 위해 공장을 그만두게 됐어요.”

– 에티오피아에서 사역하시면서 행복했던 시간은 언제였나요?

“제가 전도자니까 영혼들이 복음 앞에서 반응하는 것을 보면 기쁘죠. 거리전도를 하다가 한 형제를 만났어요. 정교회 신자였는데, 제가 전하는 복음을 처음 들어본다며, 너무 기뻐했어요. 이 복음이 너무 좋다는 거죠. 그렇게 복음을 듣고 반응하고, 영혼들이 살아나는 것을 보는 게 제일 기뻐요. 다른 건 별 재미를 못 느껴요.”

–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겠죠.

“인격적으로 무시당할 때가 있었어요. 알고 지내던 현지인 친구가 경영하는 목공소 일꾼 중 20살 갓 넘어 보이는 형제가 있었어요. 그 형제가 무례한 행동을 계속해서 만날 때마다 기분이 상했어요. 그의 언행 때문에 모욕감을 느낄 때가 많았죠. 대단한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함을 받고 싶었어요. 하루는 주님도 이 땅에 오셔서 창조자임에도 불구하고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조롱과 멸시할 것을 미리 알고 오셨는데 나도 주님처럼 살아야 된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머리로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감정적으로는 용납이 안됐어요. 그러던 어느 날 마음에 이런 생각이 불쑥 들었어요. ‘언제 너보고 하랬냐? 너도 원래 죄인이잖아! 넌 원래 그럴 수 없는 죄인이야! 그러니까 기도해!’ 나는 원래 죄인이라 무례한 행동으로 나의 인격과 자존심을 짓밟는 것을 절대 용서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하신 주님께 감사했어요. 주님께서 나를 만나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도 여전히 주님을 모욕하면서 살고 있었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셨어요. 매 순간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의 힘으로, 복음의 능력으로 산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하셨어요. 이 싸움을 매일, 매 순간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그때 내가 어디에 집중해야 되는지 가르쳐주셨어요. 여전히 보이는 것에 반응하는 내가 날마다 죽어야 된다는 것을 그때 알게 하셨어요.”

– 기도제목을 말씀해주세요.

“에티오피아 정부가 갑자기 모든 여행 비자 업무를 중단하는 바람에 제가 한국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주님께서 에티오피아에서 종교 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고 계세요. 문제는 주 한국 에티오피아 대사관에서 비자 발급에 필요한 서류에 공증을 받아야 되는데, 현재 에티오피아 대사관이 문을 닫았어요. 주님께서 시작하신 일이 성실히 이루어지도록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해주세요.”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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